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차이콥스키 비창과도 같이 비감하고 아름답고 슬펐습니다.
동토의 나라라고 불릴 만치 춥고 눈 보라치는 겨울 나라 작곡가의 음악은 우울하고 공허한 그리고 창백하기까지 한 선율이 닮아있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 속에 녹아 있는 정서가 애잔하게 들려왔습니다.
러시아 하면 닥터지바고의 영화 장면이 떠오릅니다. 닥터지바고에서 눈 그친 밝은 날 성애가 잔뜩 낀 유리와 깨어진 창틈으로 내다보는 창밖의 풍경처럼 잠깐씩 햇살이 비취는 듯도 했지만 겹겹이 쌓인 눈밭을 추위를 무릅쓰고 한 걸음씩 옮기는 나그네처럼 음악이 힘겹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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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상당히 안정적이고 좋았습니다.
공포영화나 공상과학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지루한 듯도 했고 가끔은 이상한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 보였지만 독주자에게 잘 화답했습니다. 원주 필하모니를 지휘했다는 박영민 상임지휘자도 상당히 멋졌습니다. 지휘자는 뒷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선이 고운 매미 날개같이 생긴 지휘자의 까만 연미복이 허벅지 아래까지 내려와 손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추었습니다. 박영민 지휘자는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다가 지휘봉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그 앞에 비올라 주자가 주워 줄 만도 한데 연주자는 자기 연주에 바빠서 지휘봉을 주워주지 않자 지휘봉 없이 한 악장을 마치고 나서야 지휘봉을 손에 쥘 수가 있었는데 연주자는 지휘자가 주워달라고 할 때까지 주워 줄 생각을 안 하더군요. 김영욱 바이올린 독주자가 젊기도 했고 아이돌 가수처럼 잘생기고 가늘고 긴 체형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곡이 무척 까다로워 독주자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곡 같아 보일 정도로, 어느 땐 신경질 적이기도 하고 어느 곳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대부분 난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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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면서 민족의 정서라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인지장애로 병원에 계신 어르신들 중에 아리랑을 노래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어르신들이 아리랑을 오락시간에 모여서 부르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흥에 겨워 부른다면 이상할 것이 없지만 치매 척도검사에서 거의 0이 나오는 말기 치매 수준의 어르신이고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만 계시는 외상 상태이고 혼수상태는 아니지만 호명을 여러 번 하면 눈을 뜰까 말까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어르신이 눈을 질끈 감고 치아도 하나 없는 호물호물한 입으로 아리랑을 부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외부의 자극에는 반응이 극히 제한적인데도 아리랑 노랫말은 정확하게 부르는 모습을요.
치매척도 검사는 1~30까지의 단계가 있는데 치매 0단계라는 것은 혼수하고는 다릅니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이나 대답을 못하는 것이고 기억이나 생각을 하지 못하는 단계라고 보입니다. 나 스스로도 치매가 아닐까 의심할 때가 있는데 너무 당연한 것이 기억에 나지 않거나 어느 땐 까맣게 지워지는 부분이 있어서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24~5점 될 듯합니다. ^^ 혼수상태는 아니지만 자녀도 못 알아보고 식사를 삼킬 수가 없고 음식 섭취와 배설 기능까지 스스로 못하는 분이 아리랑을 줄기차게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애가 탑니다.
아리랑 가사가 쉬워서 인지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깊이 박힌 노래라서 인지는 모르지만 다양한 가사의 아리랑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선 아리랑이 정석처럼 불려 집니다. 아리랑의 가사가 체념의 노래일까요? 아니면 하소연? 혼자 구시렁거리는 불만인가? 여러 가지로 해석은 가능합니다만 사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대목은 악담 아닌가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발병이 나서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 같기도 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인위적으로 이별도 하고 살아서 아리랑의 가사는 뇌리에 박혀있나 봅니다. 인지장애 어르신들이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아리랑은 묵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서정시이면서도 원한과 아픔을 풀이하는 넋두리나 푸념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잠도 주무시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7~8시간을 부르는 분도 있습니다.
절로 한숨짓듯이, 가슴에 쌓인 한을 토하듯이, 혼자 소리로 부르는 아리랑을 듣고 있자면 참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리랑은 우리 정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땐 인지장애 어르신이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 슬프기까지 합니다.
혁명기 러시아 음악 중에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들으면서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선율 그들의 메시지를 들었다기보다 엇비슷하게 어둡고 슬픈 세월을 살아 내야 했던 우리 민족의 정서 그중에서도 아리랑을 생각하며 음악을 들었습니다.

 

연주자 층이 두터워져서 지방 재정으로 운영하는 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상당한 수준인 것에 감동받았습니다. 내분에 시달리는 서울시향을 곧 능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 봤습니다.

2 Comments

  1. 바위

    2016-07-12 at 03:40

    가슴에 와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을 즐겨듣습니다.
    참으로 멋진 곡이지요.
    감사합니다.

  2. 바위

    2016-07-12 at 09:34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이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1번이 아니라 2번입니다.
    그 2악장이 참 멋진 음악이지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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