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은 그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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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국민안전처에서 보내는 “폭염경보” 안내 문자가 휴대폰을 울리는 날이었습니다.
추운 것 보다 더운 것은 견딜 만 하다고 사는 사람인데도 여름의 정점에 있는 요즘의 더위는 피하고 봐야합니다.
“ 여름엔 차 속이 젤 시원하다.”
이런 대화를 나누며 자유로를 달려서 한낮에 찾아간 연천 그녀의 집은 폭염 속에서도 그림처럼 살포시 산자락에 앉아 있었습니다. 잠자리나 나비도 아닌데 집이 산자락에  앉아 있다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표현 말고는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산세를  무겁게 누루지 않고  꽃 처럼, 아니면 여인의 옷자락에 맵시있게 달린 브로치 같이 보였습니다. 그집이 거기에 없으면 그냥 깊은 산이지만 그 집이 있어 산 풍경이 살아나는 듯 합니다.
대문도 없는 집에 차가 마당가운데로 들어가 멈추자 하얀 진돗개가 짖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안주인이 하얀 면 블라우스에 무명앞치마를 두르고 소박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습니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마당까지 나와 손을 잡는데 손님들에게 먹일 음식을 장만하느라 손이 젖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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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들에서 뜯은 쑥으로, 방앗간에 가서 쌀을 빻아 와 장만한 쑥떡
방울토마토 껍질을 벗겨서 만든 샐러드
즉석에서 손으로 빚어서 구어 주는 수수부꾸미
놋쇠로 만든 대접에 담아내는 팥죽 한 그릇 ……. 어찌나 맛있는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성경에 나오는 에서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이렇게 맛있으니 그랬으리라! 그런 ^^)
농사지어서 딴 토마토 주스, 토마토 잼 직전까지 졸인 또다른 주스, 오이소박이, 김치
이런 음식을 먹을 때는 레시피 정도는 물어 봐야 애써서 음식을 장만한 분에게 예의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양념이나 조리방법 이런 것을 물어볼 실력이 안 되어서 조용히 음식만 축을 냈습니다. 난 도마토. 쑥, 팥 같은 주재료만 구별하는 정도라 100년을 이어오는 식초니, 약한 불에 졸였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에겐 외래어만큼이나 해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와 비슷한 분이 한 분 더 있었지만 그래도 일행 중 한명이 방울토마토 레시피를 물어 보기에 조금은 안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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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진돗개 봄이와 할머니 딸이자 중년 여인 진돗개 새봄이, 그들이 새로 낳은  진돗개 아홉 마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인간 극장”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듯 했습니다. 이 여름에 커다란 진돗개 산모 두 명과 신생아 9마리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그림 속에서 나온 여인이 아니라 순박한 시골 아낙의 모습이었습니다. 산모에게 먹일 닭고기를 수 십 마리씩 한꺼번에 사가니까 생닭 파는 분이 “장사가 잘 되나 봐요?”라고 묻더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산모를 잘 먹여야 젖이 잘 나니까 봄이와 새봄이에게 닭을 볶아도 주고 삶아도 주고 조리 방법을 달리해 가면서 잘 먹여서 엄마 젖만 먹는 아기 진돗개가 통통하니 살이 올랐습니다.
새봄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나 눈도 못 뜬 강아지가 바구니에 담겨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모습은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어미젖을 못 찾고 경재을 못하는 순한 아기를 들어 새봄이의 가슴에 젖을 찾아  대어주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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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동화되어 살아가는 그녀는 무척 바쁩니다. 새벽이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과일을 수확하는 일, 봄이들과 산책 하는 일, 방문한 손님 대접하는 일 이런 일이 바빠서 화가인 그녀가 그림 그리는 일을 소홀할 것 같은데도 새로 그린 그림도 보이고 산속에 펼쳐질 미술관의 청사진을 펼치며 차곡차곡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참 용감하고 한여름의 나리처럼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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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데레사

    2017-08-05 at 17:40

    다녀 오셨군요.
    요즘은 강아지들 돌보느라 일이 더 많아
    졌네요.
    젊은 사람이 부지런 하고 뭐든 잘 하는
    모습을 보는 마음도 훈훈 하더라구요.
    동갑의 내 딸은 어림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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