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살고 있어서 가끔 국철을 탈 때가 있는데 열차에 타고 보면
전방에서 휴가를 나오는 군복을 입은 국군장병들을 많이 만납니다.
분명 군인을 아저씨로 부르고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쓰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엔 왜 장병들이 너무 어리고 애들 같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오빠가 군대를 갈 즈음에는 군인이 오빠 같아 보였고
동생이 군에 갈 시점에 동생벌이 되었다가
조카가 복무 중 일 때는 장병들이 아들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젠 손자를 보고 났더니 그 장병들이 다 손자 같아 보여서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휴가를 나오느라 한껏 군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고
각을 세우고 군인정신이 들어가 씩씩해 보이기는 하지만
할머니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는 가 봅니다.
저런 애기들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하고 우리가 사는 구나 이런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덕사를 가는 길에 윤봉길 의사의 생가를 들려 보게 되었는데
윤봉길의사가 순국한 나이가 25살이더군요.
지금 나이 25살이면 청년이기는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 졸업을 못했거나
취업준비중이거나 해외 연수중인, 아직 부모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 나이인데
윤봉길 의사는 이미 성가를 해서 아내와 아들을 두 명이나둔 장부였습니다.
짐승들은 어미의 태에서 떨어져 나와 숨 쉬는 순간부터 자기발로 걷고
어미의 젖을 스스로 찾아 물곤 하지만
사람은 유난히 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요즘 들어서는
서른이 넘도록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회문화적인 한 모습이고 보편한 생활 형태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시정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보여 집니다.
부모는 자녀를 끝없이 보살펴야하고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너무 긴 시간을 부모에게 의존해서 살다보니 독립된 인격채로 살아가는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윤봉길의사는 19살에 이미 마을 서당의 훈장이 되었더군요.
그중에 공동묘지 모표사건은 유명한 일화라 소개합니다.
공동묘지 모표사건은 윤봉길의사가 문맹퇴치운동 등 농민운동에
전념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윤의사가 서당의 훈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문물을 익히던 중
글을 모르는 한 청년이 마을 인근의 덕숭산 공동묘지 팻말을 한 아름 뽑아들고 와서
의사에게 글을 아느냐고 묻고는 자기 아버지의 묘비를 찾아달라고 간청한 일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 아버지의 묘비는 물론이고 주변의 묘비까지 아무런 표시를
남기지 않고 뽑아 온 것입니다.
묘표를 뽑아 와서 누구의 것인지는 알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나머지 묘비의 위치마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 개 뽑아 둔 묘표를 가지고 똑같이 생긴 봉분으로 누구의 묘를 찾는 것은
불가는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의사는 문맹퇴치를 위한 농민운동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세의 나이에 이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윤봉길 의사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계몽운동만으로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선생을 만난 윤 의사는 독립운동에 뜻을 모으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김구와 함께 홍구공원 거사를 계획합니다.
윤 의사의 의거는 널리 알려져 중국의 한인 독립운동 지원과
임시정부의 활성화 등 이후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윤봉길의사의 생가를 돌아보면서
25세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 짧지만 강렬했던 윤 의사의 생애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그가 꿈꾸었던 나라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윤봉길의사 생가에 있는 연꽃이 핀 연못가에서 친구들과)
평균수명이 짧을 때라 더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장부의 삶을 살았던 윤의사가 순국한 나이가 25살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고 용감한 생이었습니다.
요즘엔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부모의 품에서 떠나 25살이 아니라 35살에라도
시집 장가라도 가주면(!) 감사한 지경이니 우리 부모 세대가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대 즈음에는 자녀가 부모와 다른 독립된 인격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변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 북한과의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험속에서도
전방을 지키고 전역까지 미룬 장병들이 있어서 든든한 마음입니다.
순이
중심윤
2015-09-21 at 08:40
아닌게 아니라 저도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어휴~ 저 어린 것들이 무슨 전쟁을…!!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 늙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말하자면.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에 대해 ‘집단 의존증’.. 뭐 이런게 있는건 아닌지..
노당큰형부
2015-09-21 at 21:37
맞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군인을 보는 우리가
나이가 많아 진다는 것 일테지요
내나이가 어렸을땐 군인은 아저씨였고
내가 부모되어 자식을 군에 보냈을땐 군인은 다 자식 같았지요.
이젠 손주가 군대갈 나이가 되었으니
앳띤 얼굴의 손주를 보게 됩니다.
어려 보이지만
나름 나라를 지키는덴 한치의 양보도 없을테고요 ㅎㅎ
좋은날
2015-09-21 at 22:37
연평해전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결코 어리게만 보이지만 나름의 국가관과 책임감으로
연평해전을 보여줍니다.
내가 군대생활할 때의 10.26부터 시작하여 12.12까지 국란을 겪어내면서
그 당시에 갖었던 서늘한 기운과 기상.
지금사 생각하면 어린나이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명령 하나로 돌격 앞으로!!! 할 준비가
완벽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 앳띤 군인들도 그 나름의 책임감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복장이 참 중요합니다.
군복에서 예비군복을 갈아입으니 긴장의 끈이 풀어집디다.
전봇대에 소변도 스스럼없이 보게되는 예비군 훈련소에서의 모습.
내 등뒤에 부모님이 계시다는 최소단위의 가족愛부터 시발점으로
크게는 나라를 지키라고 입혀준 군복에 대한 책임감.
아마 군복입은 값을 분명 하는 우리 군인들임을 든든하게 여깁니다.
연평해전.. 눈물나더만요.
좋은날
2015-09-21 at 22:41
참.. 외람되지만 덧붙여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서
히말때기 한 개두 읎는 이노무 나라를
다시 일켜세우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 민족의 근간을 확연히 다져놓으신
우뚝선 정신적 지줏대입니다.
김삿갓
2015-09-22 at 06:06
군대에선 절대적 으로 철없는 나이의 남자들을 필요로 하지요.
그 나이때는 죽음 같은게 두렵지 않고 어떤일을 당해도 무사하다는
착각들을 하니까요. 그런대다 조국에 대한 애착심 (편들기)도 강한것
같습니다. 전 그래도 고국 방문때 보면 미국에 있는 젊은이들 보단
철들이 훨씬 더 많이들은것 같은 느낌이 나던데요. 이곳선 나이들어도
(저도..ㅋ) 철부지 짓을 많이들 합니다… 가령 사람들 많은 데서
마누라를 허니 라 부른다 던지… ㅋ
순이님 조선일보 방문기 잘 읽었습니다. 글씨 쓰신 완벽한 솜씨를 보고
놀랐습니다. 덕분에 거길 가질 않았어도 상상이 되였고요.
여러모로 감사 합니다. ^_____________^ 좋은 시간 되십시요 순이님
바위
2015-09-23 at 01:36
세상은 갈수록 첨단화되어 가는데
사람의 정신연령은 더욱 어려지는 것 같습니다.
자립할 나이가 되어도 부모를 의지하는 자식들이 늘어나다 보니
‘캥거루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나 봅니다.
제게도 고1, 초5 손주가 있지만
어떤 때는 가슴이 멍멍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하는 짓들이 어린아이 같아서지요.
가끔 티비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는데,
하나 같이 열 살 안팎의 어린애들이 밥도 하고 설거지 하는 걸 봅니다.
가정환경이 어려우면 정신연령이 더 높아지는 걸까요.
해방 이후 참담했던 시절,
우리들 세대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른들 몫까지 다했지요.
온실화된 오늘의 가정교육,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