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 앞마당에서 이런 구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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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친구들과 여행을 다녀보면 날씨 덕이 있습니다.
비가 와서 다니기 어렵거나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거나
그런 날들을 만나지 않고 최상의 날씨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다닙니다.

여행사 가이드 분들이 백두산 천지 같은 장소에 갔을 때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여행객이 이곳까지
어렵게 올라와서 안개나 구름 때문에 천지를 못 보고 갑니다.
맑게 갠 천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어떤 분은 다섯 번을 왔다가도 천지를 못 보고 갔습니다."
이런 립 서비스를 해서 손님을 즐겁게 하는 말도 들어보긴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다들 3대가 덕을 쌓고 살았는지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 갔을 때도 날씨가 좋았습니다.
전날 일기예보에 비오고 천둥번개까지 예보가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바람도 없고 약간 흐린 날씨라 볕이 따갑지 않아서 더 좋았습니다.
공기는 맑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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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 협조를 한 것이 아니라 수덕사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 앞마당에서는
"우리가락 우리마당"이라는 민속공연을 때맞춰 했습니다.
야외 공연이라 비가 오면 취소가 되고 그나마 1년에 몇 번 없는 공연인데

우리 일행이점심을 먹고 수덕사에 도착한 2시에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는 공연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수덕사를 올라가다가 우연히 만난 공연입니다.
사물놀이는 일부러 찾아보려고 해도 드믄 공연입니다.
실내도 아니고 마당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보는 것은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사물놀이의 꽹과리 소리는 나같이 덤덤한 사람의 심장 박동도 빨라지게 하는
묘한 악기입니다.
상모를 돌리는 젊은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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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보셨나요?
저는 이번에 승무를 제대로 봤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된 김묘선이라는 무용가 분인데
승무전수교육을 하는 분이 직접 승무를 추셨습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깍은 머리 /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조지훈 시 ‘승무’ 중)
승무를 보는 내내 이 시가 저절로 입안에 맴돌며 춤사위에 빠져들었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무용가 분이라 고와서 서럽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이얀 고깔과 고요한 춤은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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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어떤 분이 3호선 전철을 타고 동국대학교역을 지나가는데 여승이 타더랍니다.
먹빛 가사 장삼을 입었는데도 어찌나 예쁜지 눈을 못 떼겠더라고 합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비싼 백을 들은 것도 아니고 머리가 긴 것도 아닌데
여승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로 갑자기 전철 안이 환~해 지더랍니다.
어찌 저렇게 예쁜 분이 스님이 되었을까
너무 아깝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니지 누구에게 매어있는 것보다 부처님의 자비 속에
자유롭게 살아서 저런 후광이 느껴질 정도로 예쁜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래도 어쩐지 아까워서(!) 속이 상하더랍니다.
내가 왜 아깝다는 생각을 할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범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여 예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러는 것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 건가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랍니다.
쉰을 넘긴 남자가 할 수 있는 생각치고는 스스로 유치해서 여승을 훔쳐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디서 내렸는지 여승은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혹시 내가 전철에서 졸았나? 그러다 꿈을 꿨나? 뭐에 홀렸나?
그랬다고 하더군요.

수덕사에서도 여승은 보지 못했지만 여자 신도들은 몇 분 스쳐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절에서 일을 돕고 있는 중년 여인들로 보이는데 스님들이 입는 회색 옷을 입고 흰 고무신에
머리는 뒤로 올려붙였는데 그 모습이 속세의 번뇌를 잊은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종교이든 신앙심이 깊은 분들은 행동이 다릅니다.
절에 다니는 친구는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하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700년 된 수덕사의 나무 기둥에 새의 깃털처럼 무늬가 생긴 것을
오래 쳐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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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마당엔 맑은 가을볕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쇠북이 운다는 오후6시까지 그곳에 앉아있고 싶었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데레사

    2015-09-15 at 10:56

    수덕여관, 애환이 서린 곳이지요.
    이응로 화백의 본부인께서 경영하셨던 곳, 저도 수덕여관
    마당에서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자기를 버리고 간 남자를 그리며 한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동백림사건으로 옥에 갇혔을때는 옥바라지를 했고, 그러나 출감후
    다시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린 남자…..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한바퀴를 돌아 보았지요.

    지금은 그 마당에서 승무공연도 하는군요.   

  2. 말그미

    2015-09-15 at 15:21

    여행길에 참 귀한 공연을 보셨군요.
    수덕여관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덧글로 읽으면서
    다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앞에서 하는 공연이라 더 달리
    감상을 하셨겠습니다.    

  3. 선화

    2015-09-16 at 07:49

    수덕사에는 여승들만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데레사님 말씀…그 유명한 여관 이야기는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답사기에도 있습니다

    전철안 이야기…잼나게 읽었습니다 / 우리같은 범인은 잘생긴 스님이나 신부님
    수녀님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도 하게 되지요

    예쁜 가을날에 친구분들과의 행복한 소풍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4. 바위

    2015-09-17 at 07:05

    조지훈 선생의 시 ‘승무’를 고교 국어교과서에서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 보니 ‘세월이 여류如流’하단 생각이 실감납니다.
    요즘은 그 찬송을 잘 부르지 않지만 60년대만 해도 ‘세월이 여류하는데’란
    찬송가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들이 많이 불렀던 찬송가였지요.

    예산 수덕사는 저도 엠티땜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초봄이었는데 개나리가 장관이었지요.
    그 절집이 요즘은 여승들의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만 해도 남자 승려들이 있었던 절이었지요.

    우리나라 불교 선禪을 일으킨 경허 스님이 그 절의 주지였지요.
    하루는 시자인 동산(이분도 후에 큰 스님으로 이름을 날렸지요) 스님과 탁발을 나섰는데
    해가 저물어 절집으로 가다가 사하촌의 주막에 이르렀지요.
    경허 스님이 시자에게 "동산아, 오늘 탁발한 시주쌀을 내려놓아라"고 했답니다.
    동산 스님이 "스님, 절집에는 내일 아침꺼리도 없습니다"고 말했지만
    경허 스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에 해야 할 것이야"하고 그 시주쌀로 술을 마셨지요.
    그러고는 허허 웃으며 "이만하면 단청불사가 잘 됐구나"하고 일어났다지요.
    술로 얼굴이 붉은 걸 비유한 얘기입니다.
    참으로 세상을 초월한 큰 사람의 모습이지요.

    작가 최인호 씨가 남긴 소설 ‘길 없는 길’에 경허 스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2015/09/17 00:37:08
    2015/09/17 00: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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