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까딱 않고 먹고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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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른들은 곡기를 끊으면 돌아가신다고 했지만, 요즘엔 입으로 음식을 드시지 못 한다고 해서 곧 돌아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긴 튜브를 코에 끼운 콧줄이나 복부를 뚫어 위로 직접 유동식을 넣는 방법도 있고 영양 수액 등으로 보충을 하기 때문에 곡기를 끊는 것이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이 되지는 않습니다.

 
치매의 진행이 모든 환자에게 일정한 패턴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을 때리거나 욕을 심하게 하는 등 폭력적인 분도 있고, 계속 밖으로 돌아다니는 분, 대소변을 못 가리고 손으로 만져서 그림을 그리는 분, 노래를 하는 분, 끝없이 말씀을 하는 분, 환상을 (환각 환청 같은 것) 보는 분, 식탐으로 끝없이 먹을 것만 찾는 분 등등
인지장애가 심해지면 섭식장애가 옵니다. 인지장애로 인해 방향을 모른다거나 사람을 못 알아본다든가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등의 증상까지도 가족들이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식사를 못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큽니다. 생명은 음식을 통해 영양을 섭취해야 유지되는 것이니까요.

 
식탁과 입과의 거리가 30cm 정도 되겠지요? 단순한 동작이고 평생 해온 행위가 어느 때부터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숟가락을 사용해서 입으로 음식을 떠 넣는 일까지 잊어버리는 겁니다. 숟가락 사용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밥상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거나 손으로 반찬을 주물럭거리거나 식탁을 엎어버리기도 합니다. 기가막일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것 까지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입안에 음식을 떠 넣어드리면 삼키기는 하니까요.
그 다음 단계는 음식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입에 까지 들어온 음식을 물고만 있습니다. 식사를 떠 넣어 드리는 분이 음식을 씹는 모습을 보이면서 “양~ 양 ~하고 씹으세요.” 하면 어쩌다 생각이 나서 씹기도 하지만 삼키는 것을 못하면 “꿀꺽 꿀꺽”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목을 뒤로 꺾어가며 음식물을 삼키는 시범을 보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콧줄을 하게 됩니다. 억지로 음식을 삼키게 하려고 보면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흡인성폐렴을 유발하기도 해서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보호자들은 고민을 합니다. 인지장애가 심해서 아들딸도 못 알아보는 부모님에게 콧줄을 해서까지 생명을 연장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콧줄이라는 대안이 있는데 굶어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고, 그렇게(!)까지 하고 연명을 하시게 해야 하는 것이 인간적인지 아니면 부모님에 대한 모독인지를 놓고 가족들은 회의를 거듭하게 되는데 결론은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가족이 대부분입니다. 음식을 못 드셔서 돌아가셔도 좋으니 콧줄을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콧줄을 거부하는 보호자는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저도 우리 어머니 연세가 있으시니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랑 나눈 적이 있는데 만약 저런 경우가 닥친다면 어머니께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좋겠는가 여쭈었더니 우리 어머니는 단호하게 내 손으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스스로 가지 못하면 아무런 의학적인 도움 없이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어머니 성품상 그럴 거라고 보지만 장담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에는 몸에 좋은 약을 드려도 “사람이 약을 의지하고 살면 안 된다.”이러시며 감기약도 거부하셨던 분인데 요즘엔 병원에서 주는 약을 열심히 챙겨 드실 뿐 아니라 지난달 보다 약이 반알 이라도 줄면 기분 나빠합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약 좋아하실지 몰랐다’고 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표정이십니다. 사람마음이 수시로 변하기도 하고 내 앞에 일이 딱 닥치면 생각이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에 가졌던 소신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지장애로 식사를 삼키지 못할 때 뿐 아니라 폐렴이나 패혈증 등의 이유로 환자 상태가 극도로 약해졌을 때 콧줄을 하고 유동식을 드리다가 상태가 호전되면 콧줄을 빼고 식사를 드리기도 하는데 대부분 콧줄 보다는 입으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본능이라 콧줄을 빼면 환자 본인이나 가족도 다 좋아합니다.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대화도 제법 되고 식사도 충분히 입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어떤 할머니의 콧줄을 빼려고 하니 환자분이 거부를 하셨습니다. 사실 의식이 있는 분은 콧줄을 하지 않을 려고 하기 때문에 의식이 조금만 좋아져도 본인 손으로 콧줄을 빼어버립니다. 이분은 콧줄을 뺄 능력도 되고 숟가락 사용도 가능할 정도로 회복 되어서 입으로 음식을 드실 수 있게 해 드리려고 시도를 하는 중에 “귀찮으니까 그냥 콧줄로 음식을 달라.”고 해서 놀라기도 했고 어떤 의미에서 쇼크를 받았습니다.

 
손을 사용하는 것도 귀찮고 음식을 입에 넣는 것도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다 싫으니까 그냥 위에 음식을 넣어주면 위가 알아서 소화를 시키고 대소변은 기저귀로 해결하니까 본인은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겠다는 말입니다. 아들딸도 다 알아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일일이 참견을 할 정도로 인지가 있는 분입니다.  “손 움직이는 것도 귀찮으니까 콧줄로 편하게 먹겠다.”가 할머니의 주장입니다. “음식 맛이 그립지 않냐?”고 했더니 “된장국이고 미역국이고 다 찝질하기만 하고 아무 맛을 못 느낀다.”고 하시더군요. 이렇게 말씀을 정확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귀찮다는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말 그대로 “손가락 까딱 않고 먹고 사는 일”인데 아무리 인지장애라도 참 희귀한 일입니다. 아무 의욕이 없어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 사람이 곡기를 끊으면 돌아가시게 해야지 억지로 오래 살게 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호자가 한탄을 하더군요. 콧줄을 낀 병원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순이

1 Comment

  1. 데레사

    2016-03-26 at 16:13

    나이 든다는게 참 무서워요.
    제가 아는분 중에서도 씹는게 싫다고 뭐든 물로만 마실러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사람은 건강하고 젊은데도 씹는 일
    자체가 싫다나요.

    콧줄로 먹겠다고 고집하는 분도 참 딱합니다.
    정상인의 생각으로는 입으로 들어가야 음식같을텐데, 정신세계가
    무너져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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