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서 예식장은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번 부산 친구네 혼사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42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도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는 듯 자연스럽고 아무 거리감이 없습니다. 다만 10대 때 친구를 할머니가 되어 만나니 신경이 쓰이는 듯 “나 너무 늙었지?” 하면서 자꾸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 그녀를 보기엔 여전히 귀엽고 발랄한 성격이랑 외모가 그대로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함께한 학창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도 기억나고, 그가 하던 행동 그가 교실 어디쯤에서 앉았었고 누구와 친했는지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해도 타고난 성품이나 말씨 그리고 행동은 그대로인 듯했습니다. 서로 나이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내가 더 늙었지? 넌 하나도 안 늙었다.”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서 서울에서 간 친구들을 자기 차에 싣고 다니며 밥도 사주고 범어사 구경도 시켜주었습니다. 웃기도 잘하고 성격이 발랄하여 아직 10대 같은데 나이 먹은 티는 엉뚱한 곳에서 났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이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꿰뚫고 있고 실천하는 것 같습니다. 관절에 좋다는 것 혈압에 좋은 음식 하다못해 당뇨에 좋다는 누에나 뽕에 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돋보기를 콧잔등에 걸치고 안경 위로 눈을 치뜨고 보는 모습이나  운동마니아라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관절이 좋지 않다고 할 때는 영락없는 할머니 입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척이나 지인들이 예식장에서 만나 자기들끼리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주례사를 듣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주례사는 신랑신부나 양가 부모 정도만 집중해서 듣고 있고 하객들은 주례사 들을 여가가 없어 보였습니다. 주례가 “천지신명께서~” 이렇게 주례사를 시작하기에 이색적인 주례 말을 들어 보려고 애를 썼는데 소음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간혹 효도에 관해서 강조하는 것을 대강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도 집안 결혼식에 가서 보면 오래 못 만나던 사촌이나 8촌 등과 밀린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그러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 작게 소근 거렸으면 좋겠더군요.

친구들과 예식장에서만 보고 해어졌으면 아쉬웠을 터인데 호텔까지 빌려 일박을 한 덕택에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고 넓은 방에서 빙 둘러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산에 사는 친구 동생이 음료수랑 과일을 잔뜩 사 보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젊을 때 만나면 아이 키우는 일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고 다음엔 아이들 공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대학을 가고 군에 가고 유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나자 지금은 다시 황혼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젠 연금에 관한 이야기가 추가되었습니다. 모인 친구들 중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친구들이 6~7명이나 됩니다. 그들이 퇴직할 즈음에는 거의 사무관이어서 공무원연금이 많다고 했습니다. 들어보니 공무원 연금이 대부분의 근로 소득자의 월급 보다 많았습니다. 긴 세월 한눈팔지 않고 한가지 일 즉 공무원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누구보다 노후가 탄탄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은퇴해서 시간 있고 연금 있고 건강하니까 어디든 가고 구속받을 일이 없습니다.

연금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하는 친구가 있는데 연금 관리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했더군요.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를 비롯한 몇 명은 듣기만 합니다. 분위기를 리드하고 이야기를 주도하는 친구가 있고 그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는 친구 그리고 듣기만 하는 친구 이렇게 나뉠 수 있는데 친구들 이야기는 들어두면 다 실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난 그렇게 말 잘하는 친구도 부럽고 노래 잘하는 친구도 평생 부러워만 합니다. 무엇보다 부러운 건 노래 잘하는 것입니다. 노래를 못 해서 음악 듣기를 즐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서는 말을 잘하거나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나중에 그 이야기 자리에 있었는지도 잘 기억을 못 합니다. 한참 지난 뒤에 얘기하다 보면 “너도 거기 있었어?” 이러고 놀라는 일이 많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늙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