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에 어울리는 아람누리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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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겠지만 일산은 도시 전체가 단풍으로 가을 색인 브라운 칼라가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고요히 떨어지는 낙엽이 길에 양탄자처럼 깔리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구르는 낙엽이 가을의 정취를 더합니다. 가을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고 피부에 닿는 바람결엔 어느새 겨울 냄새가 조금씩 묻어납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초저녁달이 둥그렇게 뜨고 어스름해지는 주말 시간에 아람누리에 갔습니다. 아쉬운 가을이 가고 있는 저녁에 혼자 음악회를 가느라 버스에서 내려 동구청 앞길을 걸으며 참 좋다~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 건너는 네온이 화려한 도심이지만 정발산 자락의 동구청 길은 대로변이라도 벤치가 놓여있고 나무가 많아 조용하고 분위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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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누리 하이든 홀에서 혁명기 러시아를 겪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마침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시간이라 예매한 관객들이 그곳으로 갔는지 연주회장이 꽉 차지 않았습니다. 지휘자 성시연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일산에 성시연이 온다면 하이든 홀이 만석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민중의 힘은 혁명기 작곡가의 음악을 듣기보다 혁명이 필요한 현장으로 간 듯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멋진 성시연은 지휘하는 모습이 날로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점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할까요? 당당하고 어쩌면 건방져 보이기까지 한 그 뒷모습을 활기가 넘쳐 보입니다. 요즘 계속 감기 기운으로 쳐져 있었는데 경기 필하모니의 연주를 들으니, 탁한 실내에만 있다가 높은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신 듯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박종화 씨가 했는데 타력이 세고 빨라서 무슨 기예나 매직 쇼를 보는 것처럼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모니카를 잘 부셨고 노래를 잘하셨습니다. 집에서 혼자 찬송가를 부를 때도 앉아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책을 펴 들고 발로 장단을 맞춰가며 음표에 따라 멋지게 불렀습니다. 부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성을 바꿔서 부르기도 하고 알토와 베이스 부분까지를 따로 불러 보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부르는 찬송가 소리를 듣고 자랐고 하모니카로 동요를 부르시면 하모니카 소리를 반주로 삼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휘파람도 잘 부셨던 것 같고요. 그런 아버지 밑에 자라서 그런지 형제들이 다 노래를 잘 부릅니다. 형제 중에 나 혼자 노래를 못 불러서 이상한데 그 대신 음악을 무척 사랑하고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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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음악적인 성향을 받아서인지, 아버지의 장손인 오라버니의 아들이 이번 체코 드보르자크 콩쿠르에서 오페라 부분에서 준우승을 해서 우리 집안에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조카는 아버지보다 체격이 커서 키가 1미터 90센티를 육박하고 체중이 100kg 정도 되는 거구라 울림통이 커서 목소리가 우렁차고 목소리에 윤기가 있습니다. 체코 드보르자크 콩쿠르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 국내 매스컴엔 소개되지 않았지만 성악을 하는 분들에겐 제법 큰 콩쿠르대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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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목소리는 바리톤인데 음색이 베이스의 차분함과 테너의 화려함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남성 목소리를 상징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높은 음역을 지닌 것을 테너바리톤 또는 하이 바리톤이라고 하고 낮은 음역을 지닌 것을 베이스바리톤이라 하여 구별할 경우도 있습니다. 테너바리톤은 음색이 테너에 가깝고 베이스바리톤은 베이스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데 그만큼 음폭이 넓습니다.
오페라에서 주인공은 테너나 소프라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랑은 테너와 소프라노가 하고 바리톤은 테너나 소프라노의 아버지 아니면 소프라노를 사랑해서 테너와 겨루기를 하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노래합니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무대 위에서 테너와 대결하는 바리톤은 고음의 테너보다 더 여유롭고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조카가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국제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비 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성악가로 우뚝 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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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에서 만나는 돌체 식구들에게 조카 자랑을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조카 이야기를 하자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귀국 독창회를 하게 되면 초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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