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바닷가에서

고향친구들에게 강릉 간다고 소문을 내고 갔더니
터미널에는 친구와 친구 남편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고향에 사는 친구들은 남편들과 함께 그룹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친분이 있는 터라 경조사엔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남편들끼리도 학교선후배 이거나 집안이거나 직장이 같거나 이웃에서 함께 자랐거나
하는 가까운 인연들이라 아내의 친구 남편들은 만남이 즐겁다고 합니다.
요즘엔 아내보다 남편들이 아내의 모임에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하는군요.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기다려 함께 타고 바닷가에 있는 예식장으로 갔습니다.

예식을 마친 후에 친구들은 전망이 좋은 찻집에 둘러앉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끝없이 즐거운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친구들과 선생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직에 있던 친구들도 이젠 거의 퇴직을 해서 시간에 여유가 생긴 덕에
다들 느긋해졌습니다.
젊을 때 같으면 식구들 저녁밥을 하러 자리를 파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도
다들 이야기에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바닷가에 석양이 지는 시간이 되자
바닷가를 걷자고 하는 친구가 있어서 모두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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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파도에 취한 친구가
너른 백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목청이 워낙 크고 좋은 친구라 파도소리를 반주 삼아

부르는데 우리는 친구의 노래에 취했습니다.
모래사장 위에서 석양의 긴 그림자를 밟으며 듣는친구의 노래는

가슴을 울렸습니다.
노래를 듣다가 친구들이 어울려 즉석 합창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직은 피서 철이 아니라 한산했던 바다가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해변의 모래사장은 우리친구들 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듣기 좋은 친구의 노래를 두어 곡 더 청해 들었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러고 놀았는데….
그룹으로 포크댄스도 하고
이러며 여고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점심을 잘 먹어서 저녁 식사는 걸러도 좋겠는데
강릉에 왔으니 감자옹심이를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강릉시내로 갔습니다.
배부른 중에도 감자옹심이는 맛이 있었습니다.
감자떡도 즉석에서 쪄다 주었습니다.

친구 딸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오랜만에 가게 된 고향은 친정처럼 따뜻했습니다.
이박삼일 동안 잘 먹고 구경 잘하고 잘 쉬고 친구들과 행복한 힐링 여행이었습니다.
밥을 사겠다는 친구들도 여럿이고 서로 자기 집에 와서 자라고 하고
친구들의 환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서울에선 만나도 식사나 하고 차 마시는 정도로 하곤 해어지곤 하는데
고향은 잠자리도 먹거리도 교통수단까지도 친구들이 배려해주었습니다.

임계에 사는 친구 집에서 자기로 오랜 전부터 약속을 해서
친구의 차를 타고 백봉령을 넘어 임계를 갔습니다.
아내의 친구라고 하지만 남편으로선 그다지 반가울리가 없는 손님인데
남편분이 우리를 스스럼없이 대해 주었습니다.
친구들 먹이라고 주방에 슬그머니 고기를 사다 놓기도 했습니다.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추억을 먹고 살 나이 아닙니까? 재미있게 노세요." 이렇게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이고 멋진 배려입니까?
순하고 착한 강원도 남자의 매력입니다.^^

정선의 먹거리 장터, 화암약수, 풍광이 뛰어난 구미정 정선 아리랑 공연예술원
동해 망상해수욕장 묵호등대마을 등 알차게 다닌 여행이라
글쓰기 시간이 많고 스스로 재미있으면 후기를 한 열편쯤 쓸까 생각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오지마을이 없을 정도로 도로가 잘 되어 있고
곳곳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박 삼일 꿈을 꾼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우리 친구들 너무 감사합니다.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15-04-28 at 00:54

    나도 갑자기 고향 가고 싶어집니다.
    고향은 언제나 푸근하고 정답고…. 생각만 해도 달려가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청첩장도 안 오고 어쩌다가 날아드는것은 부고이니
    초상에 가서 여행다닐수도 없어요.

    순이님 고향행에 나도 덩달아 들떠 봅니다.   

  2. 매심당

    2015-04-29 at 00:02

    읽어 내려가며 많이 부러웠습니다.
    친구 남편들과도 스스럼 없기는 쉽지 않거든요.
    친구도 좋고, 고향도 좋고, 계절도 좋고…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3. 怡到

    2015-04-29 at 11:22

    좋은 고향이군요
    강릉-속초-주문진-동해 아주 많이 갔던곳입니다
    그때는 왜그리 자주갔는지,,
    오면 또 가고싶고 무작정 갔다가 별일도없이 그냥 돌아오길 많이도 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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