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자였으면 하고 바랄 때

최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권력형 비리는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사를 하거나 적은 급여를 받아 가면서 개미처럼 열심히 사는데 무슨 비리가 밝혀지면 경쟁하듯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뉘 집 아이 이름처럼 쉽게 불려서 어쩌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공직자의 뒷주머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모아 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뒷주머니를 차다.” 라는 말은 정상적인 거래 말고 잘 봐 달라고 책상 밑으로 슬그머니 건네는 것을 몰래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거액들은 뒷주머니에 챙길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재주도 좋습니다.

사람 들이 “나는 더 이상 필요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고 만족해하는 부자가 있는데 지금 부자들과 비교해 보면 귀여운(!) 것 같습니다. 성경 그대로 인용하면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럽니다. 이 부자는 쌓아둘 창고가 적어서 고민합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원하는 삶은 놀러 가고 싶을 때 가고, 잘 먹고, 편히 쉬고, 좋은 차를 타고, 남들보다 좋은 집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거액의 유산을 자자손손 물려주고……. 이러고 싶어 합니다. 시간과 돈과 건강 이 3박자가 맞아야 부자라고 합니다. 요는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거나 돈은 많은데 건강하지 않거나 하면 자유가 구속되는 겁니다. 시간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하지 않아도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니 진정한 부자는 아닙니다. 거기에 더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병까지 걸리면 가진 것으로 인하여 불행하게 됩니다. 잔뜩 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걸신증에 걸렸다고 하는데 커다란 권력을 쥐고 거액을 편취하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 허기에 시달리는 걸신증이라고 보입니다. 삶의 비본질적이고 외적인 것만을 채우고 쌓아 두려고 하는 병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먹은 만큼 배설을 해야 하는데 몸 안에 계속 쌓아두면 병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부자는 이런 걱정을 합니다.
“내가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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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있으면 소유도 귀찮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어떡하던 창고를 더 크게 지어 다쟁여놓으려고 하는 것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나누어 줄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둘 곳이 없어서 걱정을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소유한 것만 해도 넘치도록 충분한데도 부족하게 느끼는 참 특이한 걸신증입니다.
그 부자가 쌓아둘 창고를 지으려고 걱정을 할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걱정을 했다면 아름다운 이름이 기록되었겠지요. 요즘에도 높은 신분의 검사장이나 민정수석 같은 신분임에도 비리가 밝혀져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만 큼 가지면 만족할까? 참 궁금합니다.

나는 가난한 부모님 아래 여러 남매가 어렵게 자랐고, 내 주변엔 큰 부자는커녕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도 없어서 부자들의 삶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늘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 들 뿐입니다.
나 역시 한 달 내내 일해서 급여를 받으면 쪼개어 쓰고 삽니다. 친인척 지인들의 경조사에 부조금을 보내고 (나이 먹으니까 부조금 낼 곳이 점점 많아집니다.) 교통비를 쓰고 보험료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거의 제로이거나 모자랍니다. 그러니 쌓아둘 것이 없어서 창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ㅎ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일반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자가용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를 못 딴 이유도 있지만 편도 1250원 왕복 2500원이면 요즘처럼 더운 때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큰 차를 탈 수 있고 운동하기 싫어하는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걷게 만듭니다.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니까 저절로 걷기 운동이 되는 겁니다.

내가 부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때는 종종 있습니다.
여동생은 명색이 대학교수이고 우리 형제 중 유일한 박사인데도 출고된 지 20년이 지난 아주 낡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며칠 전에 동생 차를 한번 얻어 탔는데 차 에어컨 벨트에서 비명 소리가 나더군요. 그걸 고쳐서 다시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언니가 되어 새 차를 하나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여유가 없다는 것이 이럴 때 불편합니다. 귀한 생명을 싣고 다니는 차가 너무 노후해서 걱정이 되는 탓입니다. 여동생에게 승용차를 사 주면 좋겠는데 그 정도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는 마음 놓고 돈을 쓰고 싶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를 백화점에 모시고 가서 예쁜 옷을 사드렸는데 마음이 흐뭇합니다. 나는 만 원짜리 티 와 90% 세일을 하는 오렌지팩토리에서 바지를 사 입을망정 어머니껜 좋은 옷을 사드립니다. 90이 가까운 노인이지만 예쁜 옷을 입으면 좋아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 저도 참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사치는 이런 정도지만 몇 천억을 가지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다.
내 손이 수고한 만큼 벌어서 먹고살면 그게 가장 복된 삶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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