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클럽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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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에 농부의 손이 아흔아홉 번 간단다. 애써 농사지은 쌀알을 버리면 안 된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우리 할머니는 낱알 하나 흘리는 것도 경계를 하셨습니다. 오돌토돌한 그릇에 쌀을 씻어 돌을 거를 때도 쌀이 한 알이라도 흘러나갈까 조심하면서 쌀을 씻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남긴 것도 할머니께서는 애써 다 모아두었다 드셨고 쉰 보리밥도 버리지 않고 물에 씻어서 드셨습니다. 상한 것 먹으면 배탈 나는데 왜 그런 걸 드시냐고 여쭈면 할머니께서는 “할머니는 오래 살아서 괜찮아! 애들은 혹시 배탈 날지 모르지만 할머니 배는 튼튼해” 이러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고명딸로 크셨고 성품이 유난히 깔끔하셔서 우리가 남긴 밥도 못 드셨는데 손자를 키우면서 그들이 남긴 것은 드시더군요. 그랬는데 요즘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식빵을 먹을 때면 아기들에게는 속에 보드라운 것을 주고 가장자리 빵 껍질이 남게 되는데 그걸 모아두었다가 제가 먹습니다. 식빵 봉지를 열면 양옆에 붙어있는 면과 식빵 사각 틀을 제가 좋아합니다. 노릇하고 빳빳한 그곳이 고소하고 쫄깃하니 씹는 맛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밥, 과자 부스러기 빵조각 과일 깎은 것 국에 말아 놓은 밥, 치즈 쪼가리 우유 등 아이들이 남긴 것은 아무 거부감 없습니다. 딸애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런 것을 먹는 일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아이들 남긴 것만 먹어도 배부를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존중해야 남들도 존중한다며 자기 몸이 쓰레기통이 아닌데 왜 쓰레기를(남이 남긴 것을) 뫄 먹느냐고 하는 이론을 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이 사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배워서도 아니고 할머니가 되니 자연히 그렇게 되더군요.

나는 보수로 분류되는 부류인데 요즘처럼 보수가 공격을 받는 때에도 내가 보수인 것에 특별한 불만이 없습니다. 타고난 성향이 보수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고 하는 이런 성향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수층 중에서도 박사모니 어버이 연합이니 하는 어른들이 욕을 먹는 것을 봐 주기가 요즘엔 참 어렵습니다. 이분들이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돌 팬클럽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팬클럽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을 끝까지 좋아하는 것은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우리 조카도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HOT라는 아이돌을 좋아해서 팬클럽에 가담해 활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다른 무슨 일 보다 HOT의 콘서트에 모든 생각이 가 있어서 콘서트 티켓을 사고 공연이 시험 중에 있다고 해도 달려가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부모님 생일은 몰라도 HOT 멤버의 생일은 줄줄이 꿰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룹 멤버를 험담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주 싫어했습니다. 세상에 그 그룹보다 노래 잘하는 애들이 어디 있고, 그렇게 잘생긴 애들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 그룹도 실수를 하고 잘 못을 할 수도 있는데 좋아할 때는 무흠한 인간으로 여겨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그걸 험담으로 생각합니다. 가령 음주운전으로 걸렸다 그러면 그건 모함이거나 함정을 파고 범죄를 저지르게 조장을 했다고 그들을 변명합니다. 그 조카가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는데 지금도 HOT가 좋으냐?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합니다.
지금 보수 세력이 그런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뭘 잘못했냐? 지난 정권도 그 정도는 부패하지 않았느냐 하고 강변합니다. 대통령은 아무 잘 못이 없고 모함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아니고 평범한 가정의 주부였으면, 친한 아줌마 하나 두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 뭐 흠이 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분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에 따른 책임과 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때에 어르신들의 맞불 집회는 분란밖에 일으키는 것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한 발자국 물러나야 합니다. 맞불 집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과 손자, 며느리와 싸우는 모양새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맞기고 우리는 그들 뒤에서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 노인들을 선거권까지 박탈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거리로 뛰쳐나가 싸울 일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아이돌이 아닙니다. 막중한 책임이 있는 분입니다. 무조건 사랑하고 감싸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개인이고 가정이고 사회고 국가고 다 싸우다가 망합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른들이 이래서는 안됩니다.
보수가 한 사람의 팬클럽이 아닙니다.

