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법

2 (1)
할머니가 되면 사는 게 메마르고 재미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어떤 작가가 자기는 딱 서른까지만 살고 죽겠다고 했을 때 젊은 사람들이 그 말에 솔깃했었습니다. 어쩐지 서른이 넘은 삶은 시시하고 시들할 것으로 예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서른을 두 번이나 넘기고도 두해를 더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한 시절을 두루 지나온 탓인지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의 큰 기복이 없습니다. 나는 무심하지만 그래도 생활 속에서 여전히 행복한 것들이 발견되고 흐뭇한 것들이 많습니다. 자잘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것 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상의 일 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석 같은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욕심이 없으면 비로소 발견되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생활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행복을 크게 행복해 하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손자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집에 있는 두 아이!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난 아기들과 동화책을 봅니다. 할머니가 솜씨 없이 읽어주는 그림책도
아기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동화구연이라도 배워둘 건데)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아기가 “오리 꽥꽥, 돼지 꿀꿀, 소는 움머 ”하면서 입으로는 소리 내며 듣고 있으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아기들은 대 여섯 권을 내리 듣고 나서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아기들이 휘젓고 다니는 공기조차도 달콤하고 생기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하겠다고 싸우고, 밖에 나가겠다고 조르고 조용할 틈 없이 늘 소란스럽지만 에너지가 넘칩니다. 입안에 넣었다 빼어낸 침이 잔뜩 섞인 음식을 할머니 잎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먹다가 배가 부르거나 먹기 싫은 것이 있으면 내 입에다 넣어 줍니다. 난 치즈 같은 것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아기가 내입에 넣어주면 얼굴도 못 찡그리고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그것이 싫지 않습니다. 손자를 제외한 다른 누가 먹다가 내 입에 넣어주면 받아먹을 수 있을까요?^^

3 (2)
날씨가 좋은 오후에 아기들을 데리고 공원에 갑니다. 더 아기 때는 유모차에 태우고 가거나 포대기에 업고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손잡고 다닐 만 합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가까운 공원에 풀어(!) 놓으면 잘 뛰어 놉니다. 아이들은 하루도 같은 모습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 자랍니다. 요즘엔 공을 차고 놀거나 씽씽카를 타고 놉니다.
오전에 한이를 유치원버스를 태워 보낼 때도 까꿍이가 따라갑니다. 형을 배웅하러 가는 김에 저도 밖에 나가 놀려고 하는 것이지요. 형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준비하면 까꿍이가 먼저 신발을 찾아 현관을 나가려고 합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착하고 예쁜 여선생님 같은 유치원선생님이 아파트 단지 앞에 차를 대고 아이를 손잡아 차에 태우고 갑니다. 조금 미리 나가 기다릴 때는 “할머니 우리 스쿨비가 왜 안 오지?”라며 기다립니다. 좋은 품성학교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치원은 “경청”에 대해도 가르칩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주의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이 경청의 뜻이라고 집에 와서 외웁니다. 동생이 장난감을 빼앗거나 노는 것을 방해하면 팔을 X자로 해서 동생에게 보여주며 ”그건 부정적인 태도야“ 이렇게 말합니다. 적절하진 않지만 긍정적인 태도와 부정적인 태도를 구별하는 조그만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한이 엄마와 나는 아이를 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 웃습니다.

1 (2)
형인 한이는 다섯 살! 이제는 제법 허세도 부립니다. 베란다 방충망을 뚫어 벌레가 들어오게 생겨서 방충망을 다시 해야 하게 생겼기에 “모기나 벌레가 들어와서 물어. 방충망을 뚫으면 안 돼” 라고 했더니 “할머니 걱정하지 마. 내가 모기 파리 다 잡을 수 있어” 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조그만 벌레가 벽에 가만히 붙어 있다가 네가 잠들면 내려와 물기 때문에 잡기 어렵다고 했더니 “괜찮아요~” 라고 큰소리칩니다. 괜찮다는 말은 어른들이 해야 하는데 저가 저지레를 해 놓고도 뭐가 잘 못 됐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보면 웃음이 납니다. 집안에서 타고 다니는 장난감차 뒤에 파리채를 위엄 있게 세워가지고 다니다가 허공에 파리채를 흔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개미 한 마리도 보면 기겁을 합니다.

3 (1)

할머니가 있는 집 아이들이 왜 버릇이 없어지는지 내가 할머니가 되니까 알겠습니다. 난 우리 아기들의 버릇들이기 위해 야단치는 일엔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제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흘리거나 뱉거나 숟가락을 집어 던지거나 컵에 물을 쏟는 것 등을 말려야 하겠지만 할머니는 아기들이 그러는 것조차 예쁘고 귀엽습니다. 할머니는 조금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봐도 큰 해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밤에 자다가 아파서 잠이 깨어 우는 아기를 돌보는 것은 엄마지만 할머니는 걱정만 합니다. 아기를 바로 가르치는 것은 엄마이고 할머니는 예뻐만 해도 됩니다. 할머니의 사랑법입니다.
아기들이 연휴를 이용해서 본가 식구들과 여행을 갔습니다. 딸아이는 계속 아이들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까지 다 함께 가서 즐겁게 물놀이도하고 산책도 하고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증조할머니와 까꿍이는 80년도 더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혈육이라서 그런지 증조할머니를 무척 좋아합니다. 연세가 있는데도 증조할머니가 건강하셔서 아기들과 잘 놀아 줍니다.

모처럼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집에서 거실에 널린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할머닌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기들이 돌아오면 무슨 책을 읽어줄까…….

 

순이

1 Comment

  1. 소리울

    2016-06-08 at 21:07

    벤죠님이랑 파미르에 다녀왔어요.
    위불에 쓰고 싶은데 익숙하지가 않아서 잘 안되네요.
    노력해 볼게요
    안부 전하랬어요
    이시쿨 호수 정도 한 삼박 정도 하면 볼 것 아름답게 보고 경제적인 여행이 되겠던데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