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 두푼 돼지저금통을 채워 아내 생일을

우리 사위는 아내의 생일날이 되면 돼지 저금통을 깨어 마련한 자금으로
아내의 생일을 하고 다시 큼직한 돼지저금통을 하나 장만합니다.
그 돼지저금통에 주머니에 생기는 잔돈을 꼬박꼬박 채워 넣습니다.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서 주머니에 잔돈이 있으면 한이에게 꺼내 주면서
“한이야 이거 돼지 밥 주자. “그러면 한이는 잔돈을 받아 들고 놀이삼아
재미로 돼지저금통에 갔다가 넣습니다.
그렇게 잔돈을 모아봤자 얼마나 되겠냐 하지만 일 년 365일을 모으면 거액이 됩니다.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천 원짜리 지폐가 대부분이고 가끔은 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올해도 한이엄마 생일이 되어 돼지저금통을 깼는데 70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더랍니다.
그걸 가지고 아내의 생일이 있는 주말에 붙여서 월차를 받아서
네 식구가 여행을 갑니다.
아내의 생일날 쓰려고 일 년 내 돈을 모으는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딸은 결혼 후 가족형성기에 들어간 시기라
한이 엄마의 생일이 있는 매년 7월을 돌아보니 환경이 꾸준히 바뀌었습니다.
한이 엄마가 결혼한 다음해 7월에는 첫아이를 가진 만삭 상태였고
그 다음해는 첫아이 한이를 낳아서 돌이 가까웠고
작년엔 두 째가 뱃속에 자라고 있었고
올해는 일월에 태어난 까꿍이까지 네 식구가 되었습니다.
세 식구까지는 단촐 하니까 해외로 여행을 가기도 하더니
올해는 5개월짜리 까꿍이와 유아사춘기(!)에 있는 한이를 대리고
어디 멀리 가기 힘들었는지 가까운 이천을 다녀왔습니다.

요즘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릭터가 있는 이벤트 형 호텔이 있답니다.
아기가 딸린 젊은 부부를 위한 쉼터라 불경기 속에서도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한이네는 요즘 아기들이 좋아하는 타요버스를 테마로 해서 만든 호텔을
갔었는데 한이가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합니다.
그런 숙박시설엔 저마다 아기를 데리고 오니 서로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었답니다.
로비엔 아기들이 타고 노는 타요 자동차가 있어서 한번 타는데 1000원씩 낸다는데
그걸 타요와 타요친구들이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니
골고루 한 번씩 타게 되어도 만원이 넘게 돈이 나간다고 하는군요.
아기들은 아기들대로 좋고 부모와 어린이가 수영도 하고 놀이기구도 타면서
즐겁게 하루를 즐길 수 있었답니다
조부모가 따라온 가정도 있어서 보기 좋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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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 두푼 모아서 거액을 만들어
아내의 생일에 쓰는 사위의 지혜가 보기 좋습니다.
출근 후에도 하루에 서너 번 이상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집에 있는 아내와 자녀의 안부를 묻는 그 자상함이나
육아나 살림을 분담하고 아내를 위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훌륭해 보입니다.
요리도 얼마나 잘하는지 강원도 할머니라고 감자도 삶아드리고
감자조림을 반찬으로 만들어서 할머니를 대접하더군요.
딸인 나보다 손녀사위가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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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며칠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손녀내외가 사는 것이
어머니께서 과거 시집살이 하던 때를 생각나게 했나 봅니다.
옛날에는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자꾸 할머니 아버지 흉을 봐서 제가 좀 곤란했습니다. ^^
시집살이의 서러움은 오래오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나봅니다.
특히 옛날 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자꾸 무한 반복을 하셨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저녁
밀가루 반죽을 해서 국수를 밀어 저녁상을 차려드리면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식사를 마치곤 각자 땀을 식히러 대문 밖으로 나가신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드시고 떠난 상을 물려받아
저녁식사를 하시기 위해 아기를 (아마 우리 오라버니나 저였을) 안고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먼저 뚝딱 식사를 마친 두 분 중 누구 한명이라도
아기를 안아주면 좋은데 안그래서 너무도 야속하더랍니다.
그 시절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권위 때문에 아버지는 양반이라서
( 남자가 아기를 안아 주는 것이 어른 앞에서 흉이 되었다는군요.)
아기를 안 안아 주었다고 합니다.
식사하라고 아이도 한번 안 안아주시던 할머니 아버지를
요즘 젊은이들이 사는 모습과 비교하니 억울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여름날 국수 드시던 얘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머니의 친정이 우리집에서 10리 쯤 떨어져 있는데
친정아버지 생신이면 모처럼 시어머니께 허락을 받아 친정나들이를 가게 되면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찍 출발해서 먼저 외갓집에 가셨답니다.
어머니는 아침 식사 후 설거지와 청소 등을 마치고 아이를 업고
할머니가 마련해준 선물을 들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외가에 가 보면
아버지는 이미 그곳에 가서 외삼촌들과 놀고 계셨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아버지는 무척 자상한 분이라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고
내가 항변해 봤지만 어머니께서도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 당시 문화가 그랬지 않았을까?
남녀가 유별하여 부부라도 길을 나란히 가지 못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모른 척 길을 갔다고 하는 군요.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셔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으로 알 수밖에 없습니다.^^

순이

2 Comments

  1. 데레사

    2015-07-09 at 11:03

    나는 글 올리기도 싫어 졌습니다.
    그저 멍하게 있습니다.
    오병규씨가 뭘 한다기에 그곳에 손들고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운영진과의 자리가 마련된다면 온갖 얘기 다 할려고요.
    블로그 폐쇄에 관한 포스팅은 전부 읽어서 머리에 저장 해
    두었거든요.

    제발 조블이 그대로 존속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2. 벤조

    2015-07-09 at 13:33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특히 한이더러 돼지 밥먹이라는 아이디어.
    순이님 블로그에서 가끔 아이이어를 얻어요. ㅎㅎ
    그리고 가족 호텔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좋은 사업 아이디어.

    블로그가 이렇게 소통과 정보에 좋은 것을 왜 없애는지 모르겠습니다.
    순이님은 무슨 대책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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