5 Comments

  1. 데레사

    2017-01-09 at 15:21

    지금 맞불집회에 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통령 두둔할려는것 보다는 나라의 안녕,
    즉 혹시라도 공산화될까 겁내서 나선다고들
    하더라구요.
    분명 박대통령이 많이 잘못했지만 그틈을
    비집고 마치 자기가 대통령 된듯이 날뛰는
    사람이 더 밉다고도 해요.

    대통령은 헌재 판단에 맡기고 촛불도 태극기도
    대선주자들도 좀 조용히 지켜 보았으면 합니다.

  2. 윤정연

    2017-01-10 at 02:01

    저도 위의 데레사님의 말씀에 동의 합니다…
    분명 대통령의 잘못한 (불통 이라던지 세월호 참사에 달려가서
    상황 지휘 하지 않은) 일도 많다지만 그동안 잘한일도 분명 많았지요.
    기자들, 또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은 어째 하나같이
    현 대통령을 2~30년전의 일까지 싸잡아 나쁜말 하는지요…
    촛불이 자신을 대통령 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 밉네요!!!

  3. 이정이

    2017-01-10 at 05:06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가 어떻게 맛불집회 입니까?
    그동안 어르신들은 지켜보고 계시지 않았던가요?
    추운날 나라를 지키시려는 분들께 어떻게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십니까?
    어르신들이 전쟁을 치루며 지켜오신 나라이기 때문에
    어르신들께서는 나라의 소중함을 젊은이들 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무조건 사랑하고 감싸지 않으십니다.
    어르신들도 잘못을 인정 하시기 때문에 법치국가에서 법을 따르자는 의견으로
    그동안 지켜보셨지만 촛불을 민심이라 주장하는 정치꾼과 왜곡되고 편파적인 보도만 하는 언론에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으셨던걸 왜 모르십니까?
    촛불이 민심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도껏 한다면 어르신들도 이 추운날에 고생을 하지 않으실껍니다.
    막중한 대통령의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뺏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어르신들을 훈계하시기전에 촛불이 민심이라 믿는 정치꾼들과 젊은이들을 설득하심이 옳은 순서인듯 합니다.

  4. journeyman

    2017-01-10 at 18:56

    예전에 데레사님이 하셨던 말처럼 촛불도 애국이고 태극기도 애국이라 해야겠지요.
    다만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무조건적인 지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잘 따져보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실랄한 비판이 있어야겠어요.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그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니까요.

  5. 벤자민

    2017-01-10 at 23:06

    과거 스웨덴의 어떤 왕자가 한소리가 있죠
    젊어서 좌파 진보가 안되면 병신이고
    나이먹어 여전히 좌파 진보가 되면 그건 더 병신이라고..
    지금 이시점에서 그논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께인가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이제 고마 하자 마이무따 아이가” 식은?
    오늘 여기 누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숫자에서 밀리고 논리에서 밀리니
    나오는 치졸한? 방식이 아니냐고?
    지금부터 머리가 깨지게 더 싸워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ㅎㅎ
    그러나 분명한것은 촟불집회의 젊은이들도
    세월이 가면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이지요
    늙었다고 선거권 운운 하면은
    나중에 자기들 늙어 지하철 무료승차권 노인연금
    안받는지 지금 유치원생들이 지켜 볼겁니다 ㅎㅎ
    그러나 사실인즉 나라가 더 이상 험악해 지기전에
    서로 서로 자제를 해야겠지요
    저는 요즘 불안합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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