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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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눈밭에서라고 하고 보니 보송보송한 날씨에 너무 안 어울리는 말 같네요.
그런데 진짜로 눈밭을 다녀왔어요. 친구들 하고 눈꽃 열차를 타러 가자고 몇 년 전부터 얘기했거든요. 날짜를 정하고 예약을 해 놓고 보니 눈이 한 번도 안 와서 눈 보기는 틀렸나 보다 했어요. 우리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라 눈에 대한 향수가 많습니다.
어릴 때 자고 났더니 문이 안 열릴 정도로 눈이 왔었다고 하는 친구들 얘기가 대부분인 걸 보면 우리 어릴 때는 강원도에 눈이 정말 많이 왔어요. 눈이 얼마나 쌓였으면 눈 속에 굴을 파서 에스키모 집같이 만들어 놀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2월에 눈이 많이 왔고 4월에도 눈이 오는 날도 있었어요. 그런데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눈이 안 오는 것 같아요. 올겨울에 눈이 서너 번 정도 왔나요. 차를 타고 아무리 가도 눈은 구경할 수가 없었지만 친구들과의 여행이라 그런대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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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열차를 예약한 것은 위에 사진같은 눈을 보려고 계획한 일인데 눈이라곤 구경도 못하고 가는가 보다 했는데 신기하게 함백산 만항재에는 눈이 있었습니다.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한 함백산은 고한읍과 태백시에 걸쳐있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산 중의 하나입니다. 정상에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의 고원지역에는 참나물 누리대 취나물 등 산나물이 많다고 합니다. 주목과 고사목에 핀 눈꽃이나 상고대가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눈이 없으니 볼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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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힐링의 숲이라고 불리는 자작나무 숲을 조금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 갈수록 눈이 점점 많아지더니 산꼭대기에 눈밭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은 맑고 파란데 하얀 눈은 어찌나 깨끗하고 공기가 맑은지 도시에 살면서 폐에 쌓인 노폐물이 다 씻겨 나가는 듯했습니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이 없으니 겨울 날씨인데도 포근했습니다. 눈이 녹은 곳곳에는 파란 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찾아보면 복수초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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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역입니다.
주로 제가 사진을 담당하는데 우리 친구들 사진을 찍는 포즈가 거의 비슷합니다. 8명이 한 줄로 주~욱 써서 찍으니 어떤 분이 88년도 스타일이라고 놀리더군요.
쌍팔년도를 언급하면 촌스럽거나 철 지난 것을 두고 쌍팔년도 패션, 쌍팔년도 개그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쌍팔년도가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인가하지만 사실은 우리 친구들이 태어나던 1955년을 이릅니다. 단기와 서기를 같이 쓰던 때라서 우리 1955년생이 단기 4288년생 들입니다. 1955년이면 우리나라가 전쟁 후 휴전되고 폐허 위에 새로 모든 것을 시작할 때라 환경이 열악하고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거나 궁핍한 것을 얘기할 때 쌍팔년도라는 말을 빗대어서 말하는데 우리 사진 찍는 모습이 쌍팔년도 스타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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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쩌겠습니까? 쌍팔년도 출생이니까 쌍팔년도 스타일로 살아야지요. ^^
친구들 중에 액면가가 가장 젊어 보이는 친구를 보니까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식훈련을 받는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는 일에 익숙하지만 이 친구는 독사진을 찍을 때 날아가는 새처럼 하고 사진을 찍고 눈밭에 들어가 눈을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쌍팔년도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진 찍는 포즈를 좀 연구하자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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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눈 구경도 했고 점심으로 곤드레 비빔밥을 먹고 났더니 말 그대로 힐링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자 적도 먹었고요. 함께 늙어가는 내 친구들이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5 Comments

  1. 윤정연

    2017-02-21 at 03:53

    그시절을 지나고 생각해보니…지금이 제일 황금시기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군요…입시생도 끝났을테고…자녀들 혼인도 막바지로 접어들었을테고…일흔이 중간 넘어가니 정말 여행도 친구들과 같이 모여가기가 쉽지 않아요…이런 저런 건강이 허락지 않답니다…
    이리 좋은 시절이 다가기전에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세요~~**

  2. 김 수남

    2017-02-21 at 13:20

    정말 너무 정다운 친구들과 여행이셨네요.여전히 밝고 젊은 모습들이시고 뵙기가 좋습니다.쌍팔년도가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더 자주 친구 분들과 나들이 다니시면서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눈을 보셨다니 정말 사진으로만 봐도 너무 좋습니다.

  3. 데레사

    2017-02-21 at 15:48

    쌍팔년도 스타일이 좋은데요.요증 아이들은
    사진 찍을때 폴짝 뛰기도 하고 팔을 있는대로
    벌리기도 하면 폼잡드라구요.
    어떤 스타일이든 자기 좋으면 최고죠.

  4. journeyman

    2017-02-21 at 16:40

    정말 환상적인 눈꽃여행을 다녀오셨네요.
    설경도 아름답고 우정도 아름답습니다.

  5. 나이팅게일

    2017-02-22 at 10:48

    우리친구 수니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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