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디를 가 볼까? 독거노인의 여행

주중에 대구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ktx만 타면 집에서 출발해서 어머니께 도착하기까지
4시간 남짓이면 되는데도 자주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전화를 드리면 "바쁜데 오지 마라" 하시지만 가면 무척 좋아합니다.
어머니께서 87세시라 행동반경이 많이 줄어드셔서

기회가 되는 대로 모시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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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의 가을)

어머니는 동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먼저 대구 달성공원엘 갔습니다.
달성공원엔 곰 호랑이 사자, 코끼리, 사슴 등 큰 동물들이 많습니다.
주중이라 다들 학교로 직장일로 바빠서 동행할 사람들이 없어서 어머니와 단 둘이서
택시를 타고 가서 천천히 동물들을 둘러보다가 가지고 간 과일을 의자에 앉아 먹기도 하고

낙엽 떨어지는가을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호랑이를 보고 사자우리 쪽으로 가는데, 수돗가에 200~300 명 쯤 되는 어르신들이
줄을 서거나 주변에 앉아계셨습니다.
대게 등산복 차림들이라 무슨 모임이 있나 했더니 무료급식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가 펜스에 이마트에서 하는 봉사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습니다.
정오가 덜 된 시간이라 준비가 한창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숫자가 많은 것을 보면 미리 예고된 무료급식이던지
아니면 매주 정규적으로 하는 행사라고 보여 집니다.
"저 많은 사람들에게 식사가 다 돌아가겠는지
뭘 해서 저 사람들을 다 먹일지"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쳐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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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이 좋다고 해도 바람결은 쌀쌀하고 낙엽이 떨어져 굴러다니는데
노상에서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모여든 노인 중에는 전동차를 탄
몸이 불편한 분도 5~6명 눈에 띄었고 지팡이를 짚은 분도 많았습니다.
파랗고 빨간 바람막이 같은 등산복을 입은 분들이 많아서 멀리서 보는 것 하고
가까이서 보는 것 하고는 사뭇 달랐습니다.
공원을 다 돌았기에 나오려고 입구 쪽으로 오는데 그때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료급식소를 향해 자꾸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건강해 보이는 분 보다는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분, 연세가 많은 분들이
힘들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가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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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화원유원지 꽃밭에서)

달성공원에서 나와 다음 여행지인 화원유원지로 가려고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북부 주차장엘 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대구가 익숙지 않은 곳이라 달성공원에서 북부주차장 가는 버스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저도 객지사람이라 잘 모르는데요, 조금 기다려 보세요. 얘한테 물어볼게요."
이러고 휴대폰으로 길 찾기 검색을 하는 중에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려고
저쪽으로 가시기에 그게 빠르겠다 싶어서 검색을 접었습니다.
잠시 후 택시가 와서 어머니랑 타고 출발하려는데 그 할머니가
조수석 옆에 유리문이 내려져 있으니까 한 손으로 문짝을 잡고 문안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기사 분께 "날 북부 주차장엘 대려다 주소" 이러십니다.
기사 분은 곤란해 하면서 "어무이요 먼저 탄 손님이 있어요." 이러시자
"길에 나서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데 어째 달성공원은 이런고?" 하십니다.
내가 기사분께 "가는 길이면 북부주차장에 모셔다 드리세요." 하니까
기사 분은 " 조금 돌아서 가는데 괜찮습니까?" 라고 묻기에
괜찮다고 하고는 할머니를 태웠습니다.
할머니는 공원에서 떡국을 한 그릇 얻어 드시고 술도 한잔 했다며

기분이 좋으신지 말씀이 많았습니다.

기사 분은 "어무이 연세가 어찌 되셨는데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여든 다섯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의성 사시는데 첫 차를 타고 달성공원이 좋다고 해서 구경을 왔다고 했습니다.
친구도 없이 혼자 노인이 오시냐고 하자 원래 혼자 다닌다고 합니다.
아들이 셋이 있는데 두 명은 대구에 한명은 부산에 살고 있지만
시골집에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자 기사분이
“의성에서 대구까지 왔으면 아들집에 들렸다 가지 바로 북부주차장엘 가시냐?”고 하니
"아들이 오래 사는 엄마 지겨울 건데 뭣 하러 가냐"고 하셨습니다.
아들 덕 보기보다는 길에 나서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오전에도 북부터미널에 내려 어떤 아주머니에게 달성공원을 물으니까
버스를 태워주고 버스비까지 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달성공원을 돌아 동물구경을 하고 마침 무료급식을 하는 떡국도
한 그릇 얻어 드시고 술까지 드신 할머니는 세상 인심이 참좋다고 하시면서도
아들들과는 거의 단절하고 사시는 듯 아들집에는 안 가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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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인심을 믿고 혼자 도시 투어를 다니는 85세의 용감한 할머니, 대구 북부 주차장 앞)

기사분과 할머니가 주고받은 이야기의 결론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으니 아들도 며느리도 다 불편하다고 합니다.

