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유형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서 소매치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엔 구시대 직업으로 밀려났습니다. CCTV가 거리마다 설치되고부터는 소매치기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리뿐 아니라 버스 안이나 가게의 실내에도 촘촘히 CCTV가 있어서 쉽게 추적이 되고,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다 보니 손기술에 비해 현금 수익이 없고 리스크가 많은 직업이 되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양 산업인데 유럽에서는 한창 성업 중이었습니다.
저는 생애에 두 번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만원 버스를 탔는데 그때는 거의 짐짝처럼 실려 다닐 때라 가방끈이 끊어질 듯 내 가방이 저 멀리 다른 사람 틈에 끼어 있어서 겨우 잡아당겨 보니 가방이 열려있고 버스표 몇 장이 든 지갑은 없어졌습니다. 소득이 별로 없어서 소매치기가 실망했겠다, 생각하니 그 소매치기에게 조금 미안했습니다. 가난한 아가씨 핸드백을 노린 소매치기가 감이 떨어졌던 것이지요.
한 번은 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큰 시장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복잡하지도 않은데 일부러 몸을 심하게 부딪치고 지나가고 난 후에 보니까 지갑을 빼 갔습니다. 혼수 마련을 하려고 나간 참이라 조금 큰돈을 잃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소매치기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다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단어가 이런 말입니다.
“여기 소매치기가 많아요.”
“가방 조심하세요.”
“가방을 앞으로 메세요.”
백팩을 등에 메고 다니면 그건 남의 것이나 다름없고 옆으로 가방을 메면 반은 남의 것이니까 크로스가방을 앞으로 향하게 메라고 가는 곳마다 현지 가이드가 잔소리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여행 때 쓰라고 크로스백을 친구가 주었는데 정말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가볍고 주머니가 많고 꽃무늬가 예쁜 가방입니다. 여권을 빼면 그다지 아까울 것도 없는 것들이 들었는데도 그걸 지키기 위해 여행을 나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여권은 잃어버리면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만 여권을 지키기 위해 나선 여행은 아닌데도, 온통 가방을 지키느라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수시로 환기시켰습니다.
여행의 미션이 “가방에 넣은 여권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고 스페인을 지나 인천공항으로 무사히 가저오기” 인 듯했습니다. ^^
“아~ 내 가방” 하더니 입구에 있는 안내소로 뛰어가더군요. 이분은 엄밀하게 소매치기를 당한 것은 아니고 엑스레이 투시기에 가방을 통과하면서 두고 지나왔답니다. 누군가 임자 없는 가방을 주워서 가지지는 않고 안내소에 가져가는 동안 현금만 슬쩍하고 다른 것은 그대로 다 있다고 하더군요.
소매치기 영업하는 분들의 면면도 다양해서 아주 잘생기고 젊은 남자도 있고 집시 풍의 여인도 있고, 남루한 걸인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가이드 설명을 듣느라고 집중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여인이 컵 속에 동전을 짤랑대며 눈앞에 갔다 댔습니다. 동전을 꺼내어 주고 싶어도 가방을 여는 순간 다른 일행이 또 노리고 있다고 해서 못 본척해야 했습니다.
단독으로 하는 분도 있지만 집단으로 하기도 합니다. 가령 가방 속에서 지갑을 꺼낸 후 재빨리 다른 일당에게 토스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토스하면서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가기 때문에 범인을 현장에서 잡아 봐야 물증이 없으니 소용이 없답니다. 협업의 장점을 이용한 것이지요.
여행객이 하나씩 들고 사진을 찍는 휴대폰도 소매치기가 노리는 물건입니다. 일행 중 한 명이 빠져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찍어주겠다고 자청해서 나타나서는 휴대폰을 건네받아 떨어져 있던 일당에게 던지고 그걸 받아들고 또 다른 일당에게 던지는 식으로 해서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휴대폰을 건네면서 한 번도 휴대폰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낯선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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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 중 한 분도 가방을 옆으로 메고 사진을 찍다가 옆구리가 이상해서 보니 이미 가방이 열려있고 지폐가 부챗살처럼 가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더랍니다. 아주 순간인데 어떤 사람이 “쏘리” 하면서 휙 지나가더랍니다. 소매치기보다 여행객이 조금 빨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방을 지켜낸 무용담(!)이 식사시간에 회자되었고. 일행은 가방을 열어서 지폐가 펼쳐진 상황을 실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지인들의 친절을 친절로 받을 수 없는 분위기가 여행자를 긴장하게 했습니다.
낯선 문화와 풍경을 경험하는 여행에서 “소매치기로부터 가방 지키기”가 큰 테마가 된 여행이었습니다. ^^
데레사
2017-05-27 at 18:09
로마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소매치기
안 당하는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유럽여행은 가방지키러 가는거같은
느낌이 나더군요.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벤조
2017-05-28 at 01:44
우리딸은 러시아의 샌 피터스버그에서 당했어요.
저도 가이드처럼 수없이 잔소리를 했건만 혼자 백팩을 메고 나갔다가…
다행이 현금은 많지않았고 카드로는 맥도날드에서 이미 썼다더군요.
윤정연
2017-05-28 at 16:32
맞아요…맞아요…우리도 유럽 갔을때 가이드들 마다 꼭 그말을 해서 서로 조심했는데 내또래보다 젊은 여자가 당했어요…그때는 카메라로 사진 찍을땐데…좀전에 찍고 또 찍으려고 보니 카메라가 없어졌어요…그통에 프랑스의 사진을 못보게 생겼으니…. 하면서 발을 동동거렸지만…우리는 가이드가 찍어준 것만 몇장 건졌답니다…아이구 한참 오래된 예기네~~~~~▪▪
북한산 78s
2017-05-28 at 18:10
재미난 유럽여행기 잘보고잇어요,다시한번 서유럽여행을 다녀오고싶습니다.
저도 파리가서 한바탕 난리치던 생각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김수남
2017-05-30 at 12:39
저도 소매치기 당한 속상한 경험이 있는데 언니도 2번이나 있었네요.여행 소식 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아
2017-05-30 at 15:11
후룻 전 친구언니가 외국여행다녀와서 하시는 말씀
“깃발만 보고 왔다” 하던걸요.
행여 일행을 놓칠까봐 깃발만 보고 따라 다녔다면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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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님 감사합니다.
남편의 완쾌를 기도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무어라 말씀드리지 못할 만큼 감사함으로 가득하였답니다.
수니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