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더 황홀한 단풍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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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비 많이 온다는데 비와도 출발해요?"
친구가 카톡방에 문의를 하기에
"비가 와도 학교는 가지요?"
라고 답장을 하기는 했는데 날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단풍이 가장 좋다는 11월 주말에
여태 가물던 날씨가 하필 여행을 떠나려는데 비가 온다니……
단풍 시즌이 절정에 이를 때라 길이 막일 것 같아서
일부러 기차여행을 선택해 가는 건데,
우리 친구들과 여행가면 늘 날 덕이 있다고 큰소리 쳤는데,
자랑 끝에 뭐가 어떻다고 하더니 이번이 그렇게 되었네,
이러다가
너무 가물어서 비가 와야지, 여행은 재미없더라도!
비가 푹 와야 가뭄이 해소되지 비가 안와서 전국적으로 난린데!
하긴 재미없을 게 뭐 있어?
비 때문에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숙소에서 놀지 뭐.
그러며 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새벽길을 나서는데 좀 서글프다고 그럴까?
청승스럽다고 할까?
날씨가 그러니 친구들과 산뜻하게 떠나던 그런 느낌이 아니더군요.

강원도 사는 친구가 수리취떡을 해서 큰 상자로 한 상자를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먹으라고 우리 집으로 택배를 보냈습니다.
놀러가는 게 무슨 벼슬이나 하러 간다고 떡을 해서 택배로 보내는지
감사하면서도 어찌나 미안한지 …….
떡을 택배로 받아 놓은 우리 딸이
“엄마 친구들은 참 통도 커요! 그리고 대단한 거 같아요. 본인은 못 가면서
친구들 먹어가며 여행하라고 이러는 분들이 어디 있겠어요?
아마 이런 친구들은 엄마친구가 유일할 것 같아요.“ 이러더군요.
요즘 세대의 친구 관계를 생각하면 좀 특이하긴 합니다.
친구들 여행 가는데 떡을 해서 택배로 보내는 친구는 전국적으로
봐도 우리친구 한 명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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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보낸 친구에게 감사한 만큼 난 친구들에게 가져가
잘 나눠 먹일 책임이 있어서 커다란 떡 박스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아침을 굶고 새벽기차를 타야하는 10명의 친구들 먹일 커피를 끓여 배낭에 넣고
춥다고 해서 옷은 껴입고 우산을 들고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서다가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혼자 웃었습니다.
경비실에서 경비를 서시던 분이 모니터로 나를 보고 있었다면
그분도 웃었을 것 같습니다.
놀러 가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

창밖에 비가 오고 있어도

열차 안에 모여앉아 친구들이랑 음식을 먹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맛있게 먹는 일은 행복감이 있고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열차에서 아침으로 몇 가지 음식을 먹었을까 세어봤습니다.
우선 친구가 보낸 옛날 임금님만 드셨다는 수리취떡.
커피. 군고구마. 빵. 아미씨로 만든 강정. 사과
귤. 단감. 땅콩. 크랙커. 사탕 생수까지 ~~~
입이 즐거우면 만사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래도 우리 친구들은 다 날씬하고 보기 좋은 할머니들입니다.)

먹다가 보니 남원역입니다.
비는 오지만 바람도 없고 날씨가 포근한 가운데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뭐 준비할 것이 있냐고 묻기에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보온에 신경 써서 옷을 입고 오면 된다고 했더니
다들 우산과 비옷까지 잘 챙겨 왔습니다.
우리가 이젠 환갑노인들이야 그러니 준비 할 것은 건강이야
어떤 친구가 말하자 모두 그래그래 하면서 공감을 합니다.

그러니 다들 단풍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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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과장을 하자면 우리 생애에 가장 황홀한 단풍 길을 걸어봤습니다.
경남 산청에는 길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가로수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가야의 마지막 구형왕의 무덤이 있는 구형왕릉을 가는 길도 그렇고
대원사를 가는 길과 정취암을 가는 길에도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오는 가을비 속에서도 숲이 얼마나환~한지
가을 단풍의 화려함은꽃피는 봄날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여자들이 쓰는 화장품 중에 피부의 건조를 막기 위해 쓰는 미스트라는 것이 있는데
딱 그 정도의 안개같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천연보습을 하면서 다녔습니다.
안개비 속에서 우산 쓴 친구들이 얼마나 예쁜지 난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쓴 사진은 특이하기도 하고

색감이 더 선명하고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단풍든 숲길에서 보는 할머니들은
여고 시절의 돌아간 듯 예쁘고 천진해 보였습니다.
비오는 날 단풍이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어요.

순이

2 Comments

  1. 睿元예원

    2015-11-09 at 04:27

    비가 오면 단풍이 더욱 곱지요.
    친구분들과 즐거운 시간이셨겠어요.
    수리취떡 귀한떡을 받으셨다니
    쬐끔 부럽습니다.^.^   

  2. 데레사

    2015-11-09 at 19:45

    지리산 쪽으로 가셨군요.
    산청, 대원사… 이런 낯익은 지명들이 반갑습니다.

    단풍도 이제 곧 없어질텐데 저도 한 두곳 더 가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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