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념이 희박한 나는 파산이라는 말이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지 경제관련 서적은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데 파산 수업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 지인이 건네준 책입니다. 저자와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일부러 사인까지 받아다 읽어보라고 주었습니다.
파산은 누구나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살다가 어쩔 수없이 닥쳤을 때 대부분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책을 읽고 책 속에 본인을 대입해 보고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파산을 극복하는 과정이 문학의 힘이었다는 것은 너무 의외의 발상이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파산 기업 회생 부도 채권자 같은 경제용어가 문학에 접목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은데 파산수업의 부제처럼 “무너진 우리를 다시 세우는 문학의 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도는 좋은 일이 아닌데 왜 “맞는다”라는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도는 꼭 “부도 맞다” “부도 맞았다”라고 표현하더군요.
변신( 카프카)은 하루아침에 파산자가 되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벌레로 변해 경제력을 잃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바로 자신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부도로 인생에서 벌레가 된 시기라고 쓰고 있습니다.
소망 없는 불행 (피터 한트케)은 살고 있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공무집행”이라고 쓰인 옷을 입은 집행관 손에 들려 가재도구가 집 밖으로 부려지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 펼쳐질 때입니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가족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는 모습에서 혹시나 자살 같은 극단의 선택을 할지도 모를 불안감을 공유했다고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양용)를 읽으면서는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됐고,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지음)을 보며 저자는 세 살 때 버림받은 모모보다는 자신이 낫다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는군요.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보며 세상을 버리려 했던 마음도 되돌렸고. 본인이 사라져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산수업”을 쓰면서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인용하고 싶어 일면식도 없는 이 수녀에게 원고를 보냈더니, 수녀님께서 흔쾌히 수락한 것은 물론 휴대전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해 테레사 수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며 힘내라는 격려를 받았답니다. “파산수업” 의 부제의 아이디어도 제안하고 추천사까지 보내셨다니 정말 존경스러운 이해인 수녀님입니다.
저자가 책날개에 쓴 자기소개는 이렇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서울 강남 8학군에서 초 중 고교를 나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의료경영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경영 수업을 받기 위해 귀국했다. 중소기업이었지만 40년 역사에 매출액 150억이 넘는 탄탄한 제약회사였다. 게다가 100억 원 상당의 사옥도 있어 한국에서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것도 강남에서”
저자 정재엽 씨(42)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제약회사에 합류해 일하던 중 2013년 부도를 맞았습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아버지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수감됐습니다.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던 삶의 밑바닥에서 그가 절박하게 부여잡은 건 문학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고. 그리고 일어섰습니다.
이런 경험을 담은 책이'파산수업'(비아북)입니다.
채권자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쏟아지는 욕설을 들으면서도 어떻게 틈틈이 책을 읽는 게 가능했는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거라고, 수근 거렸지만 그는 책에 기댄 덕분에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숨통이 트였다고 합니다. 책 속에는 절망의 순간을 버티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과 만나고 나면 “이런 일쯤은 견딜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책은 상황에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버텨내지 못할 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벌레로 변신 시킬 수 있는 자세가 어려움을 극복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인간이 맞는 고통보다 작은 벌레였을 때가 저항하거나 버티기 수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회사는 성공적으로 회생 절차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아버지도 교도소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순간이었지만 희망이 잠들어 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파산수업에는 “무너진 우리를 다시 세우는 문학의 힘”이라는 부제가 있어서 더욱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파산수업은 부도로 무너진 삶을 문학의 힘으로 이겨낸 책입니다.
다시봄날
2017-01-06 at 19:07
최선생님께서 바로 곁에서 얘기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또 그것을 책으로 쓰고 저자가 대단한 분이네요. 문학의 힘을 믿으며 저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