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오기 위해 복잡한 버스에 올랐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짧아서 좌석이 있거나 자리가 없어서 서있거나 별 불편은 없지만 겨울비 오는 날은 달랐습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사람들에게 밀리면서 다른 승객이 맨 배낭에 부딪쳤는데 고리 같은 것에 찔려서 옆구리에 통증이 왔습니다. 옆 사람의 비에 젖은 우산이 내 바지에 붙어서 물기를 말리고, 입석 버스 바닥에 물이 흥건해서 몸에 한기가 들었습니다. 버스의 공기는 습하고 탁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출퇴근을 위해 타는 시내버스는 겨우 다섯 정거장입니다. 신호에 걸리지 않는 날은 5분 정도 걸리고 차가 밀린다고 해도 길어야 15분 정도 소요됩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사람들에게 밀리고 부딪치고 다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 불편했고, 그렇다고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다리를 옮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키가 크니까 고리로 된 손잡이를 잡고 겨우 숨을 쉬고 있는데 기사는 무자비하게 급브레이크를 밟기도 하고 거칠게 출발을 해서 승객들이 이리저리 쏠렸습니다.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겁이 많아 못 타봤지만 느낌은 청룡열차에 올라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사분이 청룡열차를 운전하던 분인가 보다 혼자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한 손엔 핸드백을 들고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쏠리면서 ‘금방 내릴 거니까 뭐’ 이러면서 견디는데 머리 위에 있는 라디오에서 사랑으로 하는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어도……..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해서 노래에 집중하다 못해 천정 쪽으로 발돋움을 했습니다. 순간 버스 안이 조용해지는 것 같았고 무언지 모를 아늑한 느낌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습니다. “다음 정거장은 발산중학교입니다.” 하는 안내 멘트가 음악을 끊어 먹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노래는 서너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만원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랑으로 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그 여인은 우리 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주일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피아노 레슨을 하던 선생님이었고, 그때 우리 집에는 나의 외가 쪽으로 친척 남동생이 우리 집에 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이 고아처럼 떠돌이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소식을 오랜만에 어디선가 듣고 우리 집에 데리고 있자고 해서 우리 점방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애들 피아노 선생님과 남동생이 한집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둘이 좋아하게 되었나 봅니다. 나로서는 친척 동생이 결혼도 못하고 혼자 떠도는 것보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게 해 주면 좋은 일이었지만 피아노 선생님과 남동생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 친척 남동생이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부모 형제도 없는, 고등학교도 졸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일이고 직장이라곤 우리 점방 일을 돕는 그런 입장인데 선생님의 편에서 보면 말려야 하는 게 양심적일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지방에서 음대를 졸업한 실력 있는 분이고 동생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동생과 결혼하고 나서 살기 힘들어지면 선생님이 나를 원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이 되려고 그랬는지 선생님의 어머니도 사윗감을 맘에 들어 하고 여동생들도 형부 감을 좋아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에 거칠 것 없는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나는 둘이를 뜯어말릴 처지는 아니었기에 내가 주선하여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해주었고 살림집도 얻어주어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내외는 인연이었는지 지금까지 아무 잡음 없이 예쁘게 잘 살고 있어서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외가 쪽 대소사에 가면 만나봅니다. 나는 그들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대학을 나온 똑똑한 아가씨가 부모형제도 없는 노총각과 결혼하려고 하는 것이 철없어 보였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볼 때 최악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무력하고 착하기만” 한 전형적인 사람이 그 동생입니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모네 집에 얹혀사는 등 운명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 보니 무기력하고 현실에 순응해서 몸을 움츠리고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타고난 성품이 온유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삐뚤게 자라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껏도 그 동생은 부정기적으로 일하고 평생 아내의 벌이에 의존해 사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교사를 하면서 안산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는데 두 아들이 잘 자라 벌써 취업을 해서 형편이 확 폈다고 합니다. 동생은 돈은 못 벌어도 일하는 아내 대신 가족을 챙기고 살림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봅니다. 언젠가 만났을 때 “결혼을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그녀의 따뜻한 눈빛을 보면서 정말 착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식 후에 부부가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나에게 리본으로 묶은 악보 하나를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이 해바라기가 부르는 사랑으로 하는 노래 피스였습니다. 신혼부부는 약소하다고 미안해했지만 나는 어떤 선물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그 노래에 모든 다짐이 들어있었을까요?
그녀는 어둡게 산 한 남자에게 손을 내밀어 환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사랑으로…….
버스에서 내려 겨울비 내리는 길을 걸어 집으로 오면서 그 여인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김 수남
2017-02-28 at 07:28
네,언니!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져옵니다.저도 이 노래 참 많이 좋아합니다.저의 남편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18번으로 해요.
그 먼 친척 동생 분도 심성이 착하니 또 착한 아내 만나셨고 그 선생님은 정말 천사가 따로 없으시네요.자녀들이 장성해서 잘 되었다니 참 반갑고 함께 기뻐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 두분이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잘 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