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에 대구 근교에 있는 선산에 다녀왔습니다.
유교 성향이 강한 시댁은 산소 돌보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서, 이런 일에는 일가들이 거의 모이는 큰 행사로 치러집니다. 산소 돌보는 일은 선선한 봄가을에 하면 좋은데, 윤달에 일을 해야 탈이 없다는 속설에 의해 조상 산소 돌보는 일은 윤달 5월인 지금이 적기랍니다. 대형버스 한대와 각자의 차로 서울에서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1시간쯤 들어간 곳에 위치한 선산에 집결했습니다. 젊은이들까지 동원령이 내려진 대규모 모임입니다. 폭우 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산 아래 평평한 곳에 천막을 치긴 했지만 군데군데 웅덩이에 물이 그득해서 비닐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폈지만 날은 습하고 무척 더웠습니다. 그곳에 어린이와 아기 엄마들은 남아 있게 했습니다.
일꾼들이 산일을 하는 동안 어른들은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지켜봤습니다. 비닐 한 겹이지만 비옷을 입으면 땀이 더 나서 입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 비는 아니라도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친 시간에 산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그나마 날씨가 이만큼이라도 협조를 해 줘서 다행이라며 감사했습니다.
내가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것을 아니까 사람들은 나만 보면 노부모 일에 대해 의논을 해 왔습니다. 나도 내 어머니가 여든아홉이고 인지장애에 골절 상태라 그분들의 상황이랑 별로 다르지 않아서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효심 깊은 아들과 착한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어서 그나마 나은 경우지만 집집마다 노인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저의 큰 시누이 댁에는 고관절 골절에 치매로 자리보전하고 계신 시아버지와 관절염으로 아픈 시어머니가 계신데 안동에서 두 분이 따로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시골집에 노인 두 분만 계시는데도 서울 자녀 집에도 안 오시려고 하고 요양원에도 안 가시려고 해서 91살 병든 할아버지를 90세 된 병든 할머니가 간병을 하는 형편입니다. 두 분 다 요양등급이 있어서 낮 동안은 정부에서 보내주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사는 자녀들은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놀란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다른 날은 어머니가 넘어져서 다쳤다고, 어째 숨 쉬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이런 사고 소식이 이어지고 인지저하가 있는 병든 노인 두 분을 멀리 두고 살자니 자녀들이 항상 불안한 것입니다. 이제는 금방이라도 위독하다는 연락이 올 것 같아 지레 겁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 내기에 어머니 힘이 부치니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하면 “병든 아버지를 어떻게 불쌍하게 요양원에 보내느냐?”라고 하시며 어머니가 강력하게 거부하신답니다. 왜곡된 정보에 의해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을 굶기고 때리는 곳으로 알아 죄지은 사람들이 가는 수용소로 여겨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 들으시고 고집을 부리신다는 겁니다. 전화만 받으면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시누이 남편도 68세입니다. 그분도 옛날 같으면 상노인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안동 어른들을 뵈러 갔더니 머리가 허연 아들을 어머니가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네가 올해 몇이고?”라고 물으시더랍니다. “예순여덟 아닙니까?” 했더니 구십 노인이 당신 무릎을 탁 치며 “야~이야~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하시더랍니다. 갑자기 깨달은 듯 너무 놀라며 생경스럽게 말씀하셔서 어리둥절하더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축축한 들판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라 아스팔트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만 봐도 신기한데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메뚜기처럼 생긴 풀벌레를 보니 어찌나 신기해하는지 모릅니다. 마을과 떨어져 산소 가는 길가에 외딴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사는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와 우리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강아지도 사람 구경을 못해 무척 외로웠나 봅니다.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친구해서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종시숙이 75세라 우리 대가 가고 나면 산소관리 같은 일은 주관할 사람이 없어서라도 묘지라는 개념이 없어질 것 같고, 이런 일을 위해 가족이 모이는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소 돌보는 일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면 좋겠는데, 매년 봉분에 흙을 돋아 높이하고 잔디를 덮어놓고 그곳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200년 전 벼슬을 했다는 조상님의 산소는 더욱 크고 비석이 높다랗게 서 있는데, 한문으로 된 비석에 쓰인 글을 누가 읽어보기나 하겠습니까? 산소관리나, 수명이 길어져서 발생하는 노인문제는 이제 우리 대에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산소는 만들지 말고 나이 들어 자립해서 살아갈 건강이 안 될 때는 스스로 요양기관에 입소해서 여생을 마치는 일이 우리 세대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데레사
2017-07-10 at 18:31
우리 형부도 어제 요양병원으로 갔습니다.
여든 다섯 언니가 여든다섯 헝부를 보내면서
이틀을 병원에서 자고 죽다시피 되어서
돌아 왔어요.
장수가 축복인지 재앙인지 참 어렵네요.
김수남
2017-07-11 at 05:17
저희 친정 풍경이랑 흡사합니다.시골 길의 아이들과 강아지 그리고 아카시아 잎이 정겹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친척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인 것은 좋은데 조금 더 효과적인 현대식 방법을 선택함도 맞다 싶습니다.
좋은 시대이니 건강하게 모두 장수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