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배경으로 삶은 이어지고 (마닐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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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북부 뚜게가라오에 가기 위해선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 편이 없어서 출국한 날과 귀국하는 날 이틀을 마닐라 시내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길을 건너면 미국대사관과 마닐라 만이 있기에 동생과 함께 아침 산책을 했습니다.

미국대사관으로 건너는 길에는 교통순경이 Go stop 팻말을 들고 고스톱을 외칩니다. 건널목에 길을 건널 사람들이 일정 숫자가 모이면 교통순경이 차를 향해 스톱 팻말을 높이 들어서 차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사람을 건너보냅니다. 행인에게는 Go 팻말을 흔듭니다. “저분은 길에서 고스톱을 하네요?” 유머가 많은 동생이 말해서 웃었습니다.
요즘은 필리핀 절기상 건기라 일주일 있는 동안 비가 한 번도 안 왔습니다. 나는 이른 새벽이려니 하고 나갔는데 열대지방에서는 시원할 때 일을 보기 때문에 마닐라 만에는 한낮의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육교를 건너는데 동냥을 바라서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찍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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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만든 방파제는 폭이 일 미터 조금 넘을 것 같은데 평평해서 앉아 있기도, 잠자기도 좋아서 개인 집의 안방이나 거실에서와 같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방파제에 남편을 눕혀놓고 귀지를 파주는 여인에, 둑을 침대삼아 손님을 눕혀놓고 마사지 영업을 하는 분도 있고 신문을 읽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하고 페트병에 담아온 물로 아이의 머리를 감기는 부모도 있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린새댁도 보입니다. 미 대사관에 인터뷰를 가는 사람들에게 볼펜과 예상 문제를 파는 분도 보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분도 있고 잠을 자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은 거기가 안방이고 거실이고 부엌이고 영업장이고 아이를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라도 사람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곳 모습은 더욱 애잔했습니다. 하늘을 지붕 삼아 방파제를 의지해 사는 삶이 모여 있는 마닐라만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집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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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를 끼고 있는 도로에는 우리같이 산책을 하는 사람과 조깅을 하는 사람 개를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운동을 나온 사람들은 대게 외국인으로 보였고 개를 산책 시키는 사람은 현지인으로 개는 잘 먹어서 털이 윤택하고 위엄까지 있어 보였고 개에게 끌려가고 있는 사람은 새카맣고 바짝 마른 모습이 가엽기 조차했습니다. 주인을 잘 만난 개는 대단히 윤택하여 사람을 하인으로 두고 살고 국가를 잘 못 만난 국민은 개의 하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다면 너무 비약일까요?

산책을 마치고 육교를 건너 숙소로 돌아오다가 조그만 아기를 안고 있는 어린부부를 만났습니다. 우리나이로 15~6세쯤 되는 어린부부가 육교위에서 아기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너무 조그맣고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보여서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산모에게 아기가 언제 태어났는지 물었더니 생후 2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후 14일 된 아기는 해외에서 만난 아기 중 가장 어린 아기였습니다. 젊은 부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린 부부는 그 조그만 생명을 손에 들고 하필이면 매연 가득한 육교 위에서 흔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강보에 쌓여 외부인과의 접촉도 막을 일인데 아기가 우니까 달랜다고 소란한 곳에서 들고 흔들기만 하는 것입니다. 옆에는 신생아의 어린아빠가 멀거니 서 있습니다.
마침 산책 중에 동생과 “이곳 아기들은 다 눈이 너무 예쁘고 초롱초롱하고 잘 울지도 않아” “우는 건 아기들의 특권인데 왜 울지를 않지? 우리 여태 우는 아기를 못 봤지?”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는 길인데 처음 만난 우는 아기는 작은 몸으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울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 어린 생명이 잘 자라날 수 있을까? 어린 엄마아빠는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제 몸 간수도 잘 못하는 어린나이에 부모가 되었으니 그 고생은 또 어쩔 것인가? 어려움 속에서는 생명력이 잡초처럼 강하니까 잘 크겠지!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천주교가 국교인 나라라 교리 상 낙태는 금지되어 있지만 피임은 합법적이니까 정부에서 청소년에게 피임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사람이 너무 흔하다 보니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고 생명을 존중을 하지 않습니다. 결핍에서 오는 무질서는 교육을 하면 나아질 방법이 있어 보이는데 정부에서 그런 정책은 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필리핀 대통령은 경호해야할 자녀가 50명이 넘었다고 하고, 어느 성공한 코미디언이 사는 동네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많은 숫자가 그 사람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사랑 후에 오는 책임과 의무를 교육하는 시스템을 가동할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한 필리핀은
대책 없이 인구 폭발이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가진 자가 자신의 것을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도덕의 재무장이 절실해 보이는 풍경들입니다.
생후 2주된 아기는 작은 몸을 움직여 온 몸으로 어디가 아픈 것을 울음으로 호소하고 있지만 어린 부부는 그냥 들고 흔들기만 하는 어깨 너머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요트 선착장이 보였습니다. 육교에서 바라보는 왼쪽에는 요트장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미대사관 앞에 인터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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