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를 가면서 에어아시아라는 저가 항공을 타게 되었습니다. 성수기라 국적기는 요금이 너무 비쌌습니다. 티켓을 예매하면서 주문을 잘 못해서 네 시간 가는 동안 식사를 한 번도 안 주더군요. 항공료와 식사는 별게로 돈을 내고 주문해야 비행 중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동생에게 “배고프면 도시락 사 먹을까” 물었더니 “저녁은 호텔에 가서 맛있게 먹자”고 했습니다. 옆자리 손님은 항공권을 살 때 도시락 예약했었다며 받아 드시는 것을 보니 부실하기 짝이 없어 사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아침은 커피한잔 마셨고 점심은 기내식으로 먹으려고 생각했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 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비행기만 타면 예쁜 스튜어디스가 “비프, 치킨 어떤 걸 드릴까요. 비빔밥도 있어요.” 라면서 식사를 권하고, 밥 먹고 나면 커피도 주고 와인도 주고 그러는 일상적인 풍경이 아쉬웠습니다. 한 시간 남짓 비행하는 일본 저가항공에서도 삼각 김밥 하나는 주던데 하면서 하늘 위에서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물 500ml 한 병에 2불을 주고 사서 겨우 목을 적셔가며 책으로 허기를 달래며 갔습니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리라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요!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내려서 예약해둔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려고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건물로 들어와 출입국관리를 통과해서 짐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택시로 30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에 숙소가 있다고 해서 공항만 벗어나면 택시가 기다리고 있고 금방 숙소에 갈 수 있겠다는 기대로 부지런히 공항을 나왔습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고 점심을 거르고 났더니 호텔에 가서 짐을 두고 저녁식사를 좀 실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공항건물 출입문을 나와 택시를 타려고 두리번거렸더니 어떤 현지인 남자가 다가와 안내를 하겠다며 목적지를 물었습니다. 호텔 이름을 댔더니 2000페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4~5 만원 돈인데 마닐라에 오래 살았던 동생은 비싸다고 택시를 기다려 타겠다며 남자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목에 네임카드를 걸고 있는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웃으며 택시를 타려고 사람들이 서 있는 긴 줄을 가리켰습니다. 빈 택시가 들어오는 것은 안 보이는데 기다리는 줄은 500m 정도로 끝이 안보이게 늘어섰습니다. 그래도 단호하게 거절 하고 택시를 기다리는 긴 줄 뒤에 가서 서려고 했더니 이번엔 나이가 든 아저씨가 다가와 합승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얼마면 되겠냐고 했더니 600페소 달라고 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긴 줄을 기다려 탈 자신이 없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2000페소에서 600페소면 1400페소가 절약된 것이니까요.
UAE에 돈벌러갔다가 귀국하는 어떤 짐 많은 남자와, 일본에서 일본인 남편과 살다가 친정에 오는 여자와 우리까지 세 팀을 마련해 놓고 남자는 워키토키로 택시를 부르더군요. 금방 올 줄 알았던 택시가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불렀다는 택시는 오지 않아서 모집인 아저씨께 재촉을 했더니 오고 있다고 말만 합니다. 트래픽이 심해서 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날은 어둑해 지는데 일반택시를 기다리는 줄은 어쩌다 한 대 들어오는 택시를 바라고 긴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출국장으로 올라가면 택시가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총 들고 지키는 경비원이 일단 나온 사람들을 공항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40분정도를 기다려 택시를 탔습니다. 정상적인 택시라인에 서서 기다렸으면 자정 전에는 호텔에 들어가지 못할 듯했습니다. 그래도 택시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화내는 사람도 없고 당연히 기다릴 걸 기다린 다는 듯 한가롭게 서 있었습니다. 비행시간보다 자국공항에서 택시 대기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 견딜 것입니다. 공항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택시를 통재하는 듯 했습니다. 합승을 권유하는 사람들과 게이트를 지키는 사람들 간에 커넥션이 있어 보였습니다. 서로 먹이 사슬이 되어 이익을 나누겠지요.
다음날 국내선으로 갈아타느라 숙소에서 그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다시 갔습니다.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미터기로 200페소가 덜 나왔습니다. 그걸 처음 모집인은 10배를 불렀고 전날엔 3배를 주고 합승을 하면서도 40분 넘게 기다린 것입니다.
탑승을 위해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택시에서 내리자 짐을 들어 주겠다는 포터들이 다가왔습니다. 네임택을 목에 건 남자는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여행객이 서 있는 긴 줄을 가리키며 돈을 주면 기다리지 않아도 건물 안으로 입장시켜주고 짐을 부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짐은 간단한 편이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고 어제 긴 기다림을 당해봤기 때문에 넉넉하게 공항에 도착했기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어 거절했습니다. 공항에는 힘 있는 관리나 돈을 지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건물 밖에서 대기하지 않으려면 부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아니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즘도 인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외국인에게 바가지요금을 부르는 일이 드물게 뉴스에 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공공연하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택시를 타려는 승객이 길게 있으면 공항직원이 나와 적체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항건물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지 총을 든 경비원이 막아서지도 않고 공항 건물 들어가는 일에 비행기 표 소지자를 선별하여 제약을 두지는 않습니다. 부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그 차별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마닐라 제3공항에서는 바가지요금과 개인의 부당한 시간낭비와 차별을 그냥 참아내야 했습니다.
저가항공을 타고 배고픔을 참아야 했던 것은 나의 선택이었지만 택시합승을 위해 오래 기다려야하고,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긴 줄서기를 해야 하는 것은 꼭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들의 횡포와 무질서의 문제였습니다.
신재동
2016-01-23 at 14:13
부패의 꽃을 보는 것 같군요.
오래간만입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다시 뵙게 돼서 반갑군요.
한 동안 순이님의 글을 기다렸습니다.
벤조
2016-01-23 at 16:50
제목이 많은 뜻을 내포하네요. 이 글이 아주 낮설지 않은 것은 저도 언제였던가 오래 전에 비슷환 경험을 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막일꾼
2016-01-23 at 19:21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급행료’라는 게 있엇지요.
동사무소나 구청 등에 가서 급행료를 슬쩍 찔러주면…우선적으로 민원이 처리되던 그런 시절이. ㅎㅎ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도 많이 달라졌고 발전했습니다. 다행이지요.
김삿갓
2016-01-24 at 09:13
순이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행할때 군것질 할 건과류는 필수 품 입니다.
일반 항공 이라도 기상이 안좋으면 위험하다고
밥 제때 안줄때도 있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요. ^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