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가게 주인이

동네를 둘러보면 24시간 편의점이 많습니다.
편의점들이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한정된 손님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을 보면서 생계가 될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물론 목이 좋은 곳은 매출이 많겠지만 우리 동네는 촘촘하다고 느낄 정도로 편의점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생겼다가도 몇 달 안 되어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고 인테리어를 뜯어고치는 일을 자주 봅니다. 동네에 새로 생겼다 하면 편의점인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우리 아파트 앞 나들 가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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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로 불렀던 곳을 나들 가게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지 한참 됐습니다. 나들 가게는 중소기업청에서 만든 용어라고 하는데 이웃처럼 친근감이 있는 동네 슈퍼마켓의 정서를 담은 이름입니다. “정이 있어 내 집같이 드나드는, 나들이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고 싶은 가게”라는 뜻으로 항상 가까이 있고 친함이 있는 가게라는 의미랍니다. 나들 가게라고 부르니까 어감도 좋고 어쩐지 구멍가게보다 순화된 느낌입니다.
우리 아파트 앞 나들 가게는 내가 알고 지낸 세월만 20년이 되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무서우리만큼 말이 없고 무뚝뚝하고 주인아주머니는 반대로 잘 웃고 친절합니다. 과자와 야채, 라면 같은 식품이랑 약간의 생활용품을 진열해 놓았는데 대형마트에 치여 장사가 썩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부부가 성실하게 가게를 지켜 두 딸을 잘 키워 결혼시키고 나와 비슷하게 손자 손녀를 봤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밤늦게 아파트로 들어올 때면 나들 가게의 불빛이 반갑기도 합니다.

일산에는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 대부분 일주일 단위의 장은 빅 마켓 등에 가서 봐오게 되어 나들 가게에서 사는 것은 아이들 초콜릿을 비롯한 과자 정도입니다. 우리 아기들이 나들 가게 가는 맛을 알아서 유치원을 갔다가 집에 올 때 들려서 킨더 초콜릿을 한 개 사들고 야 옵니다. 킨더 초콜릿은 계란처럼 생긴 포장을 반으로 쪼개면 한쪽엔 초콜릿 한쪽엔 미니 자동차나 동물 모형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그걸 조립하는 재미에 매일 하나씩 삽니다. 나들 가게 아주머니는 자기 손자와 나이가 비슷한 우리 한이를  반가워하고 예뻐합니다. 한이는 유치원 차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들 가게를 꼭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들 가게 문이 닫혀서 깜짝 놀랐습니다.
유리에 안내문이 붙어있어서 읽어보니 10일 정도 비운다는 얘기였습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자정 무렵에 문을 닫는 집이 웬일인가 싶어서 마음이 철렁했는데 기간을 명시한 것을 보니 여행을 떠난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프다거나 우환이 있어서 가게 문을 닫았으면 기간을 명시하지 못 했을 것이니까요. 우리 한이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오늘도 저기 문 닫았어요?”
“왜 안 해요?”
“언제 문 열어요?”하면서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이제 다섯 밤만 자면 문 열 거야 ”
“낼모레면 초콜릿 살 수 있어”
이러면서 달랬는데 약속한 10일 뒤에 나들 가게가 문을 열고 정상 영업을 하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한이 초콜릿을 사 줄 수 있어서 반가운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분이 변함없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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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오셨냐고 아주머니께 여쭈었더니 유럽을 다녀오셨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올해 회갑이라 그 기념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며 정말 좋았다고 하시는군요. 조그만 가게 안에서만 지내시다가 내외분이 멀리 여행을 다녀오셨으니 그 즐거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아침 이른 시간과 저녁 늦은 시간에는 아저씨가 지키고 낮 시간엔 아저씨가 쉬고 아주머니가 지키는 등 두 분이 교대로 가게를 보느라 함께 할 시간도 잘 없었는데 나들 가게를 시작하고는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다녀온 오붓한 여행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나들 가게 내외분이 우리 골목을 지켜 주는 지킴이 같고 변함없는 성실함이 다정한 이웃입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들 가게 주인의 유럽여행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열흘이나 닫혔던 문이 열리고 한이와 쵸코릿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9 Comments

  1. 익명

    2016-12-13 at 17:18

    자분자분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따뜻합니다.
    구멍가게를 나들가게라고 하는 걸 첨 알았네요.
    우리동네에도 비슷한, 부부가 하는 그런가게가 있습니다.
    가게이름이 라고. ㅎㅎ

  2. 데레사

    2016-12-13 at 19:25

    나들가게, 정겨운 이름입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편의점이 마당안에
    있는데 몇년째 하고 있어요.
    나같은 사람이야 교통카드 충전 정도지만
    꽤 잘되는것 같더라구요.
    24시간 환하게 밝혀 주니까 든든한 점도
    있더라구요.

  3. 막일꾼

    2016-12-13 at 19:26

    아까 스맛폰으로 댓글 달았더니 익명으로 나오네요.
    하여튼….
    우리 동네 나들가게 이름은 ‘돼지코’입니다.ㅜ ㅎㅎ

  4. 벤조

    2016-12-14 at 04:15

    이름이 정겹습니다. 동네 지킴이군요.
    예전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집 찾는것도 도와주었는데요.

  5. 벤조

    2016-12-14 at 04:20

    ‘유럽여행 다녀올만 합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한 대가이니까요.’
    사실은 이런 댓글을 먼저 달고 싶었습니다.

  6. journeyman

    2016-12-15 at 15:11

    장사하다 보면 시간 내기 쉽지 않을텐데
    그 분도 큰 맘 먹고 다녀오셨을 듯합니다.

  7. 이영아

    2016-12-15 at 21:08

    애쓰고 살다가 이런 여행을 다녀오면 참 보람있을 것 같습니다.
    순이 이야기 잘 보고 있습니다.
    모아서 책으로 내면 사 보고 싶습니다.

  8. 나정희

    2016-12-16 at 13:42

    수니님.읽고 보는 제가 더 행복합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9. 김 수남

    2018-08-12 at 13:30

    언니! 나들 가게 이야기 정말 정겹습니다.오래 전에 쓰신 글인데 저는 지금 읽었어요,
    여러가지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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