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친구

현관문 번호 키 누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한이가 현관까지 뛰어나오며 할머니 왔다고 폴짝폴짝 뛰면서 반가워합니다.
10개월도 아직 꼭 채우지 못한 까꿍이도 팔을 흔들며 앉은 자리에서 들썩거립니다.
애완견을 기르는 분은 집에 들어갈 때 강아지가 데면데면 하지 않고
주인에게 뛰어 오르며 반갑게 맞아 주는 맛에 기른다고도 합니다.
강아지도 그런데 손자들이 이렇게 반기는 집에 들어가는 기분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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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

식구들이 외출을 위해 한차에 타면 까꿍이는 내가 안고 가는데
까꿍이는 차에 흔들리면 금방 잠이 듭니다.
할머니 품을 미덥다고 평안하게 잠든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할머니가 주는 것은 의심 없이 입으로 가져가서 먹고
눈만 마주치면 방글방글 웃으며 안겨옵니다.
업어주면 내 등에서도 들썩들썩 하면서 검지손가락을 펴서 방향을 지시합니다.
아직 걷지를 못하니까 할머니를 말처럼 생각하고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하는 겁니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업기만 하면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를 하고 몸은 이미 현관 쪽으로 돌려 있습니다.
못하는 말이 없는 네 살짜리 한이는 “할머니 이름이 뭐야?” 하고 물으면
“한이 할머니 이름은 최수니” 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하는데
이름보다도 “한이 할머니”라는 말이 듣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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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 깍두기를 담았어요. ^^)

손자를 키우면서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마조마 할 때도 많습니다.
까꿍이가 감기를 앓느라고 예방접종이 미뤄졌기에 밀린 예방접종을 위해
단골 소아과에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 태어나고 그 병원 소아과를 다니고 있으니
우리 까꿍이 선생님은 까꿍이를 잘 압니다.
예방접종을 하려고 입안도 보고 코도 보고 입도 보고 하시더니
까꿍이 귀 고막에 물이 찼다고 합니다.
항생제를 처방해 주며 가끔 감기 끝에 그럴 수 있다며 약을 잘 먹이라고 했습니다.
아기 고막에 물이 찼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걱정이 되는지
이웃에 개업해 있는 이비인후과 원장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소아과에서 10개월 된 아기 귀에 물이 찼다고 항생제를 먹이라고 하는데
약만 먹이면 되는 건가 물었더니 본인이 직접 보시겠다고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아기를 데리고 주엽역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토요일은 오전만 진료를 해서 환자분들이 몰려 복잡했습니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바쁜 중에도 원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까꿍이를 엄마가 안고 있었는데 진료실 분위기를 알고 울음을 터트리더니
진료의자에 앉으려고 하니까 아기가 나에게 오겠다고 손을 벌리고 울어서
아기를 얼떨결에 받아 안고 내가 진료의자에 앉았습니다.
엄마 보다 할머니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할머니 품으로 왔지만
진료를 안 받고 나올 수도 없잖아요.
까꿍이 엄마는 자기 가슴께로 두 손을 올려 기도하듯 맞잡고 울상이 됩니다.

원장선생님이 내 품에 안겨 우는 아기를 보자
"내가 할머니 친구야. 어디보자." 이러는데
까꿍이 울음소리에 마음이 쪼그라져 있다가 “할머니 친구”라는 말이 의지가 됩니다.
할머니 친군데 어련히 잘 봐 줄까 해서요.

귀가 얼마나 예민한 곳입니까?
아기는 이경을 넣고 보려고 하자 더 몸부림을 칩니다.
까꿍이 엄마는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나는 아기가 버둥거리지 못하게 손을 모아 몸을 꽉 조여 안고
간호사 두 분이 가꿍이 머리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았습니다.
까꿍이 귀를 이경 가운데로 빛을 비춰서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가늘고 긴 핀셋으로 무언가 꺼내는데 커다란 귀지입니다.
양쪽 귀에서 커다란 귀지가 나왔습니다.
귀지가 고막에 붙어 있어서 얼른 보기에 고막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원장님이 소독 솜에 붙여 놓은 귀지를 보여주며
“내가 다 시원하네.” 이러시더군요.
역시 전문의 손길이다른 것을알 수 있었습니다.
고막에 물이 있다고 항생제만 먹였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아찔합니다.
귀지가 떨어져 나오지 않고 고막에 붙어있는데 아기에게 항생제를 먹여서
더 단단하게 되어 고막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잖아요.
심하게 움직이는 아기의 귀를 들여다보면서 이물질을 꺼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오랜 기간 임상경험과 감각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친구인 이비인후과 원장님이 가까이 계셔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손자에게 얻는 기쁨 만큼
손자 키우는 일에 할머니도 마음을 졸여야 하고힘껏 조력을 해야합니다.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15-11-17 at 09:43

    손주는 자식보다 귀엽지만 또 자식보다 더 조심스럽더라구요.
    혹 뭐가 잘못될까봐 늘 노심초사지요.

    그런데 어린데 왠 귀지가 그렇게 큰게 있었을까요?
    읽는 저도 속이 다 시원합니다.   

  2. 선화

    2015-11-17 at 12:54

    ㅎㅎㅎ 귀지~ㅎ

    넘넘 예쁘네요 손주들~^^

    요즘 할매님들은 대단합니다 (제주에서 보니…)
    50대중후반부터 손주들이 있는데 (빠른 사람들은..) 제 주변의 할머니들은
    제주에 와서 미리 터를 잡고 사시더라구요 이유가 손주들을 위해…
    국제학교엘 보내려구요 유치원부터….ㅎ

    누이좋고~매부좋고~ 넘 좋답니다 할머니들이 집을 구해놓고 미리 미리
    살고 계시더라구요 것도 좋은 방법인듯하지요?   

  3. 말그미

    2015-12-01 at 13:29

    아고~
    예뻐요, 한이 까꿍이…!!
    아이들 속에 계시는 순이 님,
    매일매일 젊어지실 것 같아요.
    늘 행복하시니…^^

    저도 12월 끝무렵 아이들한테 가려구요.
    준호와 동생 기안이가 꼭 한이와 까꿍이 또래라 더 예쁩니다. ^^

    아이고~
    아찔합니다.
    항생제 안 먹이기를요.
    그거 한 번쯤 먹어도 별일이야 없겠지만 엉뚱한 일을
    하지 않아서요.
    천만다행이고 속이 시원합니다.

    준호 동생 기안이는 감기끝 중이염으로 난청이 있어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전전긍긍입니다.
    곧 괜찮아질 것을 믿으려구요.
    말 배우는데 아무래도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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