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 가족 이외에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여고 동창 같습니다. 여중고를 같이 다녀서 서로의 성장과정을 알고 형제가 몇인지 등 집안 내력도 비교적 소상히 알아서 특별히 체면을 차릴 일도 없고 흉허물 없이 자매처럼 지냅니다.

결혼식이 오후 3시에 있어서 식사까지 마치고 호텔에 들자, 긴 저녁시간이 남았습니다. 눈앞에 광안리 해수욕장이 펼쳐저 있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철이 지난 바닷가가 쓸쓸해야 맞는데 광안리는 밤이 깊어질 수록 더욱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U자 형으로 바다가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와 인가와 접해 있어 호텔에서 나와 찻길 하나 건너자 바로 바다입니다. 바닷가를 거닐다가 노래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기에 노래를 청했습니다. 내 친구 란이는 바닷가에 서면, 파도소리보다 더 크게 목청껏 노래를 잘 부릅니다. 내가 노래를 밝히기도 하지만 란이는 무인도, 밤안개, 백만 송이 장미 같은 노래를 가수보다 잘 부릅니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끝없는 몸부림에~~ 이런 노랫말이 파도소리와 어울려 생생하게 들려서 바닷가에서 듣기는 제격입니다. 그런데 친구도 나이를 먹는지 가사를 까먹어서 못 부르겠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계속 추임새를 넣었는데 바닷가에서 노래를 불렀나? 그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해안선을 끼고 노점상이 주~욱 들어서 있고 오픈된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가득가득 모여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토요일 밤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변을 걷다가 발에 묻은 모래를 털면서 둑으로 올라갔는데 라이브로 젊은이들이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생소하기도 하고 가사가 들리지 않아서 그냥 음으로만 듣는데 노래 잘하는 친구에게 “네가 노래하나 불러 볼래?” 라고 했더니 “가사를 몰라서~” 라고 하는데 부르고 싶은 눈치입니다. 젊은이들이 앰프를 설치해 놓고 도네이션을 받고 반주를 틀어주는 형식이었습니다. “내가 신청해 볼게” 하면서 앰프를 설치한 주인에게 다가가 노래 한 곡 부를 수 있겠냐고 했더니 조금 뜨악한 표정입니다. 젊은 사람들 노는데 무슨 할머니들이? 하는 느낌이 드나 봅니다. 모금함에 일단 만 원을 넣었습니다. ^^
무슨 노래를 부르겠냐고 묻기에 친구가 잘 부르는 “정훈이의 무인도” 라고 했더니 음원이 없다고 합니다. 나도 네이버에 음원을 찾아봤는데 급해서 그런지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부르겠다고 했더니 그건 음원이 쉽게 찾아졌습니다. 요즘 휴대폰은 거의 만능입니다. 노래방도 아니고 거리에서 반주를 찾아서 라이브를 하기도 핸드폰 덕택에 가능졌습니다.
란이에게 무인도는 반주를 못 찾아서 안 되겠고 백만 송이 장미를 부르라고 했더니 가사를 다 못 외운다고 해서 내 휴대폰으로 가사를 찾아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백만 송이 장미는 가사가 길어서 그걸 외워서 부르기는 오리지널 가수가 아닌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앞에 젊은 친구가 노래를 마치자 내 친구에게 마이크가 넘어왔습니다. 마이크 체질인 란이는 인사말까지 멋들어지게 합니다.

저는 친구 딸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서 왔습니다.
광안리 바닷가 너무 멋있고 낭만적입니다.
아름다운 밤바다와 도시가 어울어져 낭만적인 이곳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즐거운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백만 송이 장미를 부르겠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손뼉을 치거나 발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러 멀리 지나가던 사람들과 해변을 걷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긴 노래를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진행하던 젊은이가 마이크를 건네받더니
“왠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신다고 해서 될까 했는데 관객이 더 많아졌네요. 어머님들 감사합니다.” 라고 맨트를 합니다.
할머니라 안 부르고 어머니라고 불러주어서 감사했지만 “우리 어머니들도 놀 줄(!) 알아요.” 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

너무 민폐였을까요?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