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추석 연휴 동안 침상에 책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여러 권을 읽었는데 그중에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라는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맨 부커 상을 받았대서가 아니라 그녀는 정말 잘 씁니다. 채식주의자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관찰하고 써 내려가는 그 솜씨가 대단합니다. 한강은 올해 맨 부커 상을 수상한 이후에 한국 독서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 독서계에서 한강은 아주 독특한 존재로 각인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라고 하지만 난 타고난 천재가 있다고 봅니다. 피아니스트나 성악가도 그렇고 운동이나 연기까지도 타고난 재능에 더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뛰어난 성공을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한강도 아버지 한승원으로부터 글 쓰는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봅니다. 글이야 뭐 쓰면 되고 쓰다 보면 늘지 않을까 하는데 글쓰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을 늘 뼈아프게 느낍니다. 어떤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만날 초등학생 일기 쓰듯하는 글쓰기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글 쓰는 일이 가장 큰 오락이라 멈추지 못 합니다. 내가 패배주의자라서도 아니고, 둔재인 것을 합리화 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글쟁이는 재미만 가지고는 안 되고 끝없이 쓰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올여름 얼마나 더웠습니까?
이순원 선생님은 그런 더위 속에서 에어컨도 안 켜고 장편소설을 완성했다고 하시더군요. 더우면 몸이 쳐지고 글쓰기는커녕 책 읽기도 어려운데 장편을 완성하도록 땀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은 어릴 때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던 기억을 떠 올렸다고 합니다. 강릉에서 옥수수를 보내와서 그걸 보니 “그래 이건 더운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글을 쓰면서 가능한 엄살 쓰지 않는 이유가 글쓰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농부가, 또 젊은 날 방학 때 집에서 빡세게 들 일을 할 때보다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고 농사일에 비하면 글쓰기는 신선놀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뙤약볕에 들에 나가 일했던 경험이 더위를 이길 수 있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인내와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합니다.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은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눈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녹기까지는 시간이랄 것도 없이 찰나의 시간이고 비현실적인 순간이 아니겠어요? 녹지 않고 쌓이면 빙산을 이루기도 합니다만……. 작가는 현제의 시간을 잠시 정지 시킨 후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상태에서 옛 직장 선배를 만납니다. 잡지사 내의 노동쟁의가 소재입니다. 사십 대 초반의 여성 화자 K에게, 죽어 유령이 된 옛 직장 남자 선배가 찾아와 역시 고인이 된 여자 선배인 경주 언니를 함께 회상하는 이야깁니다. 생전에 여자 선배는 짧은 인생 동안 서로 상처 주고받기를 멈추지 못하는 인간들을 “벌레” 같다고 여겼습니다. 벌레 같은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해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자들이 많은 직장에선 임신을 순번을 짜서 돌아가면서 하자는 계약을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출생률이 급격히 줄어들어 인구문제가 심각해지자 산전 산후 휴가도 길어지고 남편들도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등 모성보호에 국가에서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만 불과 10몇 년 전만 해도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 자동으로 직장을 퇴직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 직장을 고수하고자 하던 사람의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직장 내 갈등을 하는 임선배와 경주언니에 관한 이야깁니다. 두 사람 중 임선배는 병사했고 경주언니는 교통사고로 둘 다 고인이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했던 두 사람이 갈등하던 시간들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죽은 사람에게 무슨 차를 대접할까 무슨 음악을 들려줄까 이렇게 고심하는 부분도 신선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에게 무슨 차를 내놓으면 좋을까요? 차를 마시기나 할는지? 따뜻한 것을 대접해야 할지 찬 음료를 내 놔야 할지…….
만약 내가 사후에 누구를 찾아간다면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하고 봉지커피를 따뜻한 물에 타 줄까? 음악은 어떤 것을 골라줄까?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데레사
2016-09-20 at 16:06
나도 채식주의자는 읽었어요.
이 책도 사봐야 겠어요. 집에만 있으니 책은 많이 읽는 편이거든요.
김 수남
2016-09-20 at 22:02
네,순이언니! 그러셨군요.충분히 그 마음이 잘 공감이 됩니다.한강님 책 구해 봐야겠네요.새 소설 읽은 줄거리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
2016-09-21 at 15:58
순이님, 안녕하세요?
한강 작가, 지난 3월에 이곳에서 뵈었는데 참 겸손하고 조용한 분이었어요.
cecilia
2016-09-24 at 15:36
위의 댓글 제가 썼는데 왜? 익명으로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cecilia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