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혹시 바람둥이?

우리 한이가 세 돌입니다.
이틀 전에 한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어요.
같은 달에 생일이 있는 어린이의 생일파티를 모아서 하는데
7월생은 우리 한이 혼자였나 봐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나눠먹을 생일 케잌만 하나 보내 달라고 하더군요.
날이 더워서 전날 사다 놓으면 보관하기도 그렇고 상할 염려도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제과점에 가서 케잌을 샀습니다.
한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처음 해보는 생일파티라
한이 엄마도 한이 할머니도 괜히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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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파티가 있던 오후에 나는 근무를 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려서 받아보니 우리 한이 생일 파티 사진을 딸이 보냈습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웃고 있는데 딸이
"엄마, 한이를 데리러 갔더니 선생님이 밴드에 다 올리지 못한 사진을 보여 주는데
한이랑 별이가 진하게 뽀뽀도 했데." 이러기에
"벌써 아들 여자 친구 질투하는 거야?ㅎㅎㅎ" 했더니
"그런 건 아닌데 한이 너무 웃기지 않아?" 이럽니다.
내가 봐도 웃기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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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하고는 다정하게 끌어안고 사진 찍고
(물론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셨겠지만)
동성 친구와는 데면데면하게 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
뻣뻣하게 구는 것이 꼭 바람둥이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놀이이자
인생의 가장 첫 시험이 되는 질문 있잖아요?
한이에게도 대답 듣는 일이 재미있어서 자꾸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할머니가 좋아 선생님이 좋아?" 이러면
"엄마가 좋아" 이러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한이는 엄마 아빠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까꿍이가 좋아" 라며 질문의 함정을 피해갑니다.
여러번 반복해 물어도 매번 함정에 빠지는 법이 없는 한이 입니다.
어린이집 같은 반에 여자 친구가 두 명 있는데
한명의 이름은 빈이고 또 한명은 별이 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짓궂게 자주 물어봅니다.
"빈이가 좋아 별이가 좋아?" 이렇게 물으면
"아니 혁이가 좋아" 라는 대답을 하면서 정곡을 피해갑니다.
그 대답이 우리 성에 차지 않아서 또 묻습니다.
"한이야 빈이가 예뻐 별이가 예뻐?"
한이는 곤란하면 못 들은 척 하면서 슬쩍 일어나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면 그 대답이 왜 그렇게 듣고 싶은지 모릅니다. ^^

그러다 가끔은 엄마보다 별이가 좋다거나 빈이가 좋다고 해서
그 속내를 엄마에게 들켜서 제 엄마를 섭섭하게 합니다.
만날 제 엄마가 세상에서 젤 예쁘다고 하더니
요즘엔 집에 와서 빈이 얘기도 하고 별이 얘기도 자주 합니다.
아침에 어린이집 가는 걸 잊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에 몰두해 있으면
세수하고 어린이집 가자고 하면 들은 척도 안하는데
" 어린이집에 별이가 와서 우리 한이 기다리겠다." 이러면 놀던 장난감도
던져놓고 벌떡 일어섭니다.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우리 한이가 카사노바 같아 보인다며 괜히 억지를 부려보지만
한이의 여친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이제는 젊은 아가씨들과(!) 비교하면 경쟁력이라곤 없는 할머니가 되었다고 했더니
우리 딸도 "아들 소용없다더니 벌써 여친에게 밀리네…." 이러며 말은 한탄조지만
어느새 한이에게여친이 있다는 것이 너무 대견하고 즐겁습니다.
귀여운 사진을 자꾸 드려다 봐도 싫증이 나지 않고 혼자 보기 아깝다고
옆에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진을 들이대며 봐 달라고 주책을 떱니다.
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귀엽지, 귀엽지” 하면서 남에게

공감을 강요하게 되는데
내 손자 내가 보니 귀엽지 남이 보면 무에 그리 귀엽겠어요. ^^
할머니와 엄마의 질투는 아랑곳없이 한이는 오늘도 씩씩하게
여친들과 놀고 싶어서 부지런히 어린이집으로 갔습니다.

세 돌을 맞은 우리 한이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길!

순이

1 Comment

  1. 데레사

    2015-07-15 at 12:05

    남이 봐도 귀여워요.
    어느새 의젓한 신사가 되어 버렸네요.
    아이들 크는것 보면 우린 그래도 덜 빨리 늙는것 같아요.

    한아. 무럭무럭 잘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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