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근무시간 중에 경찰 두 명이 들이 닥칩니다.
정복 입은 경찰이 병원을 찾아오는 일이 유쾌한 일이 아니고 보니
원치 않는 사람이나 예기치 못했던 신분의 사람의 경우에 들이닥친다고 하나봅니다.
사실 “들이닥친다고” 까지 할 말은 아닌데 정복을 입은 경찰 두 분이
병원에 오는 일은 처음 보는 입니다.
토요일 오후라 윗분들이 다 퇴근하고 난 시간이라 내가 경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경찰 두 분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져 있고 허리에 차고 있는 무전기에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소리들이 어지러운 잡음과 함께 흘러나옵니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경찰에 물었더니
남자 환자가 병원에 감금되어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는 겁니다.
“정신과 병동도 아니고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감금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감금할 시설도 요양병원엔 없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병실마다 보호자들이 면회를 많이 와 있는 상태였고 면회를 오는 분,
면회를 마치고 가는 분 등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본
경찰은 신고한 환자분을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신고한 분이 누군가 봤더니 요즘 들어 부쩍 말썽이 많은 분이라 보호자에게
퇴원하시라고 권고중인 할아버지셨습니다.
감금되었다고 경찰을 부른 할아버지는
오래전 부인이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혼자 사시다가 허리를 다친 후로
치료와 요양을 겸하여 우리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분에겐 외동딸이 한 분 계신데 우리 병원근처에 사시니까
딸이 자주 면회를 오려고 딸의 집과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 입원시킨 경우인데
할아버지가 허리보조기를 하고 지팡이를 짚으면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입원생활이 지루해 지자 할아버지는 퇴원하시겠다고 딸에게 조르는데
따님은 아버지 혼자 생활하시기 어렵고 따님이 자기 집에 모실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겨울을 나라고 아버지를 설득하나 봅니다.
따님도 자녀를 키우면서 혼자 사시나본데 형편이 좋지 않으신 듯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드셨어도 보기 좋은 인물이고,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분입니다.
요즘도 카바레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카바레 출입을 주로 하면서
춤도 열심히 추시고 즐겁게 사셨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외동딸이 아버지 때문에 여러모로 고생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식사는 스프와 샐러드 빵으로 된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시고
병원 시설도 타박하고, 사소한 불평이 많고 고집스럽게 여러 번 말씀하시고
트집을 잡아 간병인을 괴롭히고 큰 소리를 내는 등 괴팍하고 까다로운 환자입니다.
약간의 인지장애도 있는 분이라 그렇게 이해를 하고 다독거려 정서적 지지를 하면서
어렵고 불편하지만 병원에서 모시고 있는데 경찰을 부른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경찰을 부르던 아침나절에도 병원 밖으로 무단외출을 다녀오신 터라
내가 설명하기 전에 감금당했다는 거짓말은 경찰에게 금방 들통이 났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경찰에게 엉뚱한 말씀을 늘어놓았습니다.
딸이 한명 있는데 퇴원도 안 시켜주고 내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퇴원이 안 될 것 같아서 거짓으로 감금되었다고 신고했다는 겁니다.
딸이 할아버지 재산을 다 가로채서 재산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자 경찰은
이런 문제는 형사적 책임을 물을 그런 사안이 아니고 따님에게 준 재산을 찾고 싶으면
법원에 가서 민사재판을 신청해야 하고 딸이 병원에 감금시켰다는 말이나 병원에
버려졌다는 말은 법적논리로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모를 버렸다는 말이 성립이 되려면 인적이 드믄 산 속이나, 집을 찾아올 수 없을 정도의
먼 곳에 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하고 병원에 입원시켜서 병원비를
꼬박꼬박 따님이 내 주고 있는 것은 아버지를 딸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 억울하면 법원에 가서 민사소송으로 재산을 찾으라고 조언하더군요.
따님이 아버지 재산을 다 가로챘다고 하는데 그건 아버지와 딸이 해결해야지
경찰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하면서
만약 할아버지 재산을 딸이 가로챘다면 법원에 가셔서 소송을 제기하라고
법원 위치까지 가르쳐 주더군요.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법원이 있으니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할아버지는 법원을 다녀오시더니 풀이 죽어계셨습니다.
경찰의 조언대로 딸을 고소했냐고 물었더니
"고소는 아니고 딸이 괘씸해서 호적에서 파 버리려고 갔는데 딸이 사는 집 주소를 모르고
주민등록 번호를 못 외워서 접수를 못했다."고 엉뚱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원에서도 곤란하니까 그렇게 설명을 해서 돌려보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딸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협박의 수단으로 “호적을 파 버리겠다.”고 하셨지만
요즘엔 호적을 파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호적이라는 것이 호주제 폐지로 인해 이제는 1인 1가구제가 되었기 때문에
호적을 판다는 것의 의미가 없어진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딸을 빼 버리겠다고 다시 더 깊이 생각하셔서 의견을 내시기에
그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잠잠해지셨습니다.
오래전에는 호적을 가른다거나 호적을 파버린다고 하는 말이
굉장히 위협적일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실이 바르지 않거나 가문에 누가 되는 일을 한 사람에게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는 말을 오래전 사람들은 했나봅니다만
지금 시대엔 그런 이야기가 먹힐 리 없습니다.
보호자인 딸이 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할아버지가 따님을 괴롭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판단이 미숙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와서 하나밖에 없는 딸의 호적을 파면 (팔수도 없지만)
아버지와 딸 중 누가 더 손핼까요?
말그미
2015-11-25 at 15:04
순이 님,
얼마나 황당하셨나요?
참으로 딱하십니다, 그 할부지.
딸이 형편이 어려우면 부모가 생각을 해줘야지
마치 하나 있는 딸을…그것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딸을…
요양병원도 감지덕지해야할 형편이구만요.
데레사
2015-11-25 at 23:57
장윤정 엄마같은 사람도 있고…. 부모도 저쯤되면 아마
진절머리가 날테죠.
나는 절대 저런 부모는 안되어야 할텐데 혹 정신줄 놓아버리고
저렇게 변해 버릴까봐 무서워요.
비풍초
2015-11-26 at 02:54
그냥 딸 집에 가서 문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리나아
2015-11-27 at 09:47
애고…..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지만 어찌보면 딸이 혼자서.외동딸로 참 힘들겠단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