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동생 혼사에 가려고 한복을 챙기는 모습을 본 딸이 나에게 의미 있는 웃음을 보입니다.
결혼하는 신부의 고모뻘이니까 가까운 친척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식에 한복을 입으려고 가져가는 것인데, 딸 생각은 짐 되게 뭣 하러 한복을 따로 가져가는가 그런 뜻의 웃음 같았습니다. 그래도 왜 웃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가방을 챙기며 눈으로 왜~ 하는 제스처를 했더니 딸이 못 참겠다는 듯 웃으며 “엄마가 꼭 하리미할머니 같아” 이럽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니 내가 하는 짓이 정말 그 옛날 하림 댁 같아서 따라 웃었습니다.
하림 댁은 저의 시어머니의 먼 친척 시누이의 택호인데 시어머니와 친하셨습니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자녀들과 함께 사는데 좀 한가한 분이라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즐겨 하셨습니다. 시아버지 장례 때도, 아니 그전에 입 퇴원을 반복할 적에도 하림 댁은 우리 집에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집안 대소사에 본인이 관여하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이셨습니다. 시어머님이 하림 댁 하림 댁 하고 부르니까 우리 딸들은 어릴 때라 “하리미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결혼해서 30대 초반에 시누이 두 명을 시집보냈는데 그때마다 하림 댁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우리 집 혼사뿐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 늘 참석하는 분이라 아는 것도 많고 그만큼 잔소리도 많았습니다. 시누이 결혼을 보름 정도 앞두고 집에 오시면 온갖 관여를 다 하십니다. 관여를 하고 도와주시는 것은 좋은데 고집이 센 분이라 본인 주장이 너무 강하신 겁니다. 우리 시어머님은 착하셔서 하림 댁의 전횡에 대해 묵인하는 편이고 동시대 사람이라 두 분은 의좋은 자매처럼 지내셨지만 시누이들은 그분의 주장을 거의 폭력처럼 느껴 갈등이 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폐백에 쓸 음식을 나와 시누이들은 폐백음식 전문집에 맞추자고 하고 하림 댁은 집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음식을 남에게 맡겨서 사 가는 것은 시댁에 대한 성의가 아니고 양반의 법도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기시면서 기어이 그걸 집에서 했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모양은 없고 해서 곤란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도 집에서 싸가지고 온 한복을 꺼내 입고 시어머니 옆에 자매처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으셔서 지금도 옛날 앨범을 꺼내놓고 보면 그분이 우리 집 가장 중요한 하객입니다. 하림 댁이 큰 시누이 결혼식에 입은 한복이 너무 허름해서 작은 시누이 결혼식엔 한복을 따로 맞춰드리기도 했습니다. 한복도 유행이 있어서 어느 땐 동정이 넓었다가 좁아지기도 하고 저고리 앞섶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해서 가족사진에 앞줄에 늘어선 한복 입은 친척들 중에 오래전 한복을 입고 서니 그것도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입니다.
시어머니께서 하림 댁의 전횡을 용인하자 그분은 우리 집의 참모였습니다. 시누이가 결혼식 후에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행을 갈 때 싸가지고 가는 음식까지 만들어서 신랑신부를 보낸 다음에도 며칠씩 더 묵어서 가곤 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이런 걸 다 누가 할꼬? 참 큰일이다.”이러며 생색을 내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밉지는 않았습니다.
하림 댁에 대한 추억을 딸과 둘이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난 후에 내가 “바쁘지만 않으면 애들이 신혼여행 다녀오는 것을 보고 와야 하는데…….”라고 말했더니 “엄마 한복까지 가지고 가는데 결혼식장에만 다녀오면 아쉽지요? 혼주 집에 가서 며칠 더 묵어 오셔야지.” 그러기에 “내가 없어도 잘 할까? 내가 꼭 가 봐야 하는데.” 이러며 웃었습니다.
요즘엔 한복들을 잘 안 입는지 결혼식장에 한복을 입은 하객은 나 혼자였습니다. 신부 엄마 신랑 엄마 그리고 고모가 되는 저 이렇게 3명만 한복을 입었고 다들 평상복을 입고 있어서 결혼식 분위기가 덜 나는 듯도 했습니다. 그래도 결혼식장에는 한복 입은 여인들이 많으면 잔치 집다워 보이잖아요.
지인의 결혼식에는 이렇게 젊은이들을 보냈습니다. ^^
점잖게 할머니를 대신해서 축하 인사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김수남
2017-03-15 at 12:36
수니언니! 어머님의 건강하신 모습을 사진으로지만 뵐 수 있음이 반갑고 감사합니다.이 정도 근력이라도 늘 잘 유지하셔서 더 자주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사랑스런 두 왕자님들이 이번에 큰 역할을 잘 감당했네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가정을 세워주시는 것은 정말 하나님은 큰 은혜이고 복입니다.
언니 가정 가운도 사랑과 행복이 가득 늘 넘쳐 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