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호텔에서는 디너쇼가 열립니다. 저녁 만찬을 즐기면서 볼 수 있도록 여는 쇼를 디너쇼라고 하는데 유명 가수분들이 주로 합니다. 식사에 쇼가 곁들여지기 때문에 티켓 가격이 비쌉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매일 저녁 열리는 디너쇼는 공짭니다. 출연진도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식탁도 소박합니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출연진이 실수를 거듭하거나 공연 중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매우 재미있는 디너쇼입니다.
일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까꿍이 아빠는 오후 8시 반이 되어야 집에 옵니다. 아기들은 제 아빠가 퇴근해 오면 현관에서부터 겅중겅중 뛰면서 아빠 팔에 메어 달리며 즐거워합니다. 제 아빠 배고픈 것은 생각하지 않고 놀자고 하는데 “아빠 밥 좀 먹고 놀자” 고 겨우 달래어 떼어놓고 저녁 식사를 합니다. 까꿍이와 한이는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면 배가 고프니까 먼저 저녁을 먹여 놓았습니다.
우리 집 식탁은 호텔 디너쇼처럼 만찬은 아닙니다. 김치찌개와 생선구이 김과 멸치볶음이 반찬이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감자부침개가 있습니다. 나는 강원도 사람답게 감자요리를 즐기는데, 얼마 전 아는 분에게 큼직한 감자를 한 봉투 받은 것이 있어서 주먹만 한 감자 다섯 개를 꺼내다 껍질을 벗겨서 강판에 갈았습니다. 감자를 강판에 가는 수고만 없다면 매일이라도 해서 먹고 싶은 음식이 감자부침개입니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부엌 바닥에 앉아서 강판에 가는데 손자들은 그것도 신기하다고 바짝 들어앉아 구경을 합니다. 커다란 감자를 한 알씩 손에 집어 들고는 다음엔 자기 것을 먼저 갈아 보라고 줍니다. 감자를 강판에 거의 다 갈고 손톱만큼 남겼더니 그건 왜 안 가느냐고 묻습니다. 손으로 잡을 대가 없어서 그런다고, 할머니가 전에 더 작게 갈다가 손을 아야 했다고 설명을 해 줍니다. 한이가 조그만 감자 꽁다리를 손에 집어 들고 자기가 해 보겠다고 덤비기에 날카로운 톱니를 보여 주면서 손에 피난다고 말려도 기어이 해 봅니다. 작은 꽁다리는 버리고 통 감자로 해 보라고 했더니 감자 한 알이 아기 주먹보다 커서 강판까지 옮기기도 힘듭니다. 두어 번 감자를 밀어보지만 안되니까 도로 내려놓습니다.
감자부침은 미리 해 놓으면 식고 맛이 없으니까 아빠와 아기들이 서로 반가워하고 있을 때 시작합니다. 한이 아빠가 아기들에게 “아빠 배고파 밥 먹고 놀자” 하면서 떼어놓고 식탁에 앉을 즈음 완성입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소금만 넣은) 노릇하게 부친 감자 부침개는 정말 별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밥 먹는 일에 전념할 수는 없습니다. 아기 둘이 어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쇼를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한이가 유치원에서 마술쇼하는 것을 본 것을 흉내 냅니다.
” 아빠! 아빠! 내가 마술쇼할 게 나 좀 봐봐.” 하더니 케이크 상자 포장에 썼던 긴 끈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한 손엔 미니카를 들고 있다가 “아빠! 미니 카가 사라지는 걸 잘 봐” 하면서 슬그머니 바닥에 던져 놓고는 미니 카가 사라졌다며 “아빠 신기하지! 신기하지!” 하면서 신기해하기를 강요합니다.
제 아빠는 “어~ 미니 카가 어디 갔지? 정말 신기하다.” 하면서 밥 먹던 숟가락을 놓고 손뼉을 칩니다. 형이 마술쇼로 인기를 끄는 것 같으니까 까꿍이가 그냥 봐 넘기지를 못 합니다. 샘이 많은 동생은 형의 마술쇼 도구인 끈을 빼앗아 휘둘러봅니다. “ 야 우리 까꿍이도 잘 한다~” 이러며 공정하게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끈을 동생에게 빼앗긴 한이가 화를 내려고 하자 제 엄마가 보자기를 찾아다 목에 망토처럼 둘러매어 줍니다. 한이는 등에서 펄럭거리는 망토가 즐거워서 뛰어다닙니다.
그 북새통에 저녁을 먹고 나자 아이 둘은 아빠와 씨름을 합니다. 둘러치기 메치기를 서로 해 달라고 아빠에게 메어 달려서 아이를 거꾸로 들었다 바닥에 뒹굴 리 면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좋아합니다. 아빠 또, 또 하면서 자꾸 해 달라고 하니까 “아고 아빠 힘들어 그만하자”이러며 아빠가 주저앉자 아이들은 제 아빠 등으로 목으로 타고 넘으며 놉니다.
“힘없으면 아빠놀이도 못하겠구나.”나는 혼잣말을 합니다.
선교원에서 재롱잔치에 할 신랑 각시 춤을 집에서 연습을 하는데 요즘엔 그걸 해보라고 유도합니다. 까꿍이는 형이 춤추는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 배워서 같이 춥니다. “신랑 각시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이는 이런 내레이션까지 하면서 춤을 추고, 우리는 신랑 각시의 첫날밤을 구경합니다. 여기가 공연의 백미입니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도 부르고 성경 한 구절을 암송하는 것으로 디너쇼는 마치고 삼부자가 씻으러 목욕탕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집 디너쇼 풍경입니다.
데레사
2016-12-30 at 21:05
ㅎㅎ
평화롭고 단란한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보물이지요.
무럭 무럭 잘 자라기를~~
윤정연
2016-12-31 at 03:28
우리는 감자전 맛을 몰랐는데 딸이 강원도로 시집가고서야 맛을 알았지요. 강판에 갈기가 번거로와서 믹서에 갈아 약간 묽으니 밀가루를 조금만 넣고 소금간 해서 부치니 노릇 노릇 한 맛이 너무 좋았어요. 사위가 충청도로 장가오곤 갯갓이라 꽃게를 너무 좋아해서…바지락 국도 잘먹어서 어머님이 좋아하셨는데~~
고향맛은 어디가도 잊지 못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