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한 남자가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고요?

1년 전에 상처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더니 안색이 핼쑥하고 살도 많이 빠졌고 기운도 없어 보이고 우울했습니다. 평소 명랑하고 인기 많은 동네 배드민턴 선수라 아주머니들께 인기도 많은 분인데 급 혼자 사는 남자 티가 났습니다. 쇼핑을 좋아하는 아내가 있을 때는 옷도 잘 입더니 어쩐지 후줄근해 보였습니다. 어찌 지내시는지 물었더니 시간이 나면 아내의 산소를 찾아가서 쓸쓸함을 토로하며 산다고 하는군요.
돌아가신 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남겨진 분에게는 새 장가갈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찬스를 왜 쓰지 못하는지? 그렇다고 두 분이 그렇게 잉꼬부부 엇나 하면 그런 것 같지 않은데도 그러는군요.

너무 기운 없고 쓸쓸해하기에 나는 속없이
“그러지 말고 연애하세요.”라고 권했더니
“그게 참 쉽지 않다.”라고 하더군요.
중년의 재혼은 초혼 보다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 미혼의 자녀가 있어서 거두어야 하는데 요즘 여자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자립심이 강해서 남자의 그늘이(이 말이 적당하지는 않는데 다른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군요.) 필요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본인은 이번에 외무부 장관이 된 강경화 씨 정도의 여자가 맘에 드는데 그런 정도의 여자가 있다고 한 들 자기와 재혼을 하겠냐는 겁니다. (이화 나온 내 친구에게 전화해서 ‘나이가 같은데 동창이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관심이 가더랍니다. 강경화 씨가 55년생은 맞는데 빠른 생일이라 한해 선배가 된다는군요.)
어떤 결혼 상대를 만나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선 예쁘고 미혼의 자녀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가정을 잘 돌볼 수 있고 대화 상대가 되고(지적 수준) 경제적인 자립이 어느 정도 되는 여자여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미쳤다고 본인과 재혼하겠느냐고, 그래서 재혼은 어려울 것 같아 포기를 하겠노라고 말하더군요. 단순히 살림해 줄 여자가 필요해서라면 가사도우미를 쓰면 되는 일이니까요. 재혼은 초혼보다 더욱 복잡한 것은 자녀의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 등, 서로의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조건을 맞추기가 점점 힘들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아람누리 마티네 콘서트에서 시인의 사랑을 해설과 함께 들었습니다. 섬세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김세일 씨가 노래했는데 절절한 슈만의 마음이 전해져 오더군요.
사랑하는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서 법원의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쓴 곡이 가곡집 “시인의 노래”입니다. 장인 즉 클라라의 아버지가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을 반대해서 법원에 판결을 받아 결혼하기까지 슈만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애절합니다.
젊은 김세일 씨가 그 감정을 세세하게 녹여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피아노 반주는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앞줄에서 가수의 턱을 바치고 앉아서 들은 시인의 사랑은 한글 가사를 화면에 띄어 주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실제로 듣는 것은 감동이 달랐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노래를 유튜브로 듣는데 노랫말을 몰라도 가슴을 울리는군요.

나는 꿈속에 울고 있었네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쁜 꽃이 있다면 나와 함게 울어 줄 터인데
나는 울지 않으리….

16개의 소제목과 그 내용들이 사랑의 고백이고 눈물이고 아픔이고 환희고 그렇습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처럼 장인의 방해도 법원에 판결을 받아서라도 결혼에 이를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달리 중년의 재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주변의 여러 가지 여건을 생각하면 결혼이 어렵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에 목을 매기도 난감한 일입니다. 재혼을 하기도 안 하기도 문제가 많은 중년의 상처입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고 하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swan2 swan1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내 친구가 보내온 사진입니다.
글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백조 가족이 너무 평화롭네요.

3 Comments

  1. 김수남

    2017-07-05 at 06:14

    네,언니! 참 마음이 짠해지네요.남편이 중년에 혼자 남은 가정을 뵈면 정말 아내가 나중에 떠나는 것도 복이시다 싶어집니다.성경 공부할 때 숙제로 유언 쓰기가 있었어요.그 때 남편한테 혹시라도 내가 먼저 천국 떠나면 꼬옥 재혼하라고 당부한 대목도 썼어요.그 대목을
    쓰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함께 천국 가던지 아니면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의 천국행을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요.
    혼자 남았을 남편을 생각하니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싶어서 정말 눈물이 났어요.
    함께 살아 있는 동안 더욱 감사하며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야될 각오를 새삼 언니 글을 보면서 하게 됩니다.

    그 분 속히 마음에 들고 여러가지 이해해 주실 수 있는 좋은 여성 분을 만나시면 좋겠습니다.언니 통해 그런 반가운 소식이 머잖아 올려 지길 기대합니다.

  2. 데레사

    2017-07-05 at 11:28

    중년의 상처는 망처라고도 하지요.
    요즘 재혼은 서로의 계산에 맞아야
    하니까 어렵고도 어렵지요.
    여자가 뒤에 죽는게 좋은것 같아요.

  3. 초아

    2017-07-06 at 20:43

    아마도 웃자고 한 말이겠지요.
    아무렴 그렇겠어요.
    아주 간혹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데레사 언니 말씀처럼 망처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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