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항상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여행 땐 깨끼 발가락에 발톱이 조금 떨어져 들렸는데 그걸 깎을 손톱 깎기가 없어서 신경이 몹시 쓰였던 적이 있어서 이제는 여행 갈 때 손톱 깎기를 챙깁니다. 어느 해 미국 여행 중에는 룸메이트였던 아주머니의 코털이 길게 자라 코 아래로 내려왔는데 코털 가위가 있으면 잘라주고 싶었지만 가위가 없었습니다. 남의 코털이 그렇게 신경 쓰이기도 하더군요.
이번엔 추워서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보다 한 달 전에(3월에) 다녀온 친구가 스페인 너무 덥다며 얇은 옷을 가져가라고 여러 번 당부를 하더군요. 여행사에서도 여름옷을 준비하라고 연락이 왔고요. 여행 가방을 챙기면서 “여름 여행은 옷이 가벼워서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름 바지와 여름 티셔츠를 여러 개 준비했습니다. 일 년 365일 중 300일이 쾌청할 정도로 지중해성 기온이라 좋다고 했고 좋은 중에 가장 좋은 계절인 4월 말에서 5월 초라 날씨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사정은 180도 달랐습니다. 가는 곳마다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조화롭지 못해 고생을 좀 했습니다. 지난 3월은 이상 기온으로 몹시 더웠고 우리가 갔을 때는 이상저온이라고 할 만큼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나는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추웠던 기억이 있어서 입고 간 검정 코트를 여행 내내 교복처럼 벗을 수 없었습니다. 코트를 입고 가지 않았으면 추워서 다닐 수도 없었을 겁니다. 속에다가 여러 겹 옷을 껴입고 잠바를 입은 위에 코트를 입고 수건으로 목을 감고 그러고 여행자의 멋스러움은 찾아 볼 수 없이 노숙자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에서도 보면 매일 같은 코트를 입고 있습니다.내 친구는 앙고라 세타를 하나 가져가서 그걸로 추위를 이겼습니다. 5월에 추위를 이긴다는 말이 어색하긴 하지만 비 오고 바람이 불면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안달루시아로 향하는 길에는 드넓은 평원의 땅, 라만차 지역이 있었습니다.
이 라만차 지역은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의 대표작인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자그마한 마을 크립 타나는 돈키호테가 돌진했을 법한 오래된 풍차 10여 개가 쓸쓸한 언덕 위에 남아있어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명소입니다. 우리 친구들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돈키호테를 읽고 가기로 해서 나도 대강 훑어보고 갔더니 소설 속 풍경이 가슴으로 들어왔습니다. 비가 여름 비처럼 주룩주룩 내리는 언덕에 서있는 풍차는 슬픈 모습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 근처엔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고 그냥 묵묵히 그곳을 지키는 장승같은 모습입니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겨운 레코드판 같은 곳이 그립 타나입니다.
이런 명소를 자본의 이익에 맞게 개발한다고 하면 풍차 주변에 꽃을 가꾸고 길은 포장을 하고 주차장을 넓게 만들고 기념품 가게를 많이 만들었을 것인데 그곳은 흙으로 된 언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인데도 어쩐지 메마른 것 같기도 하고 황량하고 쓸쓸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간직해야 할 이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개발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스페인의 자존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만차의 풍차마을은 돈키호테가 바보처럼, 그러나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그것을 향해 질주했던 풍차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조용히 서있었습니다.
돈키호테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부정과 비리를 바로잡으며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하며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에 나온 분들의 공약 같네요.^^) 망상에서 비롯된 다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약하고 상처받은 자에게는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악당으로 보이는 상대를 마주하면 엉뚱한 용기를 발휘합니다. 돈키호테가 벌인 우스꽝스러운 소동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는 풍차와 벌인 싸움일 겁니다. 평원을 지나던 중 멀리 풍차 30~40개가 나타나자 풍차들을 거인들로 착각하고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하며 풍차로 달려듭니다. 산초가 그건 풍차일 뿐이라며 만류하지만 세차게 돌아가던 풍차 날개에 부딪혀 로시난테와 함께 나둥그러집니다.
***돈키호테는 17세기경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사는 한 신사가 한창 유행하던 기사 이야기를 너무 탐독한 나머지 정신 이상을 일으켜 자기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 마을에 사는, 머리는 약간 둔한 편이지만 수지타산에는 빠른 소작인 산초를 시종으로 데리고 여러 가지 모험을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돈키호테는 환상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어 기상천외한 사건을 여러 가지로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하는 말 로시난데를 타고 길을 가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생각하여, 산초가 말리는데도 듣지 않고 습격해 들어갑니다. 그 결과 말과 더불어 풍차의 날개에 떠받쳐 멀리 날아가 떨어져 버립니다. 그런데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돈키호테는, 이것은 마술사 플레톤이 거인을 풍차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치매환자였을까요? ^^
게일
2017-05-10 at 10:01
환상속의 돈키호테 만나러 수니와 함께 갔다가 우산쓰고 잠시 보고 왔지만 작은 풍차옆에 산초와서 있는 돈키호테 기념품 보며 추억속에 잠겨요~
journeyman
2017-05-10 at 15:54
해외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데 추위와 비 때문에 고생하셨네요
저도 생각난 김에 돈키호테를 다시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