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내가 할머니지만 우리 병원 할머니들은 저를 새댁으로 보십니다. 아직 곱다는 얘기도 듣고 저에게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시며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르신들 중 70대는 젊은 축에 속하고 80대 9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분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625전쟁을 지나고 폐허 위에서 삶을 일으키신 분들입니다. 어떤 할머니는 연세가86세인데 칠순을 맞은 딸을 두신분도 있습니다. 모녀가 아니라 자매나 친구처럼 같이 늙어가는 것입니다. 70노인이나 80노인이나 별 반 차이가 없어 보이잖아요? 이렇게 나이차가 없는 딸을 어떻게 낳았을까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 때문입니다.
일본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면서 일본사람들이 마을에 와서 우리나라 처녀들을 골라가는데 다행히 결혼한 여자는 제외가 되었답니다. 14~5세만 되어도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밤낮으로 찾아다니며 협박과 회유를 해서 기어코 끌고 가니까 정신대에 가지 않기 위해선 결혼을 서둘러 했답니다. 15~6세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농사일에 집안 살림에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지금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것이잖아요. 그런 것도 모자라 해방의 기쁨이 다 가시기도 전에 남북전쟁이 나서 피난을 다녀야 했습니다. 피난살이에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피폐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니 전쟁 통에 생활 기반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폐허위에서 새로 삶을 이어 가느라 정말 고단한 여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랬던 할머니 들이라 몸이 아파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지내는 것이 더 억울할 것도 같은데 의외로 잘 적응하고 사십니다. 어려운 생을 살아오신 만큼 체념도 빠르고 순응을 잘 하시는 듯합니다.
이 어르신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게는 시집살이를 모질게 했던 분들입니다. 무서운 시 어르신들을 모시고 밥을 굶는 일은 일상이고 시어머니께 매를 맞기도 했다는 분도 있더군요. 그렇게 엄한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 부모님을 모셨던 분들이지만 이분들은 시어머니라고 해서 며느리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를 못하고 사시는 분들입니다. 요즘엔 시어머니들이 오히려 며느리 시집을 산다고 하잖아요. 며느리 비위를 건드려봤자 내 아들이 고생하니까 그냥 참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시는 것입니다. 늘 참고 희생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셔서 그런지 병원에 계시는 것이 힘드실 수 있지만 잘 견디시는 것 같습니다. 무료하고 재미없어 하시다가도 옛날에 배고프고 고달팠던 때를 돌아보면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끼 끼니를 잇지 못해 고생하던 때가 있었는데 삼시세끼 따신 밥에 비바람 걱정 없고 따뜻한 침상에서 잘 수 있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다만 너무 오래 사는 것이 걱정이라며 빨리 죽어야 하는데 ……. 라고 하시며 한숨을 쉬십니다. 생명은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명이 다해야 가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며 웃기도 하십니다.
모든 것이 생각할 나름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나의 젊음을(!) 부러워합니다.
나의 할머니께서는 70대 초반에 돌아가셨는데 회갑이 지나고 부터는
“기력이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다.”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어릴 때 들었는데 요즘 들어 나도 이런 말이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50대만 되어도 좋겠다 싶고 50대가 부러울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병원 어르신들은 60대인 내가 부러우신 겁니다. 옛날엔 예쁘다 소리는 못 들어도 손이 곱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요즘 내손은 쭈굴쭈굴하고 볼품이 없어졌는데도 어떤 할머니는 내손을 잡고 “손도 곱다,” 라시며 손등을 쓰다듬는 분도 있습니다.
약국을 그만두고 병원에 근무한지 벌써 햇수로 5년, 만 4년을 근무했습니다. 58살에 월급쟁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병원 개원10주년 행사를 하면서 한마디 하라고 나에게 마이크가 왔을 때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병원 개원 10주년 행사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병원에서 10년 근속을 하려고 합니다.” 이랬더니 다들 박수를 치더군요. (10년 근속을 하려면 68세까지 일해야 합니다.) 요즘엔 나이에 비해 덜 늙는 시대니까 건강만 유지 된다면 68세까지는 충분히 일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많이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사랑을 많이 받고 삽니다.
할머니들과 오래, 행복하게 지금처럼 일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순이
데레사
2016-04-26 at 07:12
일 할수 있을때 까지 일하는게 좋아요.
68세까지 근무하시게 되기를 바라고 싶어요.
저도 복지관엘 가면 어린 사람이 어쩌구 저쩌구… 합니다.
8, 90대의 눈으로는 70대 할매도 어린 사람으로 보이나 봐요.
나이먹는다는게 그런건가 봅니다. 자꾸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부러워 지는걸요.
최 수니
2016-04-28 at 09:49
데레사언니
위블에서 애를 많이 쓰시네요.
수고에 감사드려요.
위블이 4개월이나 흘렀는데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블로그가 유배 당한 그런 기분이에요.
아니면 고사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구요.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지요?
박나겸
2016-04-28 at 08:41
애독자입니다
겨우 찾아 왔습니다
여긴 부산이고 50대 중반의 새댁입니다……ㅎㅎㅎ
무작정 일산을 가서 찾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다해 보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추적해보아도 없고……
많이 노심초사 했습니다
애궂게 조선블로그의 창만 클릭하면서……
그곳에 위블로그로 가라라는 안내만 해주었어도……
아날로그인 저는 몇달을 맘 졸였습니다
오늘은 혹시나 네이버에 조선블로그 순이이야기를 치니
다른블로그가 언급한 단어가 있어 검색되었습니다
친정을 찾은 느낌입니다
잘지내시니 고맙습니다
늘 축복속에 지내시길……
최 수니
2016-04-28 at 09:45
박나겸새댁님
찾아 오시느라 애쓰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러니까요.
옛날 조선블로그창을 클릭하면 위블로그로 안내하면
될 터인데 그걸 못하는 군요.
어떤분은 저의 직장에까지 전화를 해서 찾으시는 분도 계셨어요.
저의 이메일은
suni55@naver.com 입니다.
익명
2016-04-28 at 10:34
ㅎㅎ
각종류의 인터넷에 조선블로그가 위블로그가 되었다고
언급하여 올리면 안될까요?
저처럼 애타하는 글읽기만 하는 초보컴니스트들이 많을거 같은데
제가 뚜르륵 올리고 싶어도 올맇줄 몰라 못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