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은 커녕 고용 계약만 연장해 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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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과 개인은 국경 지역에서 제사, 례배, 앉아 버티기를 금지해야 한다.)

지금도 남아 있나 모르겠지만 7년 전 쯤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 오른쪽에 이런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을 위해 한문을 번역해서 안내판을 저렇게 엉터리로 했더군요.
민족의 영산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백두산을 드나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걸 보고 항의도 한 번 안 했는지 안내판은 세월의 풍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조블이 문을 닫는 다고 한 7월부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도 하도 몸살이 나는 것처럼 불편합니다.
생활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버팀목이 삐걱 거리는 듯
불안정감이주는 불편감이고 마음의 혼란입니다.
인생에 만세반석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되고 믿음직한 마을 느티나무 그늘 같은 것이 그리워집니다.
백두산 천지 입구에 있는 저 안내판 속에 있는 “앉아 버티기”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앉아 버티지 말라는 것은 오래 머물지 말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천지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제사를 지낸다거나 마음에 소원을 빌고 싶다든가
예배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오래 머물다 보니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누구라도 천지를 보면 감격에 겨워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충동이 있을 만한 장소입니다.
천지가 보이는 순간 그 신비감에 저절로 와~~~~ 하는 소리가 속에서 부터 올라옵니다.

오래 버티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천지를 봤으면 빨리빨리 내려가고 오랜 시간 있지 말라는 뜻 같지요?
“앉아 버티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뜻을 굽히거나 남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다." 로 나와 있습니다.
요즘 저런 안내문 밑에서 오래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아주 초라합니다.
12월 말에 문을 닫는 다고 하는데 계속 포스팅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어서 입니다.
문을 닫겠다고 하기 전에 나갔든지
공고문이 뜨면 얼른 이사 갈 차비라도 해야지 이렇게 계속 하는 것은
남에게 불편감을 주면서 버티고 앉아 있는 것 같아 편치 않습니다.

아직 60년 밖에 못 살았는데 (?)
있어야 할 것 들이 나보다 먼저 사라져서 어느 땐 몹시 당황해서 어리둥절합니다.
20년이나 즐겨 다니던 우리 동네 목욕탕이 최신 스파 시설에 밀려 문을 닫을 때도 그랬고
단골 미용실 원장이 시설이 후져서 인지 손님이 없어서 버티지 못하고 떠났고
초대형 할인매장에 밀려 문 닫는 구멍가게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일산 롯데백화점 9층에 있던 영풍문고가 지난 달 책을 사러 가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통 채로 사라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치면 동생이 나를 앞질러 먼저 저세상으로 간 일이 가장 큽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함께 즐기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지나 다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 년마다 새롭게 고용주와 고용계약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일 년짜리 피고용인입니다.
고용인이 재계약을 못하겠다고 하면 나는 직장을 나와야 합니다.
동생을 먼저 보내고 약국 문을 닫고 병원에서 월급쟁이를 하는 것이 벌써4년차 입니다.
얼마 전 다시 고용계약을 갱신한 것을 안 직원들이 나에게 "연봉협상을 잘 했나?" 물었습니다.
난 멎적은 느낌이 들어 어깨를 으쓱하며“급여를 올려달라고 하기는커녕 자르지만

말라고 했다.” 고 말 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오너와 1년짜리 재계약을 할 때 고용계약서에 군말 없이 서명을 하니까
“월급을 많이 올려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오너가 말했습니다.
“일 그만두고 나가라고만 하지 말라”고 농담처럼받으며 웃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함께 일해 주셔서너무 감사하지요.” 그러시긴 했지만
실제로 나이 먹었으니 그만 두라고 할까봐 월급은 안 올려줘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부담을 드리는 일이 될까봐

"언제라도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나가라고 하세요." 라고 여지를 두었습니다.

상대는 오너이자 갑이고 나는 피고용인이니까 을입니다.

고용의 선택권은 오너가 가지고 있어야하잖아요.

조금 젊다거나 용기가 있으면 다른 직장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만
난 그런 걸 잘 못하겠습니다.
직장에서 나를 필요로 하기보다 내가 직장이 필요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자신감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할 능력이 떨어집니다.

남녀가 사귀다 헤어지면 남자는 여자가 찼다고 말하고 여자는 남자가 찼다고 합니다.
내가 버려지기보다 내가 버린 것이 자존심이 덜 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난 만날 오래 앉아 버티다가 버림을 받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변화를 받아 드리지 못하고 너무 오래 가는 것은 지루하고 질리는 일 입니다…
블로그도 내가 필요로 해서 못 떠나고 있는 것이고
다른데 가서 정붙이고 살 것 같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도 사는데 이까짓(!) 블로그야! 할 수도 있는데
그냥 이렇게 오래 버티기를 하고 있네요.
결코 잘하는 짓은 아닌 것을 압니다.

빠른 변화 없이 이대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욕심입니다.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물론 인지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일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이사하지 않고)
익숙한 이웃들과 사이좋게 살다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참나무.

    2015-10-05 at 07:10

    영화 ‘인턴’ 생각이나네요. 안보셨으면 보셔요~~

    로버트 드 니로 주연입니다.
       

  2. 데레사

    2015-10-05 at 18:47

    나도 그래요.
    익숙한 이웃들과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다가 세상 끝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솔직히 포스팅 하는데 힘은 좀 빠지지만, 그리고 블로그 용량도
    저는 조금밖에 남지 않아서 그때까지 버틸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문닫는 날 까지는 열심히 해 볼려고요.
    용량은 이제 증설같은건 없을테니까 다 되면 쓸데없는것 삭제해서
    공간들을 좀 만들어야 할까봐요.

    이 짓도 안 하면 살 맛이 많이 줄어들것 같습니다.   

  3. 이종미

    2015-10-06 at 01:07

    버티는자가 천국간다했습니다. 오래오래 버티어 주세요. 따뜻한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있습니다.   

  4. 김경숙

    2015-10-06 at 10:02

    마음에 와 닿는글 즐겁게 행복하게 늘
    소리없이 몇년동안 수니님의 글을 읽어온 팬입니다.
    글을 읽고
    때론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공감하고
    때론 힘이되기도 하는데….어디 가시든 따라 가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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