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눈 맞춤. 낙상으로

몬세라트(Montserrat)는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가 지속되었는데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아가는 날은 모처럼 파란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노란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동안 바라다 보이는 몬세라트는 바위산이 장엄하고 신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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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수도원은 많은 인파로 붐볐습니다. 우리 일행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속에는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스님들도 보였습니다. 검은 성모상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입장 시간을 정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제한적으로 입장객을 받겠다는 것이지요. 우리 일행은 일찍 서둘렀지만 검은 성모상을 만날 수 있는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지에 가야 하는 시간 때문인지 가이드가 무척 서둘렀습니다. 수도원 성당만 잠깐만 둘러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일생에 또다시 올 확률이 희박한데 너무 서두르니까 불만스러워했습니다. 나는 수도원 내부만 관람하고 돌아서 나왔지만 천주교 신자인 친구 두 명은 수도원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성조르디

천천히 걸어 내려와서 몬세라트 수도원 입구에 있는 “성 조르디” 조각상 앞에서 이쪽저쪽으로 몸을 옮기면서 감상했습니다. 조각상의 눈동자가 보는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착시를 일으켰습니다. 얼굴 부분이 음각되어 있고 눈동자 부분이 더 깊게 파여져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시선이 마주쳐 보였습니다. 검은 성모상은 못 봤지만 성 조르디 조각상을 본 것으로 만족하며 모이라는 주차장 쪽으로 내려왔지만 약속한 시간까지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 오른쪽에는 선물가게들도 보이고 노점상들이 화분(꽃가루)을 팔고 있었습니다. 나는 길 건너 왼쪽에 멀리 서있는 성 조르디 조각상을 보면서 여기서도 눈이 마주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서성거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는 순간은 찰나지만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 다치면 안 되는데 ……”
돌부리에 걸린 순간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앞으로 한 두발자국 옮기다가 야구 선수가 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하듯이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길게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순간 어찌나 창피한지 벌떡 일어났는데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하면서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벤치를 찾아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왼팔에 힘이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손가락은 움직이고 팔꿈치 아래는 움직여지는데 팔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가이드에게 일단 상의를 했더니 “참을 만 하면 서울에 가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라고 합니다. 당장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상황 같은데 여행지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의료인인데 만약 일행 중에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조치는 해야겠기에 약간의 상비약을 가지고 갔는데 그중에 진통제가 있어서 꺼내 먹었습니다. 통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왼팔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25 (1)

머플러로 부목을 만들어 왼손을 목에 메고 여행을 마쳤습니다.

귀국을 하는데 마침 공휴일이라 한이네 네 식구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다쳤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딸의 가족을 만나는데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더군요. 일하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놀러 다니다가 다쳐서 집에 오다니 정말 사위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 가까이 있는 동국대병원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와 CT를 찍었더니 골절 진단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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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청 다행인 것은 다리를 다치지 않아서 걸을 수 있고 오른팔이 아니라서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올리는 것은 못하지만 왼손이라 팔을 몸에 붙이고 손가락으로는 워드를 아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참 골절이 절묘하게 일어났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지 말고 삼각건으로 고정하고 6주를 있으라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겠더군요. 오른손이 조금 더 고생하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다친 지 2주가 지나 많이 좋아졌습니다. 왼손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시력이 나빠서인지 운동신경이 둔해서인지 잘 넘어지기는 하지만 타박상 정도의 경미한 사고였는데 난생처음 골절사고를 경험합니다. 그것도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까지 가서요.^^

4 Comments

  1. 데레사

    2017-05-17 at 08:08

    큰일날뻔 하셨네요.
    조심을 한다고 해도 재수없으면 다치기도
    하고 병도 나고 그러더라구요.
    좋아진다니 다행입니다.

  2. 윤정연

    2017-05-17 at 20:55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나도 60살 되던해에 욕실서 샤워중 전화 벨소리에 나오다가 전화기 드는 순간에 살짝 미끌어지면서 오른손으로 바닦을 짚으려다 팔목에 골절을 당했어요…한림대 정형외과서 수술하고 (전신마취)깁스를 손가락 끝이 세개만 보이고 팔뚝 끝 어깨까지 해서 두달만에 풀었지요…엑스레이 찍어 보여주는데 이쑤시개 같은 바늘이 네개나 꽂히고….
    골절… 그거 정말 힘든데…더욱이 여행중 이라니…
    다행이 좋아진다니 안심입니다…조리 잘하세요~~**

  3. 익명

    2017-05-17 at 23:09

    그러지 않아도 여행다녀와서 어깨 다치신것 어찌되었나 궁금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연락을 못드렸습니다.많이 불편하시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존경스럽습니다. 사진 예쁘게 찍어주셔서 감사드려요. 글올리신것 보면서 짧지만 아름다울 스페인 여행 다시금 떠올리고 있네요~ 건강하세요

  4. 게일

    2017-05-21 at 14:13

    이제서야 수니글 읽으며 즐거웠던 여행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수니의 놀라운 배려심에 놀라움을 금치못햏단다 친구들이 신경 쓸까봐 아픔도참고 긍정정으로 대처하는 너의 모습에 고맙기까지 했단다 속히 회복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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