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과 마음을 함께하는 자그마한 마을

원주에 있는 인터불고호텔에서 일박을 했습니다.

호텔 이름이 (inter-burgo) 귀에 익지 않아서 무슨 뜻인가 찾아 봤더니 “뜻과 마음을 함께하는 화목한 자그마한 마을”이라는 뜻의 스페인 말이라고 하는군요. 4월 말에 스페인을 가려고 하고 보니 스페인에 관련된 것을 보면 유심히 보게 되는데 호텔 로비에 돈키호테가 말 로시난테를 타고 하인 산초와 함께 있는 동상도 있고 돈키호테가 기마 자세를 하고 있는 동상도 있었습니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의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렇게 위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때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은 참 멋진 직업 같습니다. 스페인어로 된 호텔에 돈키호테 테마가 있는 로비가 전에 같으면 관심 없이 지났을 일인데 여행을 앞두고 스페인 관련 서적을 찾아 읽다 보니 자연히 관심이 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키호테는 인기 캐릭터로 뭔가 엉뚱한 일을 하면 “네가 돈키호테냐?” 이러기도 하고 사람들을 웃기면 “걔가 꼭 돈키호테 같아” 이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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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사는 막내 여동생 집에 모여 차 한 대로 고속도로를 올랐는데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제2영동고속도를 타게 되었습니다. 제2영동고속도로로 가니까 강남에서 원주가 얼마나 가까운지 모릅니다. 작년 11월에 개통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었고 우연히 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동생이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를 안 한 탓에 우리는 빠르고 좋은 길을 가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은 그야말로 길을 읽고 헤매더군요. 화면을 보면 어느 순간엔 차가 강 위에도 있고 들판에도 있고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내비게이션이 불쌍해서 당장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겠다고 동생이 말하더군요. 새로운 정보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혼돈스러워하는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나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면 업그레이드를 안 한 내비게이션 같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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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과 사우나 쿠폰 조식, 딸기 주스 4잔이 포함된 호텔 쿠폰을 샀더니 여러모로 편리했습니다. 호텔 프런트에 “여기서 결혼식을 하는 혼주 가족”이라고 했더니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도 연장해 주더군요. 호텔 투숙객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인심이 후하더군요.

이렇게 편안하고 인심 좋은 호텔에서 하마터면 소방훈련을 할 뻔했습니다.
방에 집을 내려놓고 나서 저녁을 먹고 호텔 안에서 사우나하고 커피숍에서 주스까지 마시고 어머니와 느긋하게 즐기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온돌 방에 어머니와 세 자매가 이불 네 채를 넓게 펴서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세 자매 중 신학교 교수를 하는 큰 동생은 직업상 해외에 나가 오래 살다가 온 탓으로 민간 의료 행위를 잘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병원 가기 쉽지가 않으니까 체하면 손을 따는 간단한 수지침에서부터 감기나 두통에 쑥찜을 하는 등 자가치료를 하고 살기도 했고 스스로 효염도 보고 해서인지 그런 것에 취미가 있습니다. 요즘엔 이어 캔들이라고 해서 귀에 커다란 빨대 같은 것을 꼽고 불을 붙이고 있으면 피로가 회복된다며 그런 것도 하나 봅니다. 수지침과 쑥뜸 이어 캔들까지 죽 늘어놓은 동생이 나에게 해 준다고 일부러 짐이 되지만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귀에 이어 캔들을 꼽고 불을 붙여서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몸에 좋다니 그냥 동생이 하는 대로 편하게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귀에 이어 캔들로 굴뚝을 만들어 몸 안에 습기를 빨아낸 다음 (동생의 표현입니다) 손에는 쑥뜸을 뜨자고 했습니다. 손바닥에 쑥뜸기를 여러 개 올려놓더니 불을 붙이자 쑥 타는 향기가 은은한 것이 좋더군요. 저는 쑥뜸을 처음 해 봤지만 막내 여동생은 자주 해 봤다고 합니다.“내의 바람으로 늙어가는 자매가 둘러앉아 이런 것도 하니 좋다.” 하면서 어쩌다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아뿔싸! 천장에 화재 감지기가 보이는 겁니다. 화재 감지기는 연기나 열기 등으로 화재를 감지하는 순간,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질 건데 생각하니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얘들아 물 쏟아지기 전에 연기 나는 쑥을 모두 끄고 창문이랑 현관문을 열자.”라고 비명처럼 말하자 동생들도 얼른 알아채고 손에 붙은 쑥뜸을 뜯어 물 컵에 넣어 끄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물이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큰 동생이 해외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른 방 투숙객이 뭔가를 하다가 태우는 바람에 소방 벨이 작동해서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호텔 투숙객이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서 점검을 마치고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가기까지 여러 시간 한 데서 오들오들 떨면서 고생한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도 만약 천정에서 물이 쏟아지고 화재 비상벨이 울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결혼식도 그렇고 호텔을 물바다를 만들 뻔했는데 만약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주무시고 있는 어머니는 어쩔 뻔했냐고 하하거리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소동도 모르고 피곤하셨는지 깊이 잠이 드셨고 우리는 남의 호텔에 모든 투숙객을 소방훈련 시킬 번 하고 난 후에도 이야기를 끝이 없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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