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밀고 가는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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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호수공원은 일산 신도시 개발과 함께 조성된 인공호수로, 나무가 많고 다양한 꽃과 호수가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공원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우리 병원은 봄가을로 여러 차례 입원한 어른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호수공원으로 소풍을 갑니다. 의사 간호사는 물론 주방 여사님들 원무과 직원들까지 동원하여 휠체어 하나에 한 명 직원이 책임지고 다녀오는 나들이 길입니다. 환자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야외활동을 하는 코스라 직원들은 어렵습니다. 병동 안에서 휠체어를 미는 것 하고는 힘쓰는 것이 다릅니다. 울퉁불퉁한 길에 어르신을 태운 휠체어를 밀어 공원을 하루 나갔다 오면 팔에 알이 밸 정도로 힘들지만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모시고 나갑니다. 인지가 저하된 어르신들이지만 병원 밖으로 나가 꽃을 보면 좋아하고 초록 나무와 자연의 바람을 느끼며 행복해합니다.

layout 2017-6-17
아침 체조시간

나들이를 다녀와서 어떤 할머니께 제가 여쭈었습니다.
“어르신~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내가 어딜 갔다가 왔어? 만날 이렇게 누워 있어. 아무 데도 안 갔어.“
“조금 전에 휠체어 타고 어디 다녀오셨어요. 생각해 보세요. 모자도 쓰고 갔었는데요?”
라면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한참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생각합니다.
어르신은 사진을 보니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활짝 펴집니다.
생각이 나신 듯해서 다시 물어봅니다.
“어르신~ 어디 다녀오셨어요?”
“으~응 남산~ 남산 갔다 왔어.” 이러십니다.
“남산 가니까 좋았어요?” 다시 여쭈니까
“할마이들이 많이 왔어~ 노인정에서 놀러 왔나 봐~” 이러시더군요.
굳이 남산을 호수공원으로, 노인정 식구들이 아니라 우리 병원 식구들이라고 고쳐 말씀을 드리지 않고 그냥 함께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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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남산으로 기억하는 정자는 남산 팔각정이 아니라 호수공원 가운데에 있는 월파정입니다. 식구가 많으니까 월파정 그늘을 의지해서 간식도 먹고 놀다 옵니다. 재능 있는 직원들이 어르신께 노래도 불러드리고, 창을 하시는 어르신이 한자락 하시기도 합니다. 재활치료실 직원의 시범으로 휠체어에 앉아 체조도 하고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고 오는 소풍입니다.

어르신 연세에는 서울 남산 구경을 다녀온 것이 자랑거리였습니다. 시골 살면서 서울구경을 다녀온 사람이 흔치 않던 시대가 있었거든요. 남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온 사람은 세상구경을 다하고 온 것처럼 두고두고 이웃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최근 기억은 거의 없고 오래전 기억들만 가지고 있는 어르신은 월파정이 남산 팔각정과 같은 정자로 아셨습니다. 옛날엔 여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남산이었으니 이 어르신은 남산 팔각정에서 데이트를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7-06-17 at 14:29

    마음이 싸아해 옵니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일이지만 월파정을 팔각정으로 알고
    계시나디…. 그래도 그곳에 계시는 분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직원분들이 정성을 다하는군요.

    우리 동네도 내가 오후 두세시쯤에 나가면 요양보호사들이
    주로 할머님들을 힐체어에 태우고 나오거든요. 할아버지들은
    없고 어째 다 할머님들 뿐이에요.
    동네길이지만 힐체어 타시고 사방을 둘러보시면서 웃으시는
    모습에 저도 따라서 웃기도 하고 인사도 드리곤 하지요.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모든 직원분들께.

  2. 초아

    2017-06-19 at 06:13

    동문서답이지만, 어르신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해 주시는 그 맘이 참 평화로워보이네요.
    저도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적십자 부녀봉사회원으로 있을 때 일이 떠오릅니다.
    늘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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