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는 우리 모두가 걱정하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친이 치매라든가 형제 중에 누가 그런 것 같다고 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치매 아닐까 걱정을 할 정도로 치매와 상관없는 사람이 없더군요.
저부터도 구십 가까운 모친이 계신데 몇 년 전부터 인지저하가 오기 시작해서 걱정이 많습니다. 아직은 대부분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데 어느 땐 손자의 나이가 가물가물 기억이 잘 안 나는 듯도 싶고 헷갈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꿔서 기억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핀트가 약간씩 어긋나는 것이지요. 며칠 전에는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의 작은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의 인지가 많이 저하된 것을 실감했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젊어서 일을 하느라 준이를 아기 때부터 어머니께서 맡아 기른 아인데 지금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어머니는 편애라고 할 정도로 그 아이를 귀애하고 키웠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준이가 학교 다니나” 하고 물었습니다. 좀 전까지 “준이가 잘생기고 귀엽고 똑똑하다.”며 한참 준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건 과거의 기억이고 현재는 판단이 안 서나 봅니다. 준이가 고1이라고 얼마 전에도 어머니가 봤다고 설명드리자 “내가 언제 봐? ” 이러시는 겁니다.
“준이가 키도 제 엄마보다 더 크고 잘생겨졌더라.”는 말씀까지 하고도 까맣게 잊으신 겁니다. 기억의 어느 부분은 선명한데 어느 부분은 지우개로 지운 듯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 어머니의 치매는 초기 단계라 대화가 엉뚱한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문제 정도이지만 더 진행이 되면 어쩔까 걱정이 됩니다.
치매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치매 약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니 몇 년 새에 획기적인 치료제나 예방약이 나오지 않을까 다 같이 기대해 봐야 하겠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평생 살면서 억눌린 부분이나 억울했던 부분이 치매로 발현된다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착했던 분이 치매에 걸리자 욕을 심하게 하거나 가족에게 폭력을 하거나 그런 분도 많이 있습니다.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직업에 평생 종사했던 분도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 그 사람의 품성이나 직업을 볼 때 그럴 분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가족들을 난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남편이 바람을 피워 속이 상했던 분의
치매 양상은 끝없이 가족을 의심하고 미워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치매의 양상은 환자를 간병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되게 마련인데 어떤 치매는 얌전합니다.
치매에 걸려도 예쁜 분이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어떤 분은 늘 빙그레 웃고 계십니다. 인사를 드리면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시고 “좀 앉으세요.” 라며 침상에서 옆으로 비켜 앉으며 놀다 가라고 합니다. 인지저하로 본인이 낳은 아들도 잘 못 알아보지만 대인관계에서 예의를 잃지 않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자녀들에게도 손님 대하듯 얼마나 깍듯하신지 모릅니다.
동생이 얘기해 주었는데 방송에 나온 이야긴지 어떤 분 강연에서 들은 이야긴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예쁜 치매”에 뽑힌 어떤 할아버지 이야깁니다.
할아버지는 집 앞에만 나가도 방향을 잃어버리셔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인지 저하가 심한 분인데 아내를 보면 꼭 “아이 예쁘다.” 라며 아내를 쓰다듬는답니다. 이 할아버지는 18살 먹은 아내가 첫아이를 낳아서 젖을 먹일 즈음 군인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아내의 모습이 너무 예뻤던 것이 기억에 각인이 되어 호호 할머니가 된 아내를 지금도 그렇게 예쁘다고 한다는군요. 본인은 치매에 걸리고 아내는 구십 세가 가까운데도 할아버지의 눈에는 아내가 18세 꽃 같은 소녀의 모습으로 보이는 겁니다. 이 할아버지는 다른 언어는 거의 다 망각했지만 “아이 예쁘다.“라는 말과 인사말 세 가지를 기억하고 있어서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한답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께서 악수를 청하면선 인사말을 건네면 누구든지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그런데 예쁜 치매는 드물고 엉뚱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분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어머니도 잘 삐치시고 우울해하시고 엉뚱한 말씀을 하셔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고혈압이나 당뇨 관절염 같은 성인병이 없는 분이라서 연세에 비해 건강이 좋은 편인데 인지저하만 진행이 더디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작년하고도 다르고 올 1월 어머니 모시고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올 때 하고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고집이 세긴 하지만 타협이 잘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본인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시는 면이 더 강화된 듯합니다.
예쁜 치매에 걸린 분은 복일 것 같습니다.
가족들도 편하고 기분이 상하지 않으니까요.
데레사
2016-07-29 at 14:36
어머님이 점점 나빠지시는군요.
가슴 아프시겠어요.
이번에 입원해서 보니까 사람이 건강하다는게
얼마나 축복인지 알겠더라구요.
순이님도 더위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