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가면 큰일 납니다.

이거 새 찬데~
한 달도 안 된 새 찬데~
괜히 주상절리를 보고 가자고 해가지고~
강바닥에 내려가지 말걸~
바로 갈걸~
~걸 ~걸 ~걸 …….
서로 미안하고 난감했습니다.

차 주인은 자동차 A/S 센터, 보험회사, 차 딜러 등 여러 곳으로 연락을 했지만 휴가철이고, 차 위치가 연천으로 서울에서 멀고, 저녁이고,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전화 연결도 어렵고, 어렵게 연결이 되어도 해결할 생각을 안하고 다른 연락처를 안내하면서 미루기만 했습니다. 막상 어려움에 처하자 한 군데도 “신속 정확” 평소 이런 구호를 외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차 주인은 점점 피로가 몰려오는 표정이고 지쳐갔습니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친구는 사고 수습을 위한 조언을 하면서 조금은 거드는데, 나는 차가 아니라 차 주인의 안색이 나빠 걱정되었습니다. 주유소 사장님과 주유원은 그렇지 않아도 뜨겁고 짜증 나는 여름날 기름 습격을 받고 수습하느라 몹시 힘들었습니다. 긴 고무장갑을 끼고 빗자루를 가지고 기름을 쓸어서 퍼 담고 걸레로 시멘트 바닥을 닦아 양동이에 짜 모았습니다.
72000원어치 기름이 많기도 하더군요.
난 주유소 상황이 낯설 뿐이고,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나 더운지 기운이 빠졌습니다. 어디 시원한 곳이 없을까 두리번거려 보니 주유소 사장님이 쓰는 사무실에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고 낡은 소파가 있기에 염치없지만 좀 들어가 앉아 있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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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일어난 사고라면 수습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겠지만 한 시간에 한대쯤 주유하러 들어오는 시골 주유소에선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연락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라 저녁이라도 먹어두자 했지만 주변엔 논과 산만 보였습니다. 주변에 밥 먹을 데가 없냐고 주유소 사장님께 여쭈었더니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식당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유소 사장님은 짜증이 잔뜩 올라오는 것을 참느라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진상 손님 없는 겁니다.
주유소 바닥을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 놓지를 않나
덥다고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 수준으로 버티질 않나
배고프다고 하지를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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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사라지자 사무실 불을 끄겠다며 밖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사장실에서 쫓겨나 주유기 근처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셋이서 죽 앉았습니다.
한 여인은 실크 부채를 꺼내 들고 날아드는 모기와 날벌레를 쫓느라 분주했습니다.

렉카는 저녁 9시가 넘어야 도착을 한다고 해서 맥없이 앉아 있는데 주유소 사장님은
“저 진상 손님들의 식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고 궁리를 하고 계셨나 봅니다.
주유소 사장님께서 본인 차로 몇 킬로 밖에 있는 식당까지 태워다 준다고 해서 갔는데 그곳에 달랑 두 곳 있는 식당마저도 휴가를 갔는지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사장님 차로 주유소로 돌아왔습니다. 인가도 없는 길에 덩그러니 서 있는 주유소라 같이 운영하는 가게에도 물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차 주인은 속도 상하고 어차피 운전을 안 할 거니까 맥주나 마시겠다며 캔맥주를 집어 들었습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주유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꼬깔콘을 씹는데 누군가 컵라면을 먹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탁자를 가져다 그 위에 컵라면을 놓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자니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산자락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집에서 멋진 점심 식사를 했는데 주유소 시멘트 바닥에서 컵라면이라니…….
“좋은 추억이네”
그래도 이런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맛있게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더없는 진상 손님을 위해 주유소 사장님은, 화가네 그릇만은 못하지만 예쁜 그릇에 맛있는 오이지무침과 김치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렉스턴이 쏟아놓은 기름을 퍼냈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에서 그래도 착한 주인 덕택에 요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착한 주유소 사장님과 달리  평소 사람 구경하기 어려웠던 동네 모기와 파리, 날벌레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식탁으로 몰려왔습니다. 난 모기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체질이라 김치 접시 위에 앉는 파리를 쫓는 것을 담당했습니다, 모기가 특히 좋아하는 체질을 가진 한 분은 우아하게 부채를 흔들어 쫓아 보지만 비자발적 헌혈을 수없이 해야 했습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렉카가 와서 차를 떠서 들고 갈 때 우리도 함께 갈 수 있겠지 하고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밤늦게 도착한 렉카는 차량 운반용 트럭이었고 일산이 아니라 의정부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카 서비스 센터도 쉬는 곳이 많아서 도봉구 창동에 있는 A/S 센터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정부를 돌아서 일산으로 오기에는 시간도 너무 늦었고
“어떻게 일산으로 갈까?”
한 시간에 한대 다니는 버스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의논하는 순간에 지나가고
마침 주유하러 들어온 트럭 운전사에게 문산 전철역까지 태워줄 수 있나 물었더니
가까운 곳에 가는 중이라 문산까지 갈 일이 없다고 하고
우아한 친구가 궁리 끝에 지나가는 차를 향해 히치 하이커를 하자고 하면서 다리가 긴 나보고 하라는데
그것도 해 본 사람이나 하지 할머니가 어찌 히치 하이커를 하겠냐고요.

렉스턴과 차 주인을 어부바 차에 실려 보내고 카카오 택시도 안 되는 시골이라 콜택시가 겨우 연결이 되었습니다. 처음 택시를 탈 때는 문산 전철역까지 가려고 했지만 타고 보니 경의선으로 갈아타고 기다리고 하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난감해서 택시에서 내리기 싫어졌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그마저 보내고 나면 연천이나 문산에서 자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어 일산까지 쭉 왔습니다.
레커차에 실려 가다가도 연천에 두고 온 우리가 걸렸던 렉스턴 주인이 택시 탔냐고 카톡을 했기에
“일산까지 택시 타고 고고씽” 하고 답글을 보냈습니다.
한참 후에 “막 가자 이거네”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목을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하자고 차 주인이 제안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막 가자는 거지요.”가 맘에 듭니다.
포클레인이나 불도저가 아닌 이상, 공사하는 길을 막 가면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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