할머니가 되어 가는 고향길

백발의 어머님
강릉에 두고
홀로 서울 가는 이 마음
고개 돌려 고향 마을 바라다보니
떠가는 흰 구름 아래 푸른 산만 어둑어둑

신사임당의 사친이라는 글입니다.

오늘 강릉엘 갑니다.
강릉은 백발의 어머니를 두고 온 곳도 아니고
친척들도 없지만 고향이라 늘 그리운 곳입니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강릉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릉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미 4~50년의 세월이 흘러서 어쩌다 가 본 강릉은
옛 모습을 기억해 내기가 어렵게 변했지만
그래도 고향엔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설렘으로
고향엘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 딸이 결혼을 하는데 서울에 사는 두 친구와
결혼식 참석도 하고 바다도 보고 정선에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우리친구들은 형제 서열상 거의 장녀 들입니다.
민족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끝나고
1955년에 태어난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국가가 가난할 때라 개인의 가난은 숙명적인 것이었고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난 우리들은 가정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위로 공부 잘하는 오빠라도 있으면 동생은 학업을 포기하고
남의 집 애를 보던지 공장에 가서 일을 하던지 해서 집안의 기둥인
오빠난 남동생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 중 여자는 절반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가는 대신 서울로 돈 벌러 가야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공부 잘하는 오빠가 있고 집안의 살림밑천인 장녀였지만
아버지께서 "여자도 배워야 한다."라시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중학교에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집은 형편없이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의지가 강해서
자녀들을 다상급학교를 보내서이웃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온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는 뭘 해도 서울을 가야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공부를 해도 그렇고 버스 차장을 하던 남의집살이를 하던 공장엘 가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곳은 서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오면서 속으로 다짐했답니다.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대관령을 넘어
친정을 가야겠다." 구요.
지금은 대관령에 새 고속도로가 생겨 일산에서 강릉까지 세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전에는 하루 종일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가용이 귀할 때니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자가용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새로 생긴 풍속은 어떻게 하면 차를 안가지고
대중교통으로 갈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가용을 타고 대관령을 넘는 일이나
서울에서 사는 일은 이미 오래되어
그게 꿈이었다는 생각조차도 잊었는데
이제는 운전하지 않고 여행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선호합니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라 어디를 가려면 남의 신세를 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체질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게 되었는데
강릉 친구들이 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와 준다고 해서 아무걱정 없습니다.
요즘엔 운전 못하면 얌체 같습니다.
남 힘들게 운전하는데 편하게 앉아가는 게 미안하거든요.

고향가는 길이

금의환향! 하는건 아니더라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성장기를 보낸 고향을 할머니가 되어 친구 딸 결혼식 참석하러 가는 오늘
어느 때 보다 설레고 기대가 되나 봅니다.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과 고향생각에 잠이 일찍 깨어져서
글 한 꼭지 써 놓고 고향엘 갑니다.

순이

4 Comments

  1. 벤조

    2015-04-25 at 04:40

    잘 다녀오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 기대됩니다.   

  2. 데레사

    2015-04-25 at 10:50

    그럼요. 고향가는 길은 언제나 좋고 말고요.
    그런데 나는 몇년동안 경주 안갔거든요.
    이제는 결혼식들도 다 끝났고…. 아마 앞으로는
    장례식에 갈 일이 많을것 같아요.   

  3. 말그미

    2015-04-25 at 14:22

    ‘首丘初心’이란 말이 단번에 떠 올랐어요, 오죽하면…
    언제나 그리운 곳이지요, 고향은.

    친구분들과 푸근한 고향을 느끼고 오십시오.   

  4. 오봉

    2015-04-27 at 05:47

    저도 고등학교 3년동안 강릉에 있었는데 강릉이 고향같은 묘햔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고향사랑이 남다르고, 정과 능력을 겸비한 강릉!!! 잘 다녀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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