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졸업가가 왜 이렇게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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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이가 5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졸업합니다.
한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5세반이 없어서 졸업이 당연한 것이지만 할머니인 내가 어찌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우리 아파트 같은 동에 있어서 아침이면 업어서 데려다 주기도 했는데 이제 유치원이 멀어지면 걱정입니다. 두 돌이 지나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발꿈치를 들지 않아도 척척 누르고 집 번호 키를 혼자 누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컸습니다.
같이 어린이 집을 졸업하는 친구들은 몇 명이 같은 유치원으로 가나본데 선교원으로 가는 친구는 없어서 우리 한이만 이웃교회 어린이 선교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선교원은 큰 찻길을 건너서 공원을 지나가야 하는 거리라 선교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조금 더 영글어지도록 일 년만 더 다녔으면 좋은데 버스를 태워 유치원 보낼 일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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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졸업가를 배웠나 봅니다. 집에 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우리가 못 들어보던 노래를 혼자 부르는 겁니다. 새로운 노래를 배웠구나 싶어서 다시 불러보라고 했더니 이런 가사입니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어린이집을 떠나가게 되었네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깨동무 내 동무 잘 가거라 또 보자

조그만 입으로 이렇게 부르는데 괜히 내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졸업가를 듣고 한이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습니다.
뭔 졸업가가 이렇게 비장하고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
떠나가게 되었다거나. 잘 가거라. 또 보자……. 이런 가사 때문이겠지요.
무슨 전쟁 중에 생이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 외국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이웃에 살던 어린이집 동무들과 헤어지는 것도 이렇게 슬픈 가사네요.
한이 노래를 듣고 할머니와 엄마가 눈물을 닦는 모습을 한이는 의아해 합니다. 정작 노래 부르는 한이는 떠나가는 게 뭔지 잘가란 인사가 뭔지 헤어지는 것이 뭔지도 사실 모릅니다. 그냥 노래니까 부르는 것이겠지요. 졸업식도 뭔지 모르는 눈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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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한이 아빠가 퇴근해 왔기에 아빠 좀 들어보게 한이에게 졸업가를 불러보라고 했더니 한이가 제 아빠 앞에서 씩씩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다 듣고난 한이 아빠는 박수를 치면서 “우리 아들 노래 잘한다.” 이런 반응이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한이는 제 아빠도 할머니나 엄마처럼 눈물을 흘리나 해서 아빠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울지 않는 아빠가 신기했나 봅니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한이를 데려다 주면서 선생님께 한이 졸업가를 듣고 할머니와 엄마가 울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도 대번에 눈에 눈물이 핑 돕니다. 귀여운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선생님도 눈물이 절로 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시고 정이 들어서 그러실 겁니다. 말썽 부리는 철없는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정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할머니가 선생님과 이야기 하는 것을 신발을 벗으면서 가만히 듣던 한이는
“우리 아빠는 울지 않았어요. 우리 아빠는 힘이 세요. 우리아빠 짱이예요.” 이러는 겁니다.
할머니나 엄마나 선생님은 자기 노래를 듣고 우는데 아빠는 안 운다고 짱이라는 겁니다.
주말이라 한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찬을 잔뜩 해가지고 손자를 보러 오셨는데 한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보자마자 졸업가를 부르겠다고 자청을 하더니 할머니 앞에 서서 할머니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졸업가를 부릅니다. “아침마다 모여서~ ” 한이가 노래를 하자 한이 할머니도 “어린이집 졸업가가 왜 이리 슬프냐?” 하면서 눈물을 닦습니다.
한이는 할아버지 앞으로 옮겨 서더니 또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할아버지 눈을 쳐다봅니다. 제 딴에는 실험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과 울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나 봅니다. 할아버지 역시 “야~ 우리 한이 노래 잘한다. 목소리가 좋아!” 이러시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자 “할아버지는 착해서 안 울어요. 할아버지 짱이예요.” 이럽니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뭔가 요구가 있어서 울 때 “우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뚝 해”이런 말들을 평소에 들어서 그런 가 봅니다.

슬퍼서 우는 건지, 아파서 우는 건지 그런 것도 구별 못하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돌 봐 주시느라 어린이집 선생님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원래 어떤 이별이든 이별은 슬픈 것이겠지만 어린이집 졸업가가 너무 슬퍼요. ^^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16-02-20 at 13:51

    국민학교 졸업할 때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떠나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어서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하면서 우리도 펑펑 울렀지요.
    요즘도 이노래 졸업가로 부르는가는 모르지만 그때 우리들 감성은
    울지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는데요.

    한이네 졸업가도 눈물이 날것 같아요. 내가 직접 들으면
    그러면 한이는 ” 이 할매는 짱 아니네” 하겠지요? ㅎ

  2. 睿元예원

    2016-02-20 at 19:42

    아유~ 한이가 너무 귀엽네요.
    총명하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니 이별은 슬프긴 하지만
    좀 바꿨으면 하네요.
    졸업은 기쁨이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밑거름이 되는 단계를 무사히 마쳤음을 기뻐하는 글로 말입니다.
    ㅎㅎ
    한이의 유아원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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