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예쁜 인연

부산에 사는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서 여고 동창들이 다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아주 재미있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서울과 강릉에서도 오고 오랜만에 만나는 부산 권에 사는 친구들이 많이 모여서 소규모 동창회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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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는 것이 푸근하다 보니 (푸근하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의 숙소와 식사를 신경 써서 챙겨주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도시가 형성된 광안리의 가장 포인트가 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전망 좋은 숙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밤에는 광안대교의 불꽃쇼를 방에서 유리창 너머로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고 늦은 저녁에도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 딸 결혼식 핑계로 간 부산 여행이 혼주도 좋아하고 친구들도 만족한 그런 행사였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20대 후반에 시누이 2명을 결혼을 시켰는데, 그때는 시누이 결혼식을 핑계로 친척 어른들이 며칠씩 집에 묵고 가는 손님 치르기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종부이신 큰 시어머님이 결혼에 관해 집안 어른으로서 이것저것 친견하시려고 대구에서 결혼식을 두어 주나 앞두고 오셨습니다. 나에게 양반의 법도에 대해 자꾸 말씀하시면서 훈계를 하시는데 그 즈음에 사는 생활방식이 아니라서 잔소리로 들렸습니다. 예를 들어 폐백 음식을 집에서 하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예식장 예약하면서 폐백 실과 폐백음식을 맞췄다고 했더니 야단을 엄청 치시는 겁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행에 쓸 음식들도 집에서 장만해 보내라고 하는데 집에서 하기 어렵고 할 줄도 몰라 전문으로 하는 집에 주문한다고 하니 큰 시어머님이 해 주신다고 장을 봐 오라고 했습니다. 이바지 음식으로 인삼 강정, 송이버섯장아찌, 더덕장아찌, 명란젓 무침, 쇠고기 장조림, 김장아찌, 북어 보푸라기, 북어구이 그런 걸 집에서 만들어서 단지에 넣어 보내느라 정말 혼이 났습니다. 예식장에서 결혼예식을 마치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손님들이라 집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옛날 집에서 잔치를 할 때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교육행정서부터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억지를 부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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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둘째 치고 큰 시어머니 식사와 참견을 참아내는 것도 힘이 드는데, 큰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와 계신 것을 알고 큰 시어머니를 뵈러 서울과 시흥 안산 등에 사는 친척 어른들이 자꾸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온 김에 결혼식까지 보고 가신다고 눌러앉습니다.  그때는 어른들에게 무조건 순종해야하고 어른들의 말씀은 사람이 지켜야 할 규범이고 법도였습니다. 금세 우리 집은 노인정이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새색시까지 동원하여 노인들 수발을 해야 했습니다.  안노인들 중에 나이도 어리고 비교적 서열이 낮은 우리 시어머님도 딸 결혼식은 둘째 치고 그분들 수발을 하시느라 허리 펼 새가 없습니다. 아무리 일을 도와주는 분이 있다고 해도 안노인들 식사수발이 만만치 않아서 일하는 분도 입이 나오고 나는 먹을 것을 사다 대느라 골병이 들 지경이고 시어머님은 그들의 담배 심부름꾼으로 전략을 하는 겁니다.
낮에는 모여앉아 화투를 치고, 하루 종일 담배를 피워가면서 집안 이야기로 밤을 새웁니다. 거실을 차지해서 노인들이 합숙을 하시는데 그분들은 결혼식을 보러 왔다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미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시어머님은 손님 대접을 잘 했다는 소리를 들으시려고 최선을 다하고 집안 흉 떨릴까 봐 그분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전전긍긍했습니다. 양반가에서는 위선적인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집안의 여론을 몰고 다니는 큰 시어머님과 안 어른들을 홀대해서는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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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이번에 많은 친구들과 가면서 혼주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혼주는 우리 친구들이 많이 와 주어서 힘이 되고 기쁘다며 진정으로 우리를 환대했습니다. 커다란 별장 같은 대 저택에 살고 있어서 자기 집에 와서 다 자도 된다고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우리가 사양했습니다. 딸 혼인예식을 치르는 일만 해도 바쁘고 힘든데 집에 20 명가량  되는 친구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얼마나 번거롭겠습니까? 그랬더니 호텔을 잡아 주어서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놀 수 있었습니다. 불심이 깊은 친구라 명망 높은 스님이 예식 주례를 맡아 주셨는데 “천지신명께서…….”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는데 신랑신부에게 효를 강조하셨습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상대에겐 배려하고 관용하며 화목하고 성심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 효도를 가장 강조를 하셨는데 그 효를 받을 사람이 다름이 아닌 내 친구더군요.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고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나중에 효도해야지 그렇게 맘먹지 말고 지금부터 하라는 했습니다. 효도 받을 위치가 된 내 친구는 예식을 마치고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우리에게 왔는데 빽 바지에 핑크색 남방을 걸치고 모자를 쓴 모습이 절대 할머니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효도의 방법도 옛날과는 달라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 없고 체력도 약화되고 병든 노인이 아니라,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골프여행을 다닐 정도로 팔팔하고 큰집을 관리하느라 늘 움직여서 힘 있고 독립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보살핌을 받거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구속이 될 것 같습니다.

친구는 자랑을 안 하는데 신부는 고등학교 교사이고 신랑은 변호사라고 주례가 소개를 해서 알았습니다. 사위가 표정이 어찌나 선량하고 예쁜지 친구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물로 딸도 키도 크고 예쁘고 착해서 부모 속 썩이는 일 없이 공부도 잘해서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고 합니다. 꽃처럼 예쁜 인연을 만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6-09-13 at 08:17

    옛날에는 친척들이 오면 며칠씩 묵어가곤 했지만 그건 또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시에 산다고 시골 친척의 아이들이
    서울로 학교에 오면 우리집이 기숙사가 되었거든요.
    직장에 다니면서 그 치닥거리를….. 지금 같았으면 이혼을 해도
    백번은 했을겁니다. ㅎ

    두사람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2. 윤정연

    2016-09-14 at 11:08

    우리때도 참힘들었어요…7남매 맏며느리라 시누이 4명 시동생 2명 결혼할때마다 일이 얼마나 많았던지 지금생각하니 아득한 옛날!!

  3. 윤정연

    2016-09-14 at 11:17

    친구분의 자녀 결혼식에 모두모여서 축하해주고
    즐거운 만남이 행복했을시간이 좋았겠어요…
    저도 7남매 맏며느리라 시누이4명 시동생 2명 결혼할때마다 힘들었지요~~엿날 어른들이 맏며느리 기피하는 마음을 알겠든데요 ㅎㅎ

  4. 박광희

    2016-09-14 at 18:07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주고
    친구들끼리 소중하고 멋들이진
    추억 만들고 너무 멋집니다
    이글을 읽고 있느라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처지는
    광경 길이 길이 기억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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