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입원한 환자 침대 위에는 세숫대야가 올려 있고,
세숫대야 속에 칫솔과 치약이 담긴 컵, 비누와 면도기 수건 등 모든 세면도구와
식혜 딸기 등 간식거리 옆에는 음료수병과 남자용 소변통과 쓰레기통
침대 발치엔 이불 베개 등 침구가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습니다.
그 속에서 환자는 눕지도 못하고 침대 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침상이 킹사이즈도 아니고 더블사이즈도 아닌데 그 모든 것이 올라가 있으니
병원에서 보기 드믄 기가 막힌 풍경입니다.
병원침상은 환자 진료에 적당한 공간이지 살림살이를 펼쳐놓을 자리가 없잖아요. 체격이 큰 외국인 환자 분이 있는데 이분 혼자 눕기에도 침대가 좀 작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침대에 펼쳐진 것들은 환자의 위생이나 안전에 해로운 것들이었습니다. 일단은 환자가 누워야할 공간이 없습니다.
환자의 침상에 올라가 있는 물건들은 할아버지 개인 물품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시다 보니 집에서 그렇게 사신 것 같습니다. 기다시피 하면서 방안에서 식사와 배변을 다 해결하면 할아버지를 담당한 동사무소 사회과 분들과 따님이 변기를 비우고 밥솥에 밥을 해 놓고 그랬나 봅니다.
오랜 생활습관이라 그러시는 것은 알지만 병원에 입원한 이상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간병인이 모든 도움을 드린다고, 필요한 것을 말씀만 하면 된다 구요.
연세가 높아서 기력이 없고 천식으로 숨이 차서 움직이질 못하고 앉아 계시는 분이니까 식후에 침상에서 양치를 하실 수 있게 해 드리고 소변이 마렵다고 하면 소변 통을 드리겠다고, 휴지통은 침상아래에 두고 쓰시라고, 여러 말로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 드리고 정리해 드리려고 했지만 자기 물건에 대해 손을 못 대게 했습니다. 침상위에 올려 진 물품에 대해 애착을 넘어 유착관계가 되어버린 듯 했습니다. 그런 물건들이 손닿는 곳에 없으면 견딜 수 없어 하면서 가지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아버지가 입원생활이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러신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앉아서 주무실 때 세숫대야와 쓰레기통만이라도 침상 아래로 들어 내렸더니 눈 뜨자마자 “여기 있던 쓰레기통하고 소변통 어디 갔어? 가지고 와~” 소리를 치셨습니다. 침상위에 널려있는 물품이 할아버지 나름대로의 있어야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 것들이 옆에 없으면 불안하고 견디질 못하셔서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용납을 못 하셨습니다.
연세 높은 할아버지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환자가 누워야 할 침상위에 쓰레기통을 포함한 살림살이를 다 올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졸고 계신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환의도 갈아입지 않으시고 집에서 겹겹이 입고 있던 옷들에서는 냄새가 나서 곁에 가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환자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나 위생상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문제라 겨우 겨우 목욕은 시켜서 환의로 갈아 입혀드렸는데 금방 벗어 버리고 세탁실로 보낸 자신의 내복을 찾아오라고 소란을 피우십니다.
보호자가(따님) 아버지를 울면서 설득해도 안 되어서 결국은 퇴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산소도 마셔야 하고 여러 가지 급한 치료가 있었는데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공간에 대해 병적인 수준이라 그 물건이 옆에 없으면 견디질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으시고 치료를 거부하셔서 자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혼자 있다가 돌아가시게 생겼으니까 겨우 병원엘 입원시킨 건데 집에 가신다고 소리를 지르고 고집을 부리시니 더는 어째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간병인도 많은 환자를 봤지만 이런 환자는 처음 본다며 “저 할아버지 촌사람인가 봐요.” 라며 흉을 봤습니다. 촌사람이라서 그러겠어요? 아주 특이한 경우이지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래 혼자 사시면서 그런 생활용품을 주위에 두고 생활하시면서 그 물건들이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지거나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보지 않았어도 할아버지의 생활이 눈에 보이잖아요. 안타깝게도 자신이 누울 공간을 물건들에게 내어주고 본인은 앉아서 주무시는 것은 누울 공간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천식으로 숨이 차서 앉아서 주무시는 게 습관이 되셔서 그러는 것도 있습니다.
독거노인은 동사무소 사회과에서 규칙적으로 방문하여 식사와 목욕 청소 같은 수발을 해 드리는데 그것도 거부하시는 등 외부인은 집안에 발도 못 들이게 하셨답니다. 따님 혼자 아버지께 드나들면서 식재료를 날라드리는 정도의 도움을 드렸는데 따님도 살기 어려워서 자주는 못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요즘엔 독거노인들이 도움을 받고자 하면 이웃이나 자선단체에서도 도와드리고 정부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할아버지가 완강하게 거절을 하신답니다. 따님이 이번에는 돌아가시게 생겨서 강제로 입원하는데 까진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타인의 도움이 유익하다는 것에 대해 평생 경험하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물건들이 없으면 내가 생활하지 못한다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보이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노인의 고집은 본인에게 해로운 일임에도 누구의 설득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의료행위도 거부하시고 결국은 치료도 못하고 퇴원했습니다.
어울려 사는 것도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순이
cheonhabubu
2016-03-12 at 13:36
그렇습니다. 사는 것 쉽지 않네요 누구에게나
지금 저도 그런지 모르지요 남들이 보기에는.
완전히 옳은 사람이 없나 봅니다.
데레사
2016-03-12 at 14:10
냬가 다 속상합니다.
남의 말도 좀 들으며 더 편히 사셔도
되는데 참 딱하네요.
나이 들면 누구나 다 고집만 남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