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세계가 어떻든 현실은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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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리움 미술관은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데, 가는 중간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미술관 관람이야 당연히 배가 불러야 작품이 눈에 들어오겠지요. 한강진역 부근에 있는 맛집 검색을 한 친구가 부자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한강진역 부근에선 부자 피자가 가장 유명하다면서요? 정확한 상호는 D` BUZZA PIZZERIA인데 발음하기 좋게 부자 피자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행이 많기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일단 와서 대기하라는 답변입니다. 이병철 회장도 즐겨 먹었다는 설명이 곁들여지자 왠지 먹고 싶어지긴 했지만 친절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피자집은 세련된 검은색 건물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상호를 발견하기 어렵고 비 오는 날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가면서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여러 가지 피자를 맛보고 아메리카노 커피까지 마시고 배를 든든히 해서 리움 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입장료가 12000으로 비교적 비싼 느낌이었는데 다 보고 나오자 그런 마음이 가실 정도로 보물도 많았고 전시가 과학적으로 되어있어서 뭔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1관에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구조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4층엔 청자, 3층은 분청사기와 백자, 2층은 김홍도 정선 김정희 등의 고서화가 1층은 금동미륵반가상 등 불교미술과 금속공예가 전시되어 있어서  교과서에서 배운 보물은 리움미술관에 가장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layout 2016-7-18

​2관은 백남준 이우환 등 한국 현대작가와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 킹,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외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습니다. 1층에는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소와 유동 등 한국 근현대미술작품과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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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자라나는 나무”를 형상화한 건축물이 근처 나무들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위작 시비에 휘말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우환은 백남준이 타계한 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 예술가입니다. 세계적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물체와 공간, 물체와 인간 같은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찬사를 받는 예술가입니다. 리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우환 작품은 유리를 가운데 두고 돌멩이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관계한 시리즈 중 대화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우환 작가는 돌멩이를 주우러 다니는 것이 일과라고 할 정도로 돌멩이를 가지고 철이나 유리 같은 것으로 위치를 잡아 작품을 만듭니다. 돌멩이 위에 쇠막대를 걸쳐놓기도 하고 유리 위에 돌멩이를 얹어 놓은 작품도 있고 돌멩이 밑에 사람이 깔릴 것 같이 위태해 보이는 작품도 있습니다. 일본 시코쿠의 거의 버려진 섬 나오시 마가 이우환 미술관을 비롯한 예술 프로젝트로 되살아나 한 해 수 십만 명이 찾는 예술의 섬이 될 정도입니다.

이우환(관계항-대화)_수정


이우환 작품을 보면 참 간단해 보입니다. “이런 게 작품인가? 이런 건 나도 하겠다.” 할 정도로 이상한 생각이 드는데 해설해 주는 분이 그러더군요. 그 작품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다고요. 이우환의 ‘관계항’이 강에서 굴러다니는 돌덩어리를 공장에서 만들어낸 철판이나 유리와 함께 놓아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것인데 “우리가 수많은 사물을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사물들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경우만이 그 사물과 진정 ‘만났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예술은 예술이 고급한 정신 활동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나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는 상식을 깬지 오래입니다. 예술과 비(非)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예술이라 자처할 수 있게 되었고 독창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가인 것 같습니다.
벽에 검은색 액자가 하나 걸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검은색이 농담의 차이가 보인다고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저런 것도 작품이구나 하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움 미술관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작품이구나! 그러는 정도인데 그래도 의아하달까 뭐가 뭔지 모를 그럴 느낌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꽃무늬 옷을 입었는데 그 옷을 액자에 넣어 걸으면 그것도 작품이 될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는 네임밸류가 없어서 작품이라고 우겨도 누가 안 믿겠다. 하면서 웃었습니다.
김종학

난 개인적으로 김종학 작가의 녹음방초가 좋아서 여러 번 돌아가서 봤습니다. 30여 년 전 제주 신라호텔 로비에 걸려있던 김종학의 꽃 그림에 반한 이후로, 김종학 화백의 꽃 그림은 늘 내 가슴속에 있었고 한 점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능력이 안 되어 그냥 잊었습니다. 김종학 화가의 작품들은 자연 속에 피어난 온갖 꽃들과 짙은 초록을 생동감 있게 그렸고 원경과 거리감을 생략하여 사실적인 세밀한 묘사보다는 자연의 전체적인 심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미술관 나들이를 마친 후에 이태원까지 걸어와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축축한 날씨에 라면사리를 넣은 이태원 부대찌개 속에 든 라면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고 친구가 한턱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자 피자집에 둘러앉은 것보다 얼큰한 부대찌개 집에 둘러앉아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찌나 편하고 좋은지요! 미술이나 예술세계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부대찌개가 현실이고 훨씬 어울리고 편안했습니다. ^^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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