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맛도 모르는 사람의 커피 이야기

점심때쯤 회사가 밀집해 있는 도심에선 정장을 입은 젊은이들의  네임텍을 목에 걸고 손에는 커피 한 잔 들고 삼삼오오 거리를 걷는 모습이 활기차고 보기 좋습니다.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사 들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겠지요. 어느땐 식사 비용보다 커피값이 더 비싸다고도 합니다. 커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기호식품입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환자분들도 커피 한 잔을 아주 좋아합니다. 나는 어릴때 시골에서 자라서 커피를 몰랐습니다. 많은 식구가 밥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어머니께서 커피 살 돈이 있으면 반찬거리를 더 사셨겠지요. 그랬던 어머니께서도 지금은 커피를 하루에 한두 잔 정도는 마십니다. 식후에 커피 드릴까요?라고 여쭈면 사양하지 않고 드시겠다고 합니다.

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커피가 그저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음료인 줄 알다가 서울에 와서야 커피 마시는 문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라버니는 공릉동에 학교가 있어서 청량리에서 하숙을 하고, 나는 기숙사에 있었기에  가끔 종로 2가에 있는 YMCA 지하 다방이나 그 건너 양지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그 당시 커피 맛과 색을 내어 커피 잔 수를 늘리기 위해 업주들이 담배꽁초를 삶아서 커피색을 내어 팔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인 것 같지는 않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방에 가면 커피는 안 마시고 쌍화차 같은 것을 마시곤 했습니다. 몸에 해로워서 안 마신다는 것보다 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담배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인지 멀리서 타인이 피우는 담배연기만 마셔도 기침이 나곤 해서 커피색이 담배를 우려낸 물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을 했는데 서울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근무하던 곳에도 스테인리스 쟁반에 가루로 된 맥스웰 커피 한 병과 도자기 그릇에 설탕과 프리마가 담겨 있어서 커피를 각자 타서 마시면 되었습니다. 커피포트는 없었고 동그란 열선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전기 곤로와 양은 주전자 그리고 커피 잔과 스푼이 있었지만 난 근무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나도록 커피를 타서 마셔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병원에 새로 인턴으로 온 분들이 있었는데 인사차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분들도 새로 병원에 적응하려니 잠시 쉴 시간이 필요했는지 냉장고 위에 커피를 보더니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드시라고 했더니 나에게 “손님 대접 겸 타 주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난 커피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더니 그들 중 한 명이 자기가 타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커피 타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는 걸로 알았나 봅니다. 70년대만 해도 여자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사무실 남자들 커피 심부름만 한다고 비하감이 심할 때여서 커피 심부름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했지만 난 진정으로 커피를 어떻게 타는지 몰랐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로온 인턴은 수도에서 주전자에 물을 받아 곤로를 전기에 꼽고 물이 끓는 사이에 커피 잔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익숙하게 커피 두 스푼 프리마 두 스푼을 넣더니 나에게 커피를 달게 마시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냥 고개만 끄덕였더니 그걸 신호로 내가 마실 커피에만 설탕을 세 스푼 넣더군요. 자기들은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신다며 프리마만 넣어서 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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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해서 마신 커피가 내 생애의 커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동서식품에서 나오는 커피믹스를 마시는데 맥스웰 커피입니다. 맥심은 조금 더 비싸고 고급이지만 난 어쩐지 지금도 커피 맛은 이 맛이라야 된다는 마음에 기준이 있습니다.

커피숍에 가서도 나는 커피를 시키지 않습니다. 아메리카노라도 마시라고, 자릿값을 해야 한다고 하면 사과주스를 시켜서 마십니다. 난 도무지 어떤 게 좋은 커피인지 맛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커피 향은 좋아합니다. 난 미각에 둔한 편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들이 좋은 커피라고, 비싼 커피라고 하면서 내 커피 취향을 무시하고 한 모금만 마셔보라고 해서 마셔보면 그게 그거고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일본 연수기간 중에도 일본 플라자호텔의 거한 조식 뷔페에서 젊은 남자 웨이터가 따라주는 커피를 마다하고 방에 돌아와 기어코 가져간 맥스웰 봉지커피를 타서 마시는데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타국이라는 느낌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나에겐 소울음료가 아닌가 합니다.

4 Comments

  1. 김 수남

    2016-11-11 at 14:30

    네,언니! 저도 비슷했어요.봉지 커피를 저희들은 다방 커피라고 불러요.단기 선교지에서 봉지 커피는 정말 맛있었습니다.평소에는 커피는 물론이고 봉지 커피는 더더욱 안마셨는데 최근부터 저도 종종 마십니다.커피도 유기농 커피는 조금 더 비싼데 저희 동네에 그런 카페가 있는데 단골들이 참 많고 유명합니다.친구가 주인이라서 저도 누가 찾아오면 항상 들려서 커피를 사 주면서 같이 마시게 되는데 커피 맛도 조금씩 알아 감도 새롭고 좋습니다.

    봉지 커피 추억은 우리 모두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겨울이 가까이 왔네요.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에 더욱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2. 데레사

    2016-11-11 at 16:11

    ㅎㅎ
    나도 비스무리 합니다.

  3. journeyman

    2016-11-11 at 16:15

    저도 믹스커피 매니아를 자처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설탕과 프림은 빼고 알커피로만 마십니다.
    나름대로 건강 생각한다고 그렇게 먹고 있는데
    가끔은 그 환상적인 배율의 믹스커피가 그리워질 때도 있어요.
    달달한 맛과 고소한 향기를 말이죠.
    근데 막상 먹으면 또 너무 달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새 입맛이 변하기는 했나봐요.

  4. 익명

    2016-11-13 at 00:21

    봉지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은 단맛+프림 맛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거기에 익숙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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