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곳에서 시작해서 해 질 때까지

1 (2)     대구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일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아도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시니까 모시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한 말씀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니까 번거로운 것은 있습니다. 대구는 데프리카(대구 + 아프리카) 라고 할 정도로 서울 보다 더운 곳인데 어머니를 모시는 올케에게 휴가도 드릴 겸해서 어머니를 우리 집에 가시자고 했더니 흔쾌히 따라나서기에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많은 막내 여동생이 대구에서 일산까지 고속도로로 올 것이 아니라 어머니랑 동해안을 훑어서 구경하며 가자고 했습니다. 난 운전면허도 없는 별명이 수하물이라 차 뒷자리에 어머니랑 앉아서 가고 운전을 즐기는 동생 둘이서 교대로 운전을 했습니다.

2 (1)

88세이신 우리 어머니는 스스로 일상을 유지할 정도로 건강하신데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인지장애가 약을 드시고 있어도 서서히 진행되는 탓인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 번만 해도 자녀들이 다 알아들었는데 처음 하듯이 반복을 하니 좀 번거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문제 삼지 않고 다들 연세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하고 잘 받아들입니다. 원래 어머니는 큰딸인 나하고 잘 살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늙어서는 아들 집에 가야지 아들이 있는데 왜 딸네 집에 있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아들 집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 또래의 어른들은 아들네 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탓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도 주변 여론에 밀려 아들 집으로 가셨지만 비교적 만족하게 지냅니다. 어머니께서 주 근거지는 아들 집으로 하고 딸 집에 엔 다니러 오는 형식으로 하면서 우리 딸들은 기회를 얻는 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곤 합니다.

3 (1)

대구에서 출발하여 포항 호미 곳이라는 곳에서 잤습니다. 경치 좋은 바닷가에 있는 펜션에서 묵으면서 아침 해 뜨는 것 보자고 계획을 하고 자면서도 아침 해를 볼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출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바닷가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도 구름이 끼거나 해서 해가 뜨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더군요.

11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고 왔으니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길을 나서면 어쩐지 늘 럭키 했거든요. 백두산 갔을 때도 쾌청한 천지를 볼 수 있었고 독도를 가도 접안을 못하고 돌아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는 딱 한 번 갔는데 독도를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동해안 해 뜨는 것도 나는 여러 번 시도했는데 선명한 모습을 못 봤는데 어머니랑 기다리고 있자니 수평선에 구름 커튼을 걷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태양이 뜨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높은 하늘엔 구름이 끼어 있었는데도 수평선 부근만 구름이 없어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여 태양이 조금씩 솟아오르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해가 솟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허밍으로 부르면서요. 맑은 해가 선명히 떠오르는 것을 가슴 벅차하면서 어머니랑 세 자매가 바라봤습니다.

6 (1)

​동해를 끼고 국도로 강릉을 향해 올라오면서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사진도 찍고 삼척 무릉계곡도 들리고 심곡 해변도 가보고 옥수수 감자 부침개 해물파적 같은 맛있는 음식도 사 먹으면서 오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서 중부고속도로에서 석양을 맞았습니다. 해 뜨는 곳에서 시작해서 해 지는 시간까지 다니면 놀았던 것입니다. 세 자매와 어머니 이렇게 다니면서도 먼저 간 동생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누가 자매가 몇 명이냐고 물으면 꼭 네 명이라고 대답합니다. 먼저 간 동생을 아웃카운트를 하기 싫어서입니다.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꼭 그 동생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합니다.12

​동해안이 정말 시원하긴 하더군요. 바람도 시원하고 바다도 좋고 녹음이 짙은 첩첩산중 무릉계곡도 좋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등산코스가 여러 갈래인데 삼화사 절 근처 계곡에서 물장난만 하다가 돌아서 나왔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도 잘 하시는 것은 빨래입니다. 본인이 입었던 옷은 꼭 손빨래를 해서 입으시는데 세탁기를 못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요즘처럼 더운 때는 한나절 입었던 옷도 벗어서 꼭 손빨래를 하시는데 계곡물을 보자 물 만난 고기처럼 좋아하십니다. 바닷물도 들어가 손으로 꼭  만져봅니다. 백두산 갔을 때도 천지 못에 내려가 손을 씻고 오겠다고 해서 말리느라고 애쓴 적도 있습니다. 천지에 내려가면 안 된다고 “손 만 씻고 오겠다는데 왜 안 되느냐?” 고집을 부리시니까 어떤 다른 여행객이 나서서 말려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고집이 세거든요. 한번 우기면 꼭 하시고야 마는 그런 분입니다.

7 (1)

그래도 지금은 그런 성품이 많이 온순해지셨어요. 우리 어머니 오셔서 80년 세월도 더 차이나는 증손자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