기력이 다 할때까지 혼자 사시다가 죽겠다고 각오를 다지시더군요.

85살 노인이 혼자 힘으로 대구 투어를 나선 것도 대단하지만
할머니께서 사회의 인심을 신뢰해서 안심하고 먼 길을 나설 수 있는

것도 노인 문화의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연세가 많아도 걸을 수 있고 용기 있다면 여행이 안전하고 즐거울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세 명이나 있는데 오래 사는 엄마를 지겨워 할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혈육의 정은 약화되었고 국가의 힘을 믿고 사는 시대가 되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에서 국가의 보호나 의료혜택을 받는 분들은, 살기 어려운 자녀를 둔 노인들 보다
형편이 나은 것을 보기도 합니다.
국가의 혜택이 불효하는 자녀보다 백번 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버스투어를 즐기시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하루를 보내시나 봅니다.

건강하시니 가능한 일이라 할머니가 오래 투어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택시를 태워준 기사 분과 우리 어머니와 나에게도 여러번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 할머니는 성공적인 여행에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내일은 어디를 가 볼까?"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보면요.

그래도 85세 노인이 낮술까지 드시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의성까지 돌아가서
혼자 저녁식사를 해 드실 것을 생각하니 쓸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이

6 Comments

  1. 벤자민

    2015-10-23 at 02:54

    여기도 복지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시내 중심가 역 앞에 가면 무료 급식차에 줄을 많이 섭니다
    그런 걸 볼 때 마다 느끼는 건
    저 노인들은 자식이 없나? 배우자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멀쩡 할때 앞으로 대책을 잘 해둬야겟구나하는 생각도요

    제가 사는 N.S.W 주는 한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도
    몇 배가 넓습니다
    우리 주에 있는 모든 관광지는 시드니 시내와 마찬가지로
    하우에 2 불 50 센트 ( 2천3백원정도)만 항공기를 제외하곤
    무슨 교통수단이라도 아용 할 수있습니다
    또 일년에 우리주안에 4 번 특정 관광코스를 여행 할 수있는 예약 바우쳐를 주지요
    물론 2불50센트는 내야 합니디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얼마던지 놀러 다닐 수도 있는데도
    저렇게 늙어 무료 급식이나 타 먹고 살고~ 참 남의 일 같지 않더군요

    참 이건 제 개인 생각인데
    한국은 65세 넘으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던데
    전 작은 얼마라도 내는게 좋다고 생각 합니다
    여긴 노인 복지 국가지만 공짜는 없습니다   

  2. 데레사

    2015-10-23 at 04:17

    한국은 65세가 넘으면 대개가 다 입장료가 없습니다.
    지하철도 공짜고, 그러니 몸만 건강하면 어디든 갈데가 많아요.
    물론 점심은 사먹어야겠지만, 그것도 김밥이 아주 싸거든요.
    이건 벤님에 대한 답변이 되었네요. ㅎ

    순이님
    정말 잘 하셨어요.
    우리 인심들이 이제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 베푸는것도 어렵지요.
    이상한 일들이 하두 많아서죠.
       

  3. 睿元예원

    2015-10-23 at 08:26

    순이님,
    그 어르신 데려다 주신것
    참 좋아 보입니다.
    ^.^   

  4. 소리울

    2015-10-24 at 04:39

    천사표 순이님 화이팅   

  5. 리나아

    2015-10-26 at 06:34

    순이님의 친정어머니는 참 복이 많으십니다.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챙겨주는 자녀가 있는 노년의 삶이 예전엔 몰랐는데
    남달라보이는 건, 제가 아들만 있어서 더 그런느낌이 큰것 같아요.

       

  6. 벤조

    2015-10-27 at 17:17

    아들 낳았다고 좋아하던 것, 정말 옛날옛날 야그 인가요?
    저도 가슴이 싸아~합니다.
    가을 바람은 부는데, 저 노인네는 또 어디로 정처없이 가실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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