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90세가 되어가는 어머니께서 이미 5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책을 늘 읽으셔서 그런지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고 연세가 있으시니까 그러시겠지 하는 정도로 이해가 가능한 일들이고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시고 깔끔하셔서 잘 씻으시고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과일을 좋아하십니다. 지금도 성경책을 부지런히 읽으셔서 1년이면 성경을 두 번 정도 통독을 하십니다. 그래도 기억의 일정 부분이 통째로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전에 비해 행동이 느려지셨고 잠을 많이 주무시기는 합니다. 딸들이 게을러서 엄마에게 늘 야단을 맞았는데 어머니께서 아침에 늦게까지 주무시는 것을 보며 어머니가 늙으신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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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약을 드시고 계시지만 어른들이 손을 많이 사용하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손을 계속 쓰실 수 있도록 막내 여동생이 본인이 입고 무대에 서는 무용복에 반짝이를 달아달라고 일거리를 마련해 드리기도 합니다. 올겨울엔 날이 추워서 밖에를 못 나가니 집안에서 뜨개질이나 하시라고 뜨개 실을 잔뜩 사다 드렸습니다.

며칠 전에는 최초로 큰아들 목도리를 완성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솜씨 없이 뜬 목도리를 아들에게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오라버니에게 여러 번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시더랍니다. 큰 아들 것을 뜨면서 긴장을 많이 하셨는지 바늘 코를 빼 먹어서 거의 다 뜬 것을 과감하게 풀고 두 번이나 공을 들여 다시 뜨기도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괜히 목도리를 떠 주어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셔서 목에 매기 그러면 차 탈 때 등이라도 괴라고 하시더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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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는 목도리를 받아서 길게도 매 보고 둘러도 보고 한번 접어도 매 봐 가면서 셀카를 여러 장 찍어서 형제들이 보는 카톡에 올리면서 무척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어머니 연세에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목도리를 떠 주시면서 혹시 엄마가 뜬 것을 창피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격 해서입니다. 사실 오라버니는 이 목도리가 어머니께 받은 최초의 선물일겁니다. 요즘에야 자녀들에게 부모가 선물을 수시로 하지만 우리 때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선물이 다 뭡니까? 낳아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고 학교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부모에게 선물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기회가 닿는 대로 선물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오라버니는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관광지에서 파는 브로치를 사 와서 어머니께 드렸는데 그걸 무슨 큰 행사 때나 한복을 입을 때 다시고 장롱 깊숙이 상자에 넣어 보관하곤 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께 선물을 해 드리는 것으로 알았지 받을 생각은 안 했는데 목도리를 선물로 받은 오라버니의 감격이 이해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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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목도리를 첫 번째로 떠 주셨으니 다음번에 제 차례입니다. 예쁜 색으로 떠 주려고 시작하셨다고 해서 기대를 잔뜩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련된 목도리가 아니더라도 어머니 치매도 방지하고 어머니의 솜씨로 뜬 것을  목에 두르고  다니면 아무리 추운 날에도 마음이  따뜻할 것 같습니다. 저에겐 뭐라고 편지를 쓰실까요?
사랑하는 큰딸아  늘 건강해라 사랑한다. 엄마가
이러시겠지요?^^

3 Comments

  1. 데레사

    2017-01-16 at 04:53

    울컥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정말 다행입니타. 치매라고 하셔도 성경을
    읽으시고 목도리를 뜨시고 편지까지 쓰실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더 나빠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 김수남

    2017-01-16 at 07:38

    언니! 가슴 뭉클 눈물이 납니다.어머니께서 손수 따신 오라버님의 목도리 너무 멋져요.한 올 한 올 꺼내시는동안 어머님의 기억창고엔 하나씩 좋은 기억들이 쌓여가며 건강을 지켜 주실거에요..언니 차례임이 기대됩니다.다 마무리하시고 전해주실 때 꼭 다시 따뜻한 어머님의 사랑 담긴 포근한 이야기 또 나눠주셔요.

    저희 어머니는 2년 전 90세 때 소천하셨어요.노인성 병 하나 없으셨고 정신도 맑으셨는데 복통으로 병원 가시고 하루만에 천국 가셨어요.병원에서도 통화를 하셨는데 저가 밤사이 자고 일어나니 천국으로 이미 가셨기에 많이 아쉽고 슬펐습니다.평안히 천국 가신 것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언니 어머님께서도 지금 건강 잘 유지하시면서 오래도록 건강히 곁에 잘 계시길 기도합니다

  3. 윤정연

    2017-01-16 at 09:21

    그렇게나 칠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교육 시키시고, 가난을 헤처나가시고, 정말 뜻밖의 자녀들을 잃으셔도 의연하게 대처하셨던 어머님께서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니…
    수니님과 형제분들의 마음에 상심이 얼마나 크실지…
    부디 악화되지 않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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