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 주민등록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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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관광 성수기라는 동남아는 지금이 건기 입니다.
여행하기는 좋을지 모르지만 건기 때는 비가 오지 않는 관계로 캄보디아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아주 메말라 보였습니다. 톤레샵 호수에 물이 많을 때는 우리나라 전남북을 합해 놓은 것만큼의 면적에 물이 가득한 호수라는데 지금은 우기 때의 1/6 수준으로 물의 표면적이 줄었고 황토의 농도는 진해져서 탁한 물길을 배를 타고 갔습니다.
유람선에 오르기 전 조그만 남자아이가 뱃전에서 밧줄을 잡고 우리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아이가 위험해 보여서 한국말로
“얘야 위험하다 저리 가서 놀아라.” 이러셨습니다.
“엄마 저 아이가 일하고 있는 거예요. 그냥 두세요.” 라고 내가 설명하니까
“다칠까봐 그러지. 물이 출렁거리는데 판자위에서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괜찮아요. 하루 이틀 한 일이 아니라서 잘 해요.”
설명을 드려도 어머니는 그 아이가 걱정되어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배가 출발하고 나자 그 아이는( 10살이라고 했습니다.) 흔들리는 뱃전을 돌아다니자 어머니는 또 질색을 합니다.
“구경도 좋지만 애 떨어질라. 저 애 좀 누가 붙잡아 앉혀라” 어머니는 가는 곳 마다
“부모는 뭐하고 있고 애들을 간수하지 않느냐? 애들을 공부는 안 시키고 길에서 저런 일을 하게 두면 어쩌냐?” 라고 애달파 하셨습니다.
캄보디아의 대부분 아이들이 거리로 내 몰려서 그런 일을 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속이 상해하니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설명을 드려도 어머니는 “자녀는 가르쳐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서 어린이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드렸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지속되고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셔서 어머니의 여러 걱정에 조금은 질려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느새 배 안으로 들어와 안마를 시작했습니다.
앞만 보고 앉아 있는데 등 뒤에서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하기에 난 거절하고 막내 여동생은 등 안마를 받고 1불을 주었습니다. 호수 깊숙한 곳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하기 까지 안마를 받은 사람은 10명 아이는 배 안에서 10여 불을 벌었고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그 달러는 유람선을 운전하던 사람이 받아 가지는 듯 했습니다. (얼마간 나누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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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따라 호수 가운데로 가서 유람선에서 쪽배로 옮겨 탔습니다. 앞에 관광객 두 사람을 태우고 어린사공은 쪽배 뒤에서 노를 저었습니다. 노 젓는 아이도 나이는 10살 전후로 보였습니다. 아이는 쪽배를 능숙하게 움직였고 필요한 한국말을 했습니다.
“사모님 가운데로 앉으세요.”
“사모님 저거 새우 양식장”
“저거는 학교.”
“저건 가게.” 이러며 설명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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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 떠있는 삶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우리나라 옛날 노래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부평초 같다고 했는데, 그들은 말 그대로 물 위에서 부평초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관광객 쪽배를 젓는 아이도 그들의 삶을 동정했습니다.
“사모님 나~ 캄보디아 사람! 저 ~ 어 사람들 베트남 사람!” 이 말을 등 뒤에서 여러 번 하더군요. 우리가 보기엔 베트남 사람이나 캄보디아 사람이나 구별이 안 되고 비슷해 보였지만, 어린 사공의 말뜻에는 물위에 사는 베트남 사람에 비해 캄보디아인으로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물위에 사는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을 피해 매콩강을 물줄기를 따라와 톤렌샵 호수에 와서 살다가 전쟁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리라 맘먹고 임시로 살고 있었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더니 베트남 정부에서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는데 전쟁을 피해 도망간 배신자라는 이유입니다. 할 수 없이 캄보디아로 다시 돌아오니 이번엔 캄보디아에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받아줄 이유가 없었겠지요. 우리가 이웃나라와 사이가 나쁘듯 캄보디아의 주적은 베트남이라고 합니다.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베트남인들이 호수위에 사는 것만은 막지 않아서 다시 물위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캄보디아 국민도 아니고 베트남 국민도 아닌 무국적자로 살아갑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외 여러 명이 톤레샵 호수에서 생활한 적이 있답니다. 촬영 중에 정말 똑똑한 베트남인을 발견해서 그분을 한국에 데려와 유학을 시키고 싶어 했는데 국적이 없다보니 여권을 만들지 못해 무산되었다는 얘기를 가이드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지난 연말쯤 봤던 뉴스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어떤 청년단체가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국민사퇴식”을 열고 주민등록증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광경이 떠올라서입니다.

국가가 있다는 것 주민등록번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쪽배를 젓는 아이조차도 자신이 캄보디아 인이고 물위에 사는 무국적자, 그러나 베트남인들과는 선긋기를 확실하게 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보여주려고 더욱 비참한 곳으로 쪽배를 운전해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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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위에 나가 살지 왜 흙탕물 위에 저러고 사냐?”
“뭍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어쩌려고 저러냐?”
“저 물에서 목욕을 하고 저 물 위에서 먹고 잔다는 말이냐?”
땅을 의지해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자녀 교육에 최고의 목표를 두고 살았던 어머니를 납득하도록 이해시키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국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을 여러 번 드렸는데도 어머니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동생 둘이 한배를 타고 어머니와 내가 한배를 탔는데 어머니의 걱정은 너무 길게 이어져서 설명 드리다가 쪽배 위에서 내가 지쳤습니다.

6 Comments

  1. 데레사

    2016-02-10 at 14:41

    나도 저 톤레샵 호수에서 수상가옥을 보면서 안타까워 했지요.
    그곳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또 용변보고….
    그러고도 아이들은 배타고 물 위에 떠 있는 학교로 가던데요.
    어머님이 그 학교는 못 보셨나 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걸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오히려
    불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2. 벤조

    2016-02-11 at 02:45

    아직도 저는 주민등록 번호를 외워요. 지금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지만 그것도 조국의 주민등록증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작년에 주민등록증 자르고 국민 사퇴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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