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매년 사 보는데 그건 “젊은 작가” 의 글에서 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기 때문입니다. 작년 작품집에서는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 정용준의 “선릉 산책” 등을 읽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참 잘 쓴다.” 이랬는데 올해는 잘 쓰는 것에 더하여 몹시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화자의 독백이 대단히 혼란스럽기도 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나도 이런 사람 알아, 윤리 선생 같은 사람이 있어, 연주 같은 애도 주변에 많아……. 작중인물이 다 내 옆에서 숨 쉬고 있는 인물들인데 그걸 적어 놓은 글이 불편을 넘어 내 뺨을 때리는 것도 같고 모욕을 당하는 것도 같고. 누가 누구에게 고두를 해야 하는지 영 헷갈리게 만듭니다.
우선 고두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봤습니다.
고두 [叩頭 ]……. 머리를 조아려 경의(敬意)를 표하던 예. [유사어] 고수(叩首).
“잘못을 했다면 더 오래 무릎을 꿇고 더 낮게 엎드리는 자세. 그게 가장 필요하단다.”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윤리 선생이 불우한 여학생과 잠을 자고는 사과는커녕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학생이 “선생님을 사랑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무릎을 꿇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 안 해서 죄송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죄송하다는 이 역설……. 그 동기가 어찌 되었든, 형식적으로라도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익임을 강조해 놓고는, 도덕과 윤리를 지키지 못한 후에는 “나보고 뭐 어쩌라고” 이런 태도, 연주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 보여서 같이 잔 후에 무책임한 태도로 입 닫고 있었으면서 연주를 위해서 그랬습니다.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임현 작가는 작가노트 “두고두고 애매한 것들과”에서는 이런 말도 합니다.
소설은 세간의 떠도는 말처럼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암담하므로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아직 산재해 있는 세상이므로 나를 계속 쓰게 해주지 않겠나…. 략… 우리가 다투고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점.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성찰과 참회인 척 교묘하게 속일 수도 있다는 점. 나아가 논리와 합리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할 거라는 점. 무엇보다 기대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
화자는 사과를 하면서 논리적으로 그럴싸한 말들을 이어갑니다. “인간이란 원래 다 이기적이다”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위치로 끌어내려서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방법을 써서 논리적으로 말합니다.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이러고 독백을 끝내는데 따귀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묘하게 기분이 나쁘고 불편하기 이를 대 없었습니다.
꼰대 같은 투로 독백을 하는 작가가 도대체 몇 살이지? 읽다가 다시 작가의 프로필을 찾아 봤더니 83년생! 개구쟁이 같은 저 표정이 천연덕스러운 글과 매치되지 않아서 더 헷갈렸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소설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불편한 이유 중에 나는 이렇게 쓰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도 있지만 형식적으로라도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익이라는 내 위선이 들킨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