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강화도에 고구마를 심으러 다녀왔습니다.
벌써 고구마 농사 4년차입니다.
첫해에는 멋도 모르고 했고 다음해에도 봄가을로 소풍가는 기분으로 고구마를 심었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그런대로 소출이 나서 농사가 별로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종일 뙤약볕에 엎드려 고구마 순을 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흙을 만지는 노동 속에서 어떤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는 봄 가뭄이 심했던 탓에 고구마 농사가 안 되서 가을에 잡초 밭에서 새끼손가락 같은 고구마를 캐는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농사 중 가장 손이 안 간다는 고구마 농사도 쉽지 않은 것을 깨달았지요.
강화도에서는 인삼이 날 정도로 토질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 되는 곳입니다.
해풍이 있어서 인지 강화에서 나는 포도나 고구마가 다 달고 맛있습니다.
우리 병원 부장님이 밭을 가지고 있어서 재미삼아 시작한 농사인데 이젠 제법 이력이 붙습니다.
사실 농사짓는 일 이라기보다는 일터를 벗어나 병원 식구들과 고구마를 심는다는 핑계로 소풍 가는 것이 맞습니다. 한창 아카시 꽃이 하얗게 피어, 아카시향이 맡아지고 온갖 풀 향기에 섞인 해풍을 맞을 수 있는 강화는 동막 해수욕장을 지나는 해변도 드라이브하기에 아주 멋진 길입니다.
올해는 고구마 밭 이웃에 사는 분이 이랑을 만들고 비닐까지 씌워주는 작업을 해 주어서 고구마 순을 심는 일만 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비닐을 덮는 일부터 다 우리 서툰 농부들이 하느라 품이 많이 들고 힘들었는데 올해는 미리 품을 사서 밭을 고르고 비닐을 덮어 주었기 때문에 비닐을 뚫고 고구마 순을 구멍에 심는 일만 하게 되어서 수월했습니다.
장화를 신고 목덜미와 얼굴 반 이상을 덮는 농사용 모자를 쓰고 몸빼 바지를 입고나면 농부의 아내 모습 그대로입니다. 들일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난 후 우리는 서로 부녀회장 감이라고 각자의 농사용 패션을 추켜 주었습니다. 예쁜 분은 어떻게 입어도 예뻤는데 김자옥 같다는 칭찬을 듣는 분도 있었습니다.
산뜻하다 못해 우아하게 고구마 모종을 심다가 중간에 새참도 먹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밭가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수박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쉬면서 일을 했어도 정오쯤 일이 끝났습니다. 병원장님이 고구마 심기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개인카드를 주시면서 식사를 하라고 해서 그 카드로 강화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는데 에어컨을 틀어놓고 부추전을 비롯한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너무 쉽게 일이 끝나고 나니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서 동막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밀물이 달려오는 해변가 언덕 나무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갈매기도 보고 반짝거리며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직원 남편 분 중에 등산용품 마니아가 있어서 장비를 구입하다 못해 색깔 별로(깔별로 구입한다고 흉을 보더군요. ^^) 창고가득 쌓아 놓는 분이 있어서 야외용 의자도 가져왔다며 나를 앉으라고 했습니다. 바닥이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보니 더 좋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새우깡 봉지를 들고 서있자 갈매기들이 수없이 많이 달려들었습니다. 이미 새우깡 맛을 아는 갈매기들이고 어떻게 먹는지도 아는 포즈였습니다. 살진 갈매기들이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이 아닌 사람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모습이 예쁘지는 않았습니다. 야생을 잃어버리고 새우깡에 현혹되어 달려드는 모습은 아무리 새라고 해도 추해 보였습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바닷물을 박차고 물고기를 낚아 오르는 갈매기의 모습을 보면 멋있었겠지요.
올해는 고구마 밭가에 호박을 심었는데 잘 자라나 중간에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고구마 순도 좀 따 주고 애호박도 따고 하려면 좀 가까우면 자주 가보겠는데 너무 멀어요.
순이
데레사
2016-05-23 at 01:22
그러다가 진짜 농사꾼되겠습니다.
자기가 심어서 먹으면 더 맛있을거에요.
나도 해보고 싶다는것은 마음뿐이고
이제는 뭐든 몸으로 하는건 겁부터 더럭 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