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는데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이 되면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갑니다. 역에 내려서도 신작로를 따라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산모롱이를 돌아 저 멀리 집이 보이면 할머니를 큰 소리로 부릅니다, 손자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도 반갑게 달려와 끌어안고 반기시던 할머니가 계시던 고향집에 대한 추억 때문에 그곳은 늘 돌아가고 싶은 곳입니다.
지인이 어릴 때 찾아가던 고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자 빈집이 되었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이상하게 금방 폐허가 되더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집을 그대로 복원하기는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손 볼 정도를 넘어섰고, 요즘엔 간편한 조립식주택으로 지으면 건축비도 적게 들고 공기도 단축된다고 해서 크지 않게 세컨하우스를 지었습니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집이 완성되면 가보려고 벼르다가 지난 주말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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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양평군 양동면에 속해 있는데 산이 나지막하고 들도 넓지 않은 작은 골짝들로 이루어진 동네입니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어서, 거리도 적당하고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아늑한 기분이 들어, 쉼을 얻기에 충분한 자연환경입니다. 실제로 사는 집은 서울에 있어서 모든 생활은 서울에서 하고 세컨하우스는 주말이나 여가시간에 가서 쉬다가 오게 되는 공간입니다. 산을 배경으로 산뜻하고 자그마하게 지은 집 앞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뒤뜰에는 밤나무에서 알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간 분들은 도착하자 바로 뒤뜰로 나가 알밤 줍기를 하는데 금방 한주먹씩 주워옵니다.

이런 것이 전원생활의 낭만이구나 하면서 돌아보니 가장 먼저 앞마당 공터에 무성한 잡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기 잡초가 무성한 너른 땅에다가 뭐라도 좀 심지 그랬냐?”고 말은 쉽게 했지만 막상 5평짜리 주말농장이라도 해 보신 분은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겁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의 손길이 수없이 가야 온전한 고구마라도 한 알 캘 수 있잖아요. 앞마당에도 잔디를 가꿀 여력이 없어서 자갈을 깔았다고 했습니다. 잔디 보다 관리가 쉽다고 해서 선택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물론 잔디 보다는 관리가 쉽겠지만 비가 오면 돌멩이가 쓸려 내려가서 자꾸 보충해야 하고 잡초는 자갈 사이를 무지막지 뚫고 올라와 자라고 있었습니다. 잔디 정원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잔디에 엎드려 잡초를 솎아 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딸 결혼식 당일에도 마당에 잡초를 뽑았다고 할 정도로 녹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은 고운 잔디를 보려면 잡초와 씨름 수준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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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하우스니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바람에 날아오는 낙엽을 쓸고, 잡초를 뽑고 무섭게 뻗어 나오는 넝쿨을 걷어내는 정도만 하려고 해도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주말에 잠깐씩 가서 돌보기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컨하우스는 가서 쉬기는커녕 일거리만 늘어서 또 다른 짐이 되어 보였습니다. 경계석 사이사이에 나무를 심었다고 했는데 넝쿨째 뻗어가는 잡초에 묻혀서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집안에도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살림을 모르는 내 눈에 띌 정도입니다.

나는 밤을 줍는 다든가 식사준비를 한다든가 하는 주부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라 나를 초대한 집주인이 고민을 좀 했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하고 하는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못 할 것 같아서 어떻게 밥을 해 먹이나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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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하얀꽃이 부추꽃입니다. 맨드라미도 오랜만에 봤고 사위는 숯불에 밤을 구워 먹으면 가을밤의 정취를 더했습니다.

 일산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하는 지인은 토요일 한시까지 진료를 마치고 함께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까꿍이가 요즘 감기가 걸리면 중이염으로 진행을 하는 통에 이비인후과 단골이 되어서 자주 드나드는데 마침 토요일에도 진료가 예약되어 있어서 우리 까꿍이를 마지막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까꿍이네 식구는 집으로 가고 나는 원장님 내외분과 함께 양평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은 진료시간이 짧다보니 환자가 몰려서 몹시 피곤해 하셨는데 지인의 집에 도착하자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한소쿠리나 주운 밤을 씻어서 칼집을 미리 넣어 두고 가까운 하나로 마트에 가서 맛있는 고기를 고르고 찌개거리를 사는 일이랑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하는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했습니다. 덕택에 맛있는 저녁을 베란다에 앉아서 먹었습니다. 고기를 굽고 남은 숯불에 햇밤을 구워주어서 가을밤의 정취가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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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한 나방들이 불빛을 보고 날아와 방충망에 붙어서 날아가지를 않았습니다. 나방이 어찌나 큰지 박쥐같아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조부모님이 살던 집터에 새로 집을 짓기는 했지만 유지 보수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마당에 지하수를 파서 사용하는데 물에 모래가 섞여 나오고, 난방은 틀자마자 고장이 나고 이런 것들이 잠시 쉬러갔지만 쉴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남이 부러워할 정도의 집 꼴을 갖추고 살려면 매일 집을 쓸고 닦고 정원까지 돌봐야 하는데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관리를 못하기 때문에 세컨하우스가 있어도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
집이랑 여자는 가꿀 나름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09-28 at 12:17

    나도 게을러서 저런 집에는 못 살아요.
    마음으로는 전원주택을 꿈꾸는데 실제는 자신이 없거든요.
    잔디를 가꾸는 더욱 힘들텐데 이집 주인은 정말 부지런하신
    분인가 봐요.

    군 밤 몇개만 얻어먹고 가야겠습니다.

  2. 김수남

    2016-09-29 at 00:38

    네,언니! 맘 이해됩니다.정말 거저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살아 갈수록 더 실감이 됩니다.까꿍이가 더 튼튼해져서 병원 가지 않고 쑥쑥 잘 자라길 기도합니다.가까이 좋은 의사선생님이 계시니 좋으시네요.함께 즐거운 시골 나들이 종종 하시며 맑은 공기로 더욱 건강하시길 또